격화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점유율 전쟁…초기 덩치 키우려 일부 LP에 비용 전가
비용 떠안은 증권사…리밸런싱 주문·재대차 마진으로 보전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삼성자산운용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을 앞두고 유동성 공급자(LP)인 증권사들에 타사 시딩(초기 자금) 자제와 거래량 관리를 강권한 정황이 본지 취재 결과 확인된 가운데, 금융감독원도 인위적인 거래량 부풀리기 의혹과 관련해 실태 점검에 착수했다.
시장에서는 이런 불균형한 공생 관계가 가능했던 시장 구조 자체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철저하게 손익을 따져야 할 증권사들이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운용사의 대리전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리면 거래 끊는다"…점유율 전쟁의 실상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은 최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동시 상장을 앞두고 복수의 LP 증권사에 타사 시딩 자제와 거래량 관리를 요구한 것으로 파악됐다(연합인포맥스가 5월 28일 단독 보도한 '"경쟁사 밀어줬다간…" 운용사 과열경쟁, ETF LP 증권사에 '갑질' 논란' 제하의 기사 참고).
경쟁사 상품의 거래량이 자사 상품보다 높게 나오면 거래 관계를 중단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됐다.
통상 LP는 재고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적정 수준의 스프레드를 두고 호가를 대지만, 상장일 일부 LP는 운용사의 압박에 맞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호가를 좁힌 것으로 전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매수·매도 호가를 극단적으로 좁혀 거래량을 부풀리는 이른바 '총알받이' 매매를 한 것"이라며 "상장 초반 손해를 감수하고 거래량을 터뜨려주는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고 귀띔했다.
시딩에서도 압박은 이어졌다. 삼성운용은 LP들에 자사 ETF에 경쟁사보다 더 큰 규모로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반발한 일부 증권사는 삼성운용과 거래를 끊은 것으로도 전해졌다.
대형 운용사들이 증권사를 동원해 경쟁사를 견제하는 관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3년 벌어진 한국판 '슈드(SCHD·배당다우존스)' ETF 주도권 전쟁이 대표적이다.
당시 신한자산운용이 선점해 순자산 2천700억 원 규모로 키워놓은 시장에 후발주자로 등판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시딩으로만 무려 2천830억 원을 쏟아부었다.
이는 통상적인 ETF 초기 자금(80억~100억 원)의 약 30배에 달하는 규모로, 선발 주자의 순자산을 제치기 위한 '폭탄 시딩'이었다. 이 과정에서도 시딩 자금 동원과 유동성 공급의 부담은 고스란히 LP들에 돌아갔다.
시딩 전쟁의 결과, 현재는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3배 이상 앞서는 격차가 굳어졌다.
◇LP 출혈은 주문 약정·재대차 마진으로 보상
그렇다면 증권사들이 이처럼 출혈을 감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운용사가 별도로 마련해주는 '손실 보전' 창구가 있기 때문이다.
대형 운용사들은 수조 원 규모 상품에서 쏟아지는 매매 주문을 LP 압박의 지렛대로 쓴다.
삼성자산운용은 KODEX 레버리지·인버스 등 10조 원 규모의 국내 파생형 상품의 데일리 리밸런싱 주문을 무기다. 이 상품들은 매일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해야 해 대규모 주문이 쏟아진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나스닥100, S&P500 등 해외 주식형 상품의 매매 주문을 지렛대로 활용한다. 해외 주식은 국내 대비 브로커리지 수수료 단가가 높아 수익성이 크다.
운용사는 자사 ETF 흥행을 도운 LP에 이들 주문을 몰아주는 식으로 브로커리지 수수료를 보상한다.
최근 금감원이 현장검사에 착수한 '재대여 마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유인책이다. 운용사가 펀드 보유 주식을 우호적인 LP에게 초저율로 빌려주면, LP는 이를 헤지펀드 등에 높은 금리로 재대여해 차익을 챙긴다. 이 같은 금리 격차가 사실상 무위험 수익을 보장하는 셈이다.
이 같은 구조는 자산운용사의 '선관주의 의무' 위반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자에게 돌아가야 할 대차 수익을 운용사가 임의로 떼어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이 같은 ETF LP 재대여 관행에 대해 점검하고 있는 상태다.
결국 상장 초기의 출혈은, 이후 운용사로부터 돌려받는 주문 약정 등으로 메우고 남는 것이다. 증권사가 운용사의 '용병'이 되는 배경이다.
◇"영업으로 시장 조성하는 곳은 한국뿐"
이 같은 공생이 가능한 데는 구조적 배경이 있다.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는 지정참가회사(AP) 자격을 갖춘 은행이나 마켓메이커가 실력에 따라 자유롭게 ETF를 설정·환매할 수 있다. 운용사와 시장조성자가 대등한 위치에서 협업하는 구조다.
한국은 다르다. 운용사가 증권사별로 설정 물량을 배분하는 사실상의 '쿼터제'다. 비즈니스의 원천인 설정 물량에 대한 권한을 운용사가 쥐고 있으니, LP가 대형 운용사의 요구를 거절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외국계 마켓메이커의 진입을 막는 세금 장벽은 폐쇄적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한다. 과거 한국거래소(KRX)는 외국계 마켓메이커를 '유동성 기여자(LC)'로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조세 문제에 부딪혀 무산됐다.
고빈도 차익거래 특성상 한쪽 계좌에서 손실이 필연적으로 발생하지만, 이를 이익과 합산해 과세하는 양도차익 손익통산 제도가 미비해 번 쪽에만 세금이 붙는다. 여기에 LP의 바스켓 매매에 적용되는 증권거래세 비과세 혜택이 국내 법인에게만 주어져, 외국계에는 이중으로 불리하다.
쿼터제가 운용사에 LP 지배력을 주고, 세금 장벽이 외부 경쟁자의 진입을 차단해 폐쇄 시장이 고착되는 것이다.
이는 트레이딩 인프라의 정체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ETF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미국·유럽의 마켓메이커들은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1bp 이하의 마진을 쌓아 수익을 내지만, 한국 LP들은 매매 기술보다 운용사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주문 약정과 대차 마진에 수익을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며 "제대로 된 글로벌 마켓메이커가 한국에 하나라도 들어오면 이 구조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사례는 개방이 가져오는 변화를 보여준다. 일본거래소(JPX)에 등록된 ETF 시장조성회사 중 현지사는 노무라증권과 미츠비시증권 단 2곳뿐이고, 옵티버(Optiver)·플로우 트레이더스(Flow Traders)·제인 스트리트(Jane Street) 등 나머지는 모두 글로벌 마켓메이커다.
◇"경쟁사 견제가 호가조성의 주된 목적이란 게 문제"
일각에서는 운용사의 LP 관리가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LP 간 경쟁이 촉진돼 매수·매도 호가가 좁아지면 개인 투자자들의 거래 비용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운용사 입장에서도 LP들이 호가 관리와 유동성 공급을 충실히 이행하도록 모니터링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불건강한 관행을 정당화하긴 어렵다고 지적한다. 자사 상품의 호가를 좁히는 것과, 경쟁사 상품에 시딩을 넣지 말라거나 거래량이 밀리면 거래를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은 다른 문제란 것이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새 상품에 시딩을 얼마나 해줬느냐에 따라 다른 비즈니스를 나눠주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투자자 보호가 아닌 점유율 경쟁의 목적에서 LP가 동원되면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과 공정한 경쟁 환경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다.
금감원이 이번 증권사 LP 업무 전반에 대해 실태 점검에 나선 만큼, 운용사와 증권사 간 불투명한 거래 관행에 대한 제도적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TF 시장이 500조 원에 달하며 자산운용업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은 만큼, 영업 경쟁보다는 기술 경쟁이 시장을 이끄는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합뉴스 제작]
kslee2@yna.co.kr
이규선
ks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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