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대한민국이 온통 주식에 빠졌다. 20대부터 70대까지 코스피 지수에 따라 웃고 운다. 삼전닉스(삼성전자+하이닉스)를 얼마나 많이 들고 있느냐에 따라 결혼정보회사의 배우자감 점수가 달라지고, 업무 중에도 몰래 주식창 들여다보는 직장인을 위해 엑셀처럼 위장한 주식사이트까지 등장했다. 하루에 월급을 벌었다가 또 하루 만에 그만큼을 날려 먹기도 한다. 이보다 더 짜릿하고 달콤한 돈벌이가 있을까.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2,600선에서 움직이던 코스피는 지난 1일 8,788.38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들어서만 108.54% 급등한 코스피 지수는 연간 최고 상승률을 기록한 1987년(92.62%)을 이미 거뜬히 넘어섰다.
코스피 지수는 어디까지 더 올라갈 수 있을까.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와 반도체 이익 전망 상향을 근거로 하반기 코스피 목표지수를 잇달아 상향조정하고 있다. KB증권은 기존 7,500에서 10,500까지, 교보증권과 하나증권도 코스피 1만 시대 진입 가능성을 제시했다. 현대차증권은 12,000까지 열어뒀다. 골드만삭스는 한국 증시를 아시아에서 가장 선호하는 시장으로 꼽으며 코스피 목표치를 9,000 안팎까지 상향했다. 이 같은 전망은 개미들의 눈을 멀게한다. "지금 들어가기엔 늦지 않았냐는 바보 같은 질문을 할 시간이 있으면 가장 쌀 때 한 주라도 더 사라"는 외침은 포모(FOMO·소외 공포) 심리를 더 자극한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자산시장 전략을 분명히 했다. 부동산 중심 자산 구조를 무너뜨리는 게 우선이었다. 거대한 돈의 물줄기를 부동산에서 주식시장으로 틀기 위한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법개정, 배당소득 분리과세, 양도소득 비과세 계좌 등 자본시장 활성화 대책에 시장은 환호했다. 주가가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오른 데 대한 불안감보다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이들의 희망이 더 컸다. 부동산에 비해 당장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매력을 충분히 보여줬고, 개미들이 몰려든 덕분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1년간 국내 증시는 시가총액 기준 세계 13위에서 7위까지 뛰어올랐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으로 유입된 이 풍부한 유동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지난달 5대 은행의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106조5천154억원으로 한 달 새 2조1천741억원 증가했다. 2021년 4월(+6조8401억원) 이후 5년 1개월 만에 최대다. 증시 활황에 은행 대출로 최대한 빚을 내 주식시장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마이너스통장 잔액도 전달보다 5%대 불어난 42조원에 달해 2021년 4월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을 나타냈다. 빚 갚기도 미루고 한도 가득 끌어다 주식시장으로 달려가고 있는 개미들이 늘었다는 얘기다.
이재명 정부의 뜻대로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흘러들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 문제는 부동산에 묶여있던 자금이 이동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빚투'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 주택담보대출만 조이면 가계대출을 쉽게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부동산은 꿈쩍도 안하고 신용대출로 빚을 내 불장에 올라타는 현상이 뚜렷해진 점에 주목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최근 부동산 시장 흐름은 정부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아파트값은 작년 이후 68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고, 매물 잠김 현상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전셋값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매매, 월세, 전셋값이 동반 오르는 이른바 '트리플 강세'가 뚜렷해지면서 문재인 정부 시기 폭등장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 정부여당도 당혹스러운 눈치다.
대출도 꽁꽁 묶어 뒀는데 어디에서 돈이 나와 집값을 밀어 올리는 걸까. 예상치 못한 변수는 아이러니하게도 정부가 밀어 올린 증시다. 대출을 활용한 매수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반도체 업계 성과급과 증시 상승이 현금 구매력을 키웠다. 거액의 성과급과 금융자산 가치 상승이 구매능력 감소분을 상쇄하고 있는 셈이다. 동탄·분당·수지·기흥·영통 등 이른바 '셔세권'(셔틀버스+역세권) 등 상급지의 집값 상승세가 뚜렷해졌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장에선 하반기 부동산 시장의 가장 중요한 변수를 금리도, 추가 부동산 대책으로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세금도 아닌 주식이라고 본다. 바꿔 말해 주식으로 번 돈이 언제 부동산으로 이동하느냐가 집값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결국 버티면 오른다'는 오랫동안 통용되던 믿음이 있다. 인간에게 집이란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물질적 생존이자 '결코 버릴 수 없는' 안전망이다. 주식은 없어도 살지만, 주택은 필수다. 생존권과 직결되는 마지막 삶의 목표와도 같다. 주식으로 수익을 낸 투자자들이 더 좋은 집으로 갈아타기 위해 부동산으로 돌아가는 건 어찌 보면 본능일 수도 있다. 돈이 모이면 일단 빚을 갚고, 그래도 여유가 생기면 그동안 고생한 나와 가족을 위한 일종의 보상으로 명품이나 자동차 등 고가 소비재에 지갑을 연다.
부의 효과가 본격화한 이후 돈의 흐름은 어떻게 될까. 다시 주식으로 갈까. 인간은 특정 시점에 달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의식주로 돌아가게 된다. '평범한 삶을 범하지 않게' 사는 것이 진짜 부자들의 목표다. 이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 '해피 하우스', 바로 부동산이다. 강남권과 고가 아파트 시장이 꿈틀대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 대통령은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 "부동산 정상화는 오천피(코스피 5,000), 계곡 정비보다 훨씬 쉽다"며 부동산 불패 신화를 끝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서울의 아파트값은 더 뛰었다. 주식에서 번 돈이 다시 아파트로 몰릴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증시 부양이 오히려 부동산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를 더욱 끓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렵게 자본시장으로 흘러들어온 자금이 다시 '똘똘한 한 채'를 찾아 부동산으로 돌아가는 '역(逆)머니무브'가 나타나지 않도록 서둘러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정부는 지방선거 이후 이르면 이달 중 부동산 대책을 추가로 내놓을 계획이다. 1주택자를 대상으로 보유세 부담을 늘리고 비거주 1주택자에도 대출규제를 강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거듭된 부동산 규제와 예외 규정으로 시장이 피곤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2년 차 국정의 진짜 승부처는 이번 부동산 대책에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하고 세련된 정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금융부장)
hjlee@yna.co.kr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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