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대국민 사과에도…법적·정치적 후폭풍 확산
"참정권 침해" 지적 더해 '부정선거' 빌미 제공 비판도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시간이 오후 10시까지 연장된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 주민들이 모여 있다. 2026.6.3 yatoya@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온다예 기자 = 6·3 지방선거 본투표가 진행됐던 지난 3일 서울 일부 지역 투표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일시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선거 관리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초래한 것은 물론,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를 방해했다는 점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이 무겁다는 비판이 나온다.
4일 선관위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20분 기준 서울 송파·강남·광진구의 투표소 14곳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됐다.
선관위는 투표를 하지 못한 유권자들에게 대기표를 배부하고 마감시간인 오후 6시 이후에도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송파구 잠실 일부 투표소에선 오후 10시까지 투표가 진행되기도 했다.
선관위는 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아 준비한 투표 용지가 부족했고 예비 투표용지 지급이 늦어지면서 유권자들이 제때 투표를 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무려 12곳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진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의 50% 분량만 투표용지를 인쇄했다고 밝혔다.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관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 숙였지만 파장은 장기화할 조짐이다.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이자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후보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초접전 대결을 펼치는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한 데다가 "선관위가 대응해야 할 사안"이라며 거리를 두던 청와대마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어서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헌법 기관으로서 일부 지역 주민들의 투표권 행사와 개표 관리에 차질이 없게 책임있는 조치를 바란다"며 "청와대는 일련의 상황을 엄정히 주시하고 있다"고 전날 밝혔다.
투표용지 부족 규모도 관건이다. 선관위가 파악한 지역 외에서도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있따르면서 애초 예상보다 피해 규모가 커질 경우 선관위의 책임은 한층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 자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송파(8곳)·강남(2곳)·서초(2곳)·광진(1곳)·동작(1곳), 인천 연수구(2곳), 경기도 화성시 동탄구(1곳) 등 17곳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졌다.
선관위가 이미 과거에도 여러 차례 관리 부실 논란에 휩싸였던 만큼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거세질 전망이다.
선관위는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간이 용기나 쇼핑백 등에 담으면서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을 일으켰고 지난해 조기 대선 때는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관외 선거를 위해 대기하던 일부 유권자가 대기 줄이 길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받은 채 식사하고 돌아왔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선관위가 사과하기도 했다.
(과천=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노태악 위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위원장실로 향하고 있다. 2026.6.3 ondol@yna.co.kr
여야는 선관위가 사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이미 선거 자체가 심각하게 오염됐기 때문에 재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며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를 잇따라 항의 방문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중대한 참정권 침해"라며 공직선거법을 근거로 선거 연기를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은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면서도 "개표 중단이나 재투표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정치권에선 선관위가 선거관리 신뢰를 스스로 해쳤을 뿐만 아니라 강경 보수층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논란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서울 내 투표소들이 상대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지역에 집중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치적 논란은 거세졌다.
한국사 강사 출신 전한길 씨, 황교안 자유와혁신 당대표 등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시위대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터지자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 앞에서 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겪은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는 시위대가 밤새 선관위의 투표함 반출을 저지하며 재선거를 주장했다.
진보당은 성명을 내고 "중앙선관위가 선거의 공정성을 제대로 세우기는커녕 부정선거 음모론자에게 최악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비판하며 노태악 선관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번 사태는 법적 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장동혁 대표는 지난 밤 선관위를 상대로 선거무효 소송 추진 방침을 밝힌 상태다. 광역단체장 외에도 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 교육감 선거까지 동시에 치러진 상황이기 때문에 추후 불복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선관위는 심야 긴급위원회를 연 끝에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의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개표를 강행했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전날 오후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 허철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오민석 서울시선관위원장 등을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dyon@yna.co.kr
온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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