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최근의 달러-원 환율 급등 현상은 상식의 틀을 벗어난다. 반도체 수출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무역수지 흑자가 확대되며, 증시가 폭등하는 호황에도 원화는 오히려 달러 대비 가파른 약세를 보인다. 경제 펀더멘털만 놓고 보면 원화 강세가 자연스러워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올해 들어 원화는 달러 대비 5% 이상 하락하며 아시아 주요 통화 중 가장 부진한 성적을 냈다. 반도체 호황에도 달러-원 환율은 한때 1,550원을 넘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단순히 한국 내부적인 요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 국채금리 상승과 달러 강세는 신흥국 통화 전반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완화 기조가 약화하면서 글로벌 자금은 안전자산인 달러로 몰리고, 상대적으로 신흥국 통화는 약세를 면치 못한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 국제 원유가격 변동에 민감하다. 중동분쟁으로 인한 원유가격 상승은 원화 약세를 더욱 부추겼다. 여기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하는 한반도의 특수성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 경제 펀더멘털이 아무리 좋아도, 외부 충격에 취약한 구조는 원화의 신뢰를 약화할 수밖에 없다.
최근 환율 급등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자금의 '역류' 현상이다. 주가 급등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주식 비중이 과도하게 커지자, 이들은 포트폴리오 균형을 맞추기 위해 비중을 조절하고 있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 한국 주식을 120조원 넘게 팔아치웠고, 이 과정에서 달러 수요가 폭증하며 환율을 끌어올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가 급등이 환율 급등으로 이어지는 이상한 상황"이라 언급한 것도 바로 이러한 역설적 흐름을 지적한 것이다. 과거에는 주가 상승이 외국인 자금 유입으로 이어졌지만, 지금은 외국인이 급등한 자산을 정리하며 달러를 회수하는 '차익실현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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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대기업 등 수출기업의 외화 보유 전략도 원화 약세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사업 확장과 해외 투자 대비를 위해 수익 상당 부분을 달러화로 보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를 'D램 달러' 현상이라고 명명한다. 한국의 메모리칩 수출로 발생한 막대한 달러 수익이 국내로 환류되지 않고 해외에 머무는 현상으로, 산유국의 '페트로 달러'에 비견된다. 여기에 수출기업들이 원화 가치 하락을 예상하며 달러 환전을 미루는 경향은 환율 상승 압력을 더욱 키운다.
환율 급등 사태 속에서 정부와 외환당국은 시장 안정화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국민연금까지 공조에 나선 양상이다. 달러-원 환율이 1,550원을 돌파하자 정부는 구두 개입과 긴급회의를 통해 시장심리를 진정시키려 했다. 국민연금은 달러 매도 및 선물환 거래를 통해 급등세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재정당국·한국은행·국민연금이 협력해 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서면서 당장 환율 급등세는 진정되는 모습이다. 다만, 이런 조치가 단기적 진정 효과에 그칠 것이라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 외국인 자금의 방향이 바뀌지 않는 한 근본적인 시장안정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최근 달러-원 환율 급등 현상을 '뉴노멀'로만 치부하기엔 한계가 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일 수 있다. 반도체 호황과 증시 활황이라는 겉모습 뒤에 외국인 자금의 급격한 유출과 글로벌 달러 흐름에 대한 의존도가 자리한다는 얘기다. 정부와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은 잠시 불안을 완화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내생적 자본순환을 강화하고 'D램 달러'와 같은 외화 수익을 국내 금융시장으로 연결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주가와 환율이 동반 급등하는 이 기묘한 동행은 한국 경제가 세계 자본의 파도 속에서 얼마나 자율성과 회복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고 본다. 단기 처방을 넘어 장기적인 구조개혁과 자본시장 내실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러한 역설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가 글로벌 자본구조 속에서 어떤 전략적 선택을 내릴지 시험받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편집국장)
chhan@yna.co.kr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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