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AI 전면 수용한 삼성, 속도전으로 후발 격차 좁히기
SK는 사내 플랫폼·에이전트 내재화…LG는 엑사원 중심으로
(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삼성그룹이 전 관계사 차원의 인공지능 전환(AX)에 속도를 내면서 국내 주요 그룹의 사내 AI 전략 경쟁이 본격화됐다.
그동안 정보 유출과 보안 리스크를 이유로 외부 생성형 AI 활용에 가장 보수적이었던 삼성이 챗GPT와 제미나이 등 글로벌 AI 도구 도입에 나서면서 재계의 무게중심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AI를 통제해야 할 위험 요인으로 보던 시각에서, 업무 방식과 조직 생산성을 바꾸는 생존 인프라로 받아들이는 흐름이 굳어지는 모습이다.
다만 삼성과 SK, LG의 접근법은 뚜렷하게 갈린다. 삼성은 외부 최고 성능 AI를 전면 도입하는 개방성을 선택했다. SK는 민감 데이터 영역은 자체 모델과 사내 플랫폼으로 통제하고, 범용 영역은 외부 모델을 병행하는 '내재화'에 무게를 둔다. LG는 자체 AI인 엑사원을 중심축으로 삼으면서도, 일부 계열사를 통해 글로벌 모델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삼성, 가장 늦게 열었지만 가장 빠르게 확산
삼성의 AX 전환은 상징성이 크다. 삼성은 반도체와 스마트폰, 가전, 바이오 등 핵심 제조·기술 데이터를 다루는 만큼 외부 생성형 AI 활용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생성형 AI를 통한 코드·문서 유출 우려가 커지면서 사내 활용을 제한했던 대표 기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AI 활용 능력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면서 더는 폐쇄적 통제만으로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외부 AI 도구 도입과 함께 사장단·임원·직원 대상 AI 교육을 병행하고, 관계사별 전담 조직을 통해 AX 실행 체계를 갖추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삼성 전략의 핵심은 '도입 속도'다. 자체 모델과 인프라를 완전히 구축한 뒤 활용 단계로 넘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글로벌 AI 서비스를 먼저 현장에 투입해 임직원의 AI 문해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후발주자로서의 약점을 단기간에 만회하려는 실용적 선택이다.
AX 교육을 이수한 삼성의 한 임원은 "AI를 체계적으로 배우면 이렇게 쉽고 또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솔직히 놀랐다"며 "현업에서'일하는 방식'을 즉각적으로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절박함과 위기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삼성은 외부 생성형 AI의 전면 사용을 허용하는 동시에, 관련
보안 체계도 구축해 리스크 통제에도 나설 예정이다.
[출처: SK하이닉스 뉴스룸 제공]
◇ SK, 외부 AI 배제 아닌 '통제된 내재화'
SK는 삼성과 달리 이미 계열사별로 사내 AI 플랫폼과 업무 특화 에이전트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AX를 진행해왔다. 외부 AI 기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삼성과 같지만, 완제품형 도구를 그대로 전사에 개방하는 방식보다는 그룹과 계열사의 업무 흐름에 맞춰 재설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SK텔레콤의 자체 LLM인 에이닷엑스(A.X)를 비롯한 내부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일반 업무 영역에서는 글로벌 외부 모델을 병행하는 구조다. SK하이닉스와 SK온, SK실트론처럼 제조·공정·소재 등 민감 데이터를 다루는 계열사에는 통제된 사내 플랫폼과 자체 모델 활용이 더 중요하게 적용된다.
대표 사례가 SK하이닉스의 생성형 AI 플랫폼 '가이아(GaiA)'다. 가이아는 반도체 업무에 특화된 사내 AI 플랫폼으로, 구성원들이 보안망 안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부서·업무별 맞춤형 AI 에이전트를 개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반도체 설계와 공정, 장비, 공급망 등 민감도가 높은 데이터를 다루는 특성상 외부 AI 활용보다 내부망 기반의 통제된 활용이 중요하다.
SK텔레콤도 구성원이 자신의 업무 방식을 AI에 학습시켜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는 '에이닷 비즈 코워크'를 사내에 적용했다. 단순 질의응답형 챗봇을 넘어 업무 실행 계획 수립, 코드 작성, 결과 검증 등으로 기능을 확장하는 에이전트형 AX에 가깝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LG, 엑사원 중심축 지키되 외부 모델도 병행
LG의 전략은 또 다르다. LG는 LG AI연구원이 개발한 초거대 AI '엑사원(EXAONE)'을 중심으로 독자 AI 생태계를 구축해왔다. 엑사원은 한국어와 산업 데이터, 문서 이해, 멀티모달 영역에서 경쟁력을 키워온 모델로, LG가 제조·화학·배터리·가전 등 계열사의 산업 데이터를 안전하게 자산화하는 기반으로 활용해온 축이다.
LG가 자체 모델을 고수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글로벌 빅테크 모델에 전적으로 의존할 경우 비용 구조와 서비스 정책, 데이터 활용 조건이 외부 플랫폼 사업자에 좌우될 수 있다. 제조 현장에서 쌓인 공정 데이터와 연구개발 데이터는 단순 업무 문서가 아니라 기업 경쟁력의 핵심 자산이다. 이를 자체 AI 체계 안에서 학습·활용하려는 전략은 장기적으로 기술 주권과 비용 통제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GPT와 클로드, 제미나이가 가장 강력한 모델로 자리 잡았고, 기업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자체 모델을 개발하기보다 외국산 모델을 쓰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라며 "다만 국방, 의료, 공공행정처럼 민감한 데이터가 들어가는 영역은 해외 빅테크 모델에 그대로 맡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도 결국 이런 영역에서 국내 기업이 만든 AI를 활용하려는 흐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LG도 외부 모델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LG CNS는 최근 앤트로픽의 '클로드 엔터프라이즈' 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전사 업무 생산성 혁신과 고객사 AX 사업 확대에 나섰다. 이는 자체 모델을 중심축으로 두면서도 글로벌 고성능 모델을 필요한 영역에 외부 모델을 병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관전 포인트는 도입 선언보다 성과
재계의 AX 경쟁은 이제 선언의 단계를 지나 실행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삼성은 외부 AI의 빠른 전사 확산으로 조직 전체의 활용 능력을 끌어올리려 한다. SK는 계열사별 업무 특화 플랫폼과 에이전트로 AI를 현업 프로세스에 깊숙이 심고 있다. LG는 자체 모델을 중심으로 산업 데이터를 지키면서 외부 모델을 병행하는 균형점을 찾고 있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도입 규모가 아니라 투자 대비 효과다. 임직원들이 얼마나 자주 AI를 쓰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업무 시간이 얼마나 줄었는지, 연구개발과 생산, 영업, 고객 대응에서 어떤 비용 절감과 매출 기여가 나타나는지다.
AI 도입 초기에는 교육과 보안, 인프라 비용이 먼저 발생한다. 결국 시장은 어느 그룹이 AX를 비용이 아닌 이익 개선 요인으로 전환하느냐를 보게 될 것이다. 삼성의 속도, SK의 통제된 내재화, LG의 자체 모델 기반 하이브리드가 각기 다른 해법을 제시하는 가운데, 3대 그룹의 사내 AI 전략이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얼마나 크게 바꿔놓을지 주목된다.
ysyoon@yna.co.kr
윤영숙
ys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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