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일본의 닛케이신문은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아시아 행보에서 일본이 빠진 점을 두고, 일본이 인공지능(AI) 혁명 생태계에서 소외될 위험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황 CEO가 대만과 한국을 잇달아 찾았지만 일본은 건너뛴 데 대한 문제 제기다.
닛케이는 한국과 대만이 엔비디아 AI 반도체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엔비디아와 직접 연결된 기업이 많지 않다고 짚었다. 도쿄일렉트론, 어드반테스트, 신에츠화학 등 반도체 장비와 소재 분야의 강자가 있지만, 이들은 TSMC 같은 엔비디아 고객사의 거래처에 가깝다는 것이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러한 문제 제기는 지난주 젠슨 황의 방한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한다. 당시 방한은 산업계 행사 이상의 관심을 끌었다. 서울 홍대 인근 삼겹살집 회동과 삼성동 치킨집 방문, 잠실야구장 시구, 예능 프로그램 녹화까지 이어지며 그의 동선은 연일 화제가 됐다. 국내 대기업 총수들과의 만남은 엔비디아와 한국 기업 간 AI 협력 기대를 키웠고, 시장에서는 피지컬 AI와 AI 인프라 분야에서 한국이 새 성장축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기대가 확산됐다. 그럼에도 엔비디아 CEO의 방한이 일종의 볼거리로 소비되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이 느끼는 위기감은 한국 입장에서 역설적으로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이번 방한을 단순한 '쇼'로만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실제 협력도 적지 않았다. 메모리, 통신, 클라우드, 로봇, 배터리, 자동차, 데이터센터 운영 역량을 가진 한국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협력을 줄지어 발표했기 때문이다. 젠슨 황의 이번 방한은 피지컬 AI가 현실 세계로 확장되려면 한국 제조업의 기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각인시켰으며, 젠슨 황이 한국을 찾은 것도 이 기반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으로 해석됐다.
위상이 높아졌다는 사실과 그 위상을 실리로 바꾸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엔비디아의 플랫폼을 팔기 위한 로드쇼에 박수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엔비디아 생태계 안으로 들어가되, 그 안에서 한국 기업들이 실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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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끝난 뒤 남은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기대와 숙제가 함께 보인다. 협력의 방향은 나왔지만, 시장이 확인하고 싶었던 숫자는 충분하지 않았다. 어느 지역에 얼마를 투자할 것인지, 어떤 연구개발(R&D) 거점을 어느 규모로 세울 것인지, 몇 명을 고용할 것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 방한에서 공개된 협력은 적지 않았지만, 상당수는 '전략적 파트너십'과 '공동 추진'의 단계에 머물렀다.
대만과 비교하면 간극은 더 선명하다. 젠슨 황 CEO는 대만에서 엔비디아가 과거 연간 100억~150억달러를 쓰던 수준에서 이제는 연간 1천억~1천500억달러로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새 대만 본사는 올해 착공해 2030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4천명의 인력을 고용할 계획도 제시했다.
한국에서도 서울 AI R&D센터 설립, 주요 기업들과의 AI 팩토리 및 피지컬 AI 협력 구상이 언급됐다. 그러나 리서치센터의 투자 규모와 고용 인원, 구체적인 집행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네이버의 AI 팩토리 로드맵처럼 일부 인프라 계획은 비교적 구체화됐지만, 엔비디아가 한국에 직접 어느 정도의 자본을 투입할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규모가 빠진 투자 계획은 시장을 설득하기 어렵다.
젠슨 황 방한 전후로 협력 기대감이 붙었던 LG, 네이버, 두산로보틱스 등 관련주가 정작 협력 발표 이후 급락세를 보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엔비디아와의 협력 자체가 부정적으로 해석됐다기보다, 시장이 기대했던 수준의 직접 투자 규모와 단기 매출화 경로가 확인되지 않자 차익실현과 실망 매물이 동시에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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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부총리가 리셉션 현장에서 젠슨 황에게 던졌다는 말은 이번 방한의 본질을 가장 직설적으로 짚었다. 배 부총리는 젠슨 황 CEO에게 "엔비디아도 한국에서 쇼만 하지 말고 투자도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농담처럼 나온 말이겠지만, 가볍게 넘길 발언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한국 산업계의 속내가 담겨 있었다. 한국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AI 생태계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엔비디아가 한국 시장에서 충분한 관심과 환대를 받았다면, 이제는 그에 걸맞은 직접 투자 계획을 보여줘야 한다는 요구다. 민간 기업들이 GPU 공급망의 최상단에 선 엔비디아를 상대로 쉽게 꺼내기 어려운 말을 정부가 대신 꺼낸 셈이다.
이번 장면은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한국 기업들이 놓인 기회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 AI 전환의 핵심 자원은 GPU다. 그리고 그 GPU 공급망의 최상단에는 엔비디아가 있다. 엔비디아는 단순한 부품 공급사를 넘어 생태계의 규칙을 정하는 회사가 됐다. 그리고 많은 기업들이 그 생태계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이 됐다고 말한다.
한국은 이번에 일본처럼 비켜선 나라가 아니라 엔비디아가 직접 찾은 나라가 됐다. 그러나 젠슨황의 방문 사실만으로 산업의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AI 산업이 이번 방한을 진짜 기회로 만들려면, 엔비디아 생태계에 올라타는 것을 넘어 그 안에서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산업부 윤영숙 부장)
ysyoon@yna.co.kr
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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