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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호황에 달러 매출 늘었지만…삼전닉스의 외화 셈법 복잡한 이유는

2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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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달러예금 3.5개월 만 최대…정부, 수출기업에 조기 환전 요청

반도체 호황에 달러 매출 늘지만 美 투자·장비대금도 동반 증가

(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 속에 막대한 달러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이를 곧바로 원화로 환전해 국내로 들여오기는 쉽지 않은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정부가 최근 주요 수출기업들에 수출대금 환전과 해외 유보자금 국내 유입을 요청했지만,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사정이 단순하지 않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서버용 D램, 기업용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등 인공지능(AI) 관련 매출 대부분이 달러 기반으로 발생하는 동시에 미국 현지 투자와 첨단 장비 구매, 빅테크 고객사 대응에 필요한 달러 지출도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외형상 강달러 수혜가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달러 수익이 곧바로 원화 유입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이유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AI 호황에 달러 매출 확대…해외 투자·비용도 증가

17일 업계와 사업보고서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333조6천59억원, 영업이익 43조6천11억원을 거뒀다. 이 가운데 미주 매출은 133조2천748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약 40%를 차지했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 매출은 130조1천282억원, 메모리 매출은 104조811억원이었다.

SK하이닉스는 달러 매출 의존도가 더 높다. 회사는 사업보고서에서 영업 측면에서 매출의 90% 이상이 달러로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매출 97조1천467억원, 영업이익 47조2천63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HBM을 중심으로 AI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면서 달러 현금창출력이 크게 확대된 셈이다.

통상 원화 약세는 반도체 기업 실적에 우호적이다. 제품 판매는 대부분 달러로 이뤄지는 반면 임금과 일부 고정비는 원화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달러-원 환율이 오르면 같은 물량을 팔아도 원화 환산 매출과 이익이 늘어난다.

하지만 최근에는 강달러 수혜만으로 반도체 기업 실적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AI 반도체 호황으로 달러 수입이 늘어나는 동시에 달러로 써야 할 투자비도 빠르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에 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당초 170억달러 규모였던 투자는 미국 반도체지원법(CHIPS Act) 보조금 확정 과정에서 테일러 첨단 로직 팹 2곳과 연구개발(R&D) 팹, 기존 오스틴 공장 확장 등을 포함해 370억달러 이상으로 확대됐다. 원화로 환산하면 55조원 안팎에 달한다.

SK하이닉스도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HBM용 첨단 패키징 생산라인과 R&D 시설을 짓기 위해 38억7천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는 SK하이닉스의 첫 미국 첨단 패키징 생산 거점이다.

문제는 이 같은 투자가 대부분 달러 기반으로 집행된다는 점이다. 현지 공장 건설비와 인건비, 설비 구축비, 연구개발 비용은 물론 글로벌 장비업체에 지급하는 장비 대금도 상당 부분 달러 또는 유로로 결제된다.

첨단 장비 확보 경쟁도 달러 유동성 부담을 키운다. SK하이닉스는 최근 ASML로부터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약 11조9천500억원 규모로 구매하기로 했다. AI 메모리 호황으로 벌어들인 외화가 다시 첨단 장비와 설비투자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파운드리 공장 부지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외화 유동성 확보 필요한데 정부는 환전 요청

이 같은 흐름은 최근 정부의 외환시장 안정 요청과도 맞물려 기업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정부는 지난 11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기아, 조선업계 등 주요 수출기업들을 불러 외환거래 현황을 점검하고 환율 안정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고환율 장기화가 기업과 가계 부담을 키울 수 있는 만큼 수출대금을 조기에 환전하고 해외 유보자금도 국내로 유입되도록 노력해달라는 취지였다.

정부 입장에서는 수출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가 시장에 공급돼야 원화 약세 압력을 낮출 수 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달러를 원화로 바꾸면 향후 미국 투자와 장비 구매, 고객사 대응에 필요한 외화 유동성이 줄어든다.

실제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기업 달러예금 잔액은 지난 11일 기준 543억7천100만달러로, 2023년 1월 말 이후 3년 5개월 만의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정부의 환전 독려에도 기업들은 외화 지출과 시장 변동성에 대비하기 위해 일정 부문의 달러 보유가 불가피하다.

특히 반도체 기업의 경우 미국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현지 생산 요구, 대규모 설비투자, EUV 등 첨단 장비 도입, HBM 고객사 대응이 모두 외화 지출과 연결돼 있다.

삼성전자는 사업보고서에서 환율변동위험과 관련해 주요 통화로 달러와 유로를 제시하고, 통화별 자산과 부채 규모를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환율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입 등 영업거래와 예금·차입 등 금융거래에서 외화 현금 유입과 유출을 가능한 한 같은 통화로 대응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달러 매출이 많다고 해서 곧바로 원화로 바꾸는 구조가 아니라는 의미다. 오히려 달러 수입과 달러 지출을 자연스럽게 맞추는 '내추럴 헤지'가 반도체 기업 재무관리의 기본 축에 가깝다.

SK하이닉스도 달러 수입이 달러 지출보다 많은 구조로 알려져 있지만, AI 메모리 증설과 미국 패키징 투자, 첨단 장비 확보 경쟁이 겹치면서 달러를 원화로 바꾸기보다는 향후 투자 재원으로 남겨둘 유인이 커졌다. 특히 HBM은 엔비디아 등 미국 빅테크와의 공급망 연결성이 강하고, 후공정·패키징·검증 단계에서 고객사 요구에 맞춘 투자가 계속 필요하다.

SK하이닉스 양산용 '하이 NA EUV' 장비반입 행사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달러는 환차익 원천이자 투자 재원

시장에서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달러 보유 전략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정책, 관세와 수출통제, 현지 생산 요구가 맞물리면서 해외 투자 일정과 자금 집행 시점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강달러가 실적에 긍정적이라는 측면이 더 부각됐지만, 지금은 미국 투자와 장비 구매, 고객사 대응 비용까지 함께 봐야 한다"며 "달러를 많이 번다고 해서 모두 원화로 환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AI 반도체 호황이 만들어낸 달러 수익은 국내 반도체 기업의 실적을 떠받치는 동시에 새로운 재무 부담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 달러는 환차익의 원천이자, 미국 현지화와 첨단 공정 경쟁을 위한 투자 재원이다.

강달러가 반도체 기업에 호재라는 공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수출기업의 달러 환전을 독려하는 상황에서도 AI 반도체 기업들에는 달러를 국내로 들여오는 것만큼이나 해외 투자와 장비 확보에 남겨두는 판단이 중요해진 셈이다.

ysyoon@yna.co.kr

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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