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우호적 행동주의'를 고수해 온 VIP자산운용이 창사 23년 만에 처음으로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에 나선다.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일반주주의 압도적 반대로 부결됐던 이사 보수한도 상향 안건을 월덱스가 사실상 원안대로 재상정하자, 표 대결에 돌입한 것이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월덱스의 2대 주주인 VIP자산운용(지분율 15.64%)은 지난 9일 투자 목적을 '일반투자목적'으로 변경하고, 오는 29일 열리는 월덱스 임시주주총회에 상정된 이사 보수 관련 모든 안건(1호, 2-1호, 2-2호)에 반대하며 주주들에게 의결권을 위임해달라고 권유했다.
가치투자를 표방하며 경영진과의 비공식적 소통과 협력을 중시해 온 VIP운용이 직접 의결권 결집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정기주총 부결 후 한 달 반 만에 주주 소통이나 부결 사유 해소 없이 동일 안건을 강행하는 사측의 태도가 계기가 됐다.
앞서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는 최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된 상태에서 표결이 이뤄진 결과, 일반주주의 69.2%가 반대해 임원 보수한도를 70억원에서 80억원으로 높이는 안건이 부결된 바 있다.
특히 VIP운용은 월덱스 경영진이 이번 임시주총에 올린 이사 보수 안건을 '쪼개기 꼼수'로 규정했다.
월덱스는 임원 보수한도를 80억원으로 상향하는 1호 의안이 부결될 경우에 대비해, 보수한도를 '사내·사외이사(50억원)'와 '대표이사(20억원)'로 분리해 표결하는 2호 의안을 올렸다.
배종식 월덱스 대표(지분율 34.8%)는 자신의 보수 안건에 특별이해관계인으로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하지만 안건을 분리하면 사내이사인 두 자녀(배영수·배기화)가 포함된 보수 안건에 배 대표가 최대주주로서 찬성표를 던질 수 있게 된다. 대주주 일가를 견제하는 일반주주의 기능이 무력화되는 셈이다.
경영 성과와 주주환원이 완전히 괴리된 보수 책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월덱스는 최근 3년간 1천600억원가량의 순이익을 거뒀으나, 같은 기간 전체 주주에게 지급한 배당금 총액은 36억원(평균 배당성향 2.3%)에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배 대표 개인에게 지급된 누적 보수는 약 40억원으로, 전체 주주의 배당금 총액을 웃돈다.
실적 악화 속에서도 성과급은 이어졌다. 2025년 월덱스의 별도 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6.7% 감소했지만, 배 대표의 성과급은 오히려 1억1천만원에서 1억5천만원으로 늘었다. 명확한 성과평가 기준이나 독립적인 보수위원회 없이 이사회 재량으로 보수를 결정하는 구조 탓이라는 지적이다.
과도한 한도 설정 자체도 문제로 지적된다. 월덱스의 이사 1인당 보수한도(17억5천만원)는 동종업계 평균(4억1천만원)의 4배를 훌쩍 넘는다. 올해 이사가 2인 증원된 점을 반영해도 피어그룹 최고치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최근 3년 평균 이사보수 집행률은 28.1%에 불과하다. VIP운용 측은 한도와 집행 간 격차가 크다 보니, 회사가 주주의 추가 동의 없이도 매년 보수를 두 자릿수 비율(2024년 21.1%, 2025년 13.6%)로 올려왔다며 이를 주주 통제권을 무력화하는 '백지수표식 보수한도'라고 비판했다.
국민연금은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상 실지급률이 50%를 밑도는 과도한 보수한도 안건에는 반대표를 행사하고 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 역시 과도한 한도 산정과 설명 부족을 이유로 2년 연속 반대를 권고했으며, 국내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의 가이드라인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시장 일각에서는 월덱스의 극단적인 저배당 정책과 주가 억누르기가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올해 75세인 배 대표는 지분 약 35%를 보유하고 있지만, 경영에 참여 중인 두 자녀는 회사 주식이 없다. 우량한 실적과 2천300억원 규모의 현금성 자산에도 불구하고 시가총액이 3천800억원대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 향후 지분 증여나 상속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반주주의 주총 참여를 원천 봉쇄하는 주총 운영 방식도 논란을 키웠다.
월덱스는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운영했던 전자투표 제도를 이번 임시주총에서는 배제했다. 서면투표 제도마저 없어, 주주가 표를 행사하려면 평일인 29일 월요일 오전 9시 경북 구미 본사를 직접 방문하거나 사전에 의결권을 위임하는 수밖에 없다.
김민국 VIP운용 대표는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된 안건을 재상정하면서 정기주총 때 시행했던 전자투표마저 배제한 것은 직접 참석이 어려운 반대 주주의 의사가 온전히 반영되는 것을 막겠다는 뜻"이라며 "충분한 참여 기회가 보장되지 않은 표결은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어 "회사의 일방적인 안건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뜻을 함께하는 주주들의 적극적인 반대 의결권 위임을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VIP자산운용]
kslee2@yna.co.kr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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