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관투자자, 금융위에 연이은 서한…칭찬 다음엔 '숙제'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글로벌 대형 기관투자자들을 대변하는 국제기업지배구조네트워크(ICGN)가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개혁 흐름을 환영하면서도 제도의 실질적인 이행과 집행을 촉구하는 9대 우선순위 과제를 금융당국에 제시했다.
앞서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의 감사 서한에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화답하며 고조된 긍정적 분위기 속에, 제도의 안착을 요구하는 글로벌 시장의 깐깐한 청구서가 날아든 셈이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ICGN은 지난 15일 젠 시슨 최고경영자(CEO) 명의로 금융위원회에 '한국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정착을 통한 자본시장 신뢰 제고' 제하의 서한을 발송했다.
ICGN은 100조달러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는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주도하는 기관으로, 전 세계 40여 개국 회원사를 둔 기업지배구조 분야의 권위 있는 비영리 단체다.
ICGN은 서한에서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상법 개정, 지배구조 의무공시 확대 등 자본시장 개혁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건전한 지배구조는 단순한 규정 준수 문제가 아니라 이사회 내 독립성과 수탁자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며 실질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세부 과제들을 권고했다.
[ICGN의 서한]
◇이사회 독립성 확보 및 소수주주 권리 보호
ICGN은 가장 먼저 이사회 독립성과 책임성 강화를 주문했다. 자산총액 2조원 미만 기업도 점진적으로 이사회 과반을 사외이사로 구성하도록 장려하고, 사외이사가 경영진 자문에 그치지 않고 전략과 자본 배분, 최고경영자(CEO) 승계 등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수주주 권리 강화를 위한 선출 메커니즘 개선도 요구했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규정이 계열사나 공동행동 관계를 악용한 꼼수로 우회되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3% 룰' 적용 시 특수관계인 합산 방식에 관한 명확한 지침 제공도 당부했다. 아울러 경영진과 불필요한 대립을 줄이면서도 자본 배분 등 주요 사안을 묻고 따질 수 있는 '비구속적 자문성 주주제안 제도'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주총 현대화와 합병·분할 시 이사회 감독 강화
정기주주총회 운영 방식의 현대화도 주요 의제로 올랐다. 주총 소집 통지 기간을 4주로 연장하고, 특정일에 주총이 집중되는 이른바 '슈퍼 주총데이'를 분산할 규제 장치 마련을 권고했다.
내년부터 대형 상장사에 의무화되는 하이브리드 주총(전자 주총) 도입 시 온라인 전용(Virtual-only) 개최는 허락해서는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인수합병(M&A)이나 기업 분할, 자회사 상장 등 주요 기업 거래 시 이사회 산하 특별위원회의 역할을 실질화해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ICGN은 "특별위원회와 독립적 공정성 의견서가 지배주주의 결정을 추인하는 절차적 형식에 머물러선 안 된다"며 금융위의 철저한 시장 감독을 주문했다.
◇"의결권 자문사 규제 신중해야"…집행 실효성 확보 당부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을 독려하면서도 의결권 자문기관을 향한 과도한 규제는 경계했다. ICGN은 "투자자가 수탁자 의무 이행을 위해 조달하는 자문 및 리서치 서비스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조치 도입에는 신중해야 한다"며 "지나친 개입은 최종 수익자에게 비용을 전가하고 장기 수익률을 약화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 밖에도 자본 배분 정책의 명확한 공시, 지배권 방어 목적의 자기주식 활용 제한, 자산 2조원 이상 기업 대상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조기 도입 등을 촉구했다.
ICGN은 "향후 18~24개월간 최근 상법 개혁의 이행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추가 입법 로드맵을 발표해야 한다"며 "위반 행위에 대처하기 위해 시가총액에 연동된 단계적 제재를 도입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ACGA도 이례적 공개 서한…높아진 글로벌 관심
ICGN에 앞서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 역시 지난 9일 한국 정부와 국회 등에 이례적인 공개 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당시 ACGA는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명확화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과 주총 의결권 당일 공시,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등을 주요 성과로 꼽으며 호평했다. 불과 3년 전 한국을 아태지역 12개국 중 8위로 평가하며 "일관된 로드맵이 없다"고 혹평했던 태도와 대조적이다.
다만 ACGA 역시 온전한 합격점을 주지는 않았다. 의무공개매수제도 등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들의 통과를 핵심 과제로 짚으며 지속적인 제도 개선을 당부했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두 기관이 연이어 서한을 보내면서, 금융당국과 상장사를 향한 시장의 감시망은 한층 촘촘해지고 있다. 실제 시장 관행과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이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kslee2@yna.co.kr
이규선
ks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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