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미국 정부가 앤트로픽의 최상위 인공지능(AI) 모델 접근을 제한하면서 각국의 소버린 AI 확보 필요성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미국 AI 모델을 활용하는 해외 기업과 기관도 미국 정부의 정책 판단에 따라 접근권이 제한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이른바 독파모 사업의 정책적 명분도 커졌음을 시사했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미토스·페이블 접근 제한…정부 "사실관계 파악 중"
2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최근 앤트로픽의 최상위 AI 모델인 '미토스5'와 '페이블5'에 대해 외국 국적자의 접근을 제한하는 수출통제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조치는 해외 접속뿐 아니라 미국 내 외국 국적자의 이용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앤트로픽은 규정 준수를 위해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페이블5와 미토스5 서비스를 중단했다. 다만 이번 조치가 기술적 사실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며 서비스 복구를 위해 미국 정부와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즉각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과기정통부는 앤트로픽 측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조치의 배경과 적용 범위, 한국 측 영향 등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한국이 앤트로픽이 주도하는 AI 협력 구상인 '글래스윙'에 합류한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SK텔레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글래스윙에 참여한 상태다.
글래스윙은 미토스 계열 모델을 활용해 사이버 취약점 탐지와 대응 체계를 검증하는 국제 협력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미토스 접근이 제한될 경우 참여 기관의 실질적 협력 범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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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트로픽 "문제 해결 노력"…정부와 AI보안 협력
이후 앤트로픽은 한국 정부에 미토스 수출통제 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 정부와 소통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크리스 차우리 앤트로픽 글로벌 총괄은 지난 18일 과기정통부와의 업무협약식에서 "미 정부 관계자에게 적극 접촉해 잘 설명하고 있다"며 페이블5 재개를 위한 노력을 밝혔다. 미토스5와 관련해서도 "잘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정통부와 앤트로픽은 최근 AI 안전성 확보와 사이버보안 분야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양측은 AI가 사이버 공격과 방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한국어 환경에서의 AI 모델 안전성과 오남용 위험 평가, 자율형 AI 에이전트 레드팀 평가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이버보안 분야에서는 금융권을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 AI 취약점 발굴과 사이버 위협 정보 공유 체계를 구축한다.
정부는 엔비디아, 오픈AI, 구글 딥마인드에 이어 앤트로픽과도 협력망을 넓히면서 글로벌 AI 빅테크와의 협력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외 AI 모델 접근권이 정책 변수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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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대중 기술 견제, AI 모델로 확대
이번 사태는 개별 기업의 접근권 논란을 넘어 미국의 대중 기술 견제 전략이 AI 모델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의 첨단 기술 발전을 늦추기 위해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반도체, 미국산 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을 제한해왔다. 최근에는 ASML의 EUV 장비가 중국으로 반입됐을 가능성까지 문제 삼으며 통제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토스 사태도 이 같은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상위 AI 모델이 중국 또는 중국과 연계된 산업 생태계로 흘러 들어갈 경우 사이버 공격, 군사 정보 분석, 첨단 제조 역량 강화 등에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출통제의 초점이 반도체와 장비 등 물리적 자산에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AI 모델과 접근권 같은 비물리적 자산으로 전선이 넓어지는 모습이다.
특히 동맹국 기업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국내 기업들의 리스크 관리 필요성도 커졌다. 한국 기업이 직접 제재 대상이 아니더라도 중국과의 과거 투자, 합작, 공급망 연계 이력이 미국 정부의 안보 심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외신은 최근 앤트로픽이 글래스윙 참여 대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중국 연계 의혹을 받는 국내 통신사가 포함됐고, 이를 확인한 미 행정부가 제동을 건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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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국도 AI 주권 논의 가속…韓 독파모 명분 강화
미토스 접근 제한 이후 미국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AI 주권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자국 AI 스타트업 미스트랄 AI 기반 모델 도입 방침을 밝혔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AI 모델을 특정 파트너의 선의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고 언급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이번 조치가 특정 AI 모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국가를 얼마나 취약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독일과 유럽 정치권에서도 미국 AI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독파모 사업은 국내 AI 기업이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산업별 활용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동안 일부에서는 글로벌 빅테크 모델을 활용하면 된다는 시각도 있었지만, 이번 사태는 해외 모델 의존의 한계를 보여줬다. 성능이 뛰어난 모델을 쓰는 것과 핵심 AI 역량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방, 금융, 의료, 제조, 공공서비스 등 국가 핵심 영역에서 특정 해외 모델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정책 변화나 지정학적 갈등에 따라 서비스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산업 운영의 연속성과 데이터 주권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글로벌 AI 협력의 필요성과 별개로 독자 모델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독파모 사업도 국가 AI 인프라 확보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ysyoon@yna.co.kr
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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