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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서의 조곤조곤] 시장은 시간을 지우고 있다

2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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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금융의 역사는 시간을 줄여온 역사였다.

은행은 수십 년에 걸쳐 벌어들일 소득을 오늘의 대출로 바꿔줬고, 채권은 미래 현금흐름의 가치를 현재 가격으로 계산했으며, 보험은 미래의 위험을 현재의 비용으로 나눠 담았다. 금융은 돈을 다루는 산업이지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을 거래하는 산업이었다.

그래서 금융시장의 발전은 언제나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은행 창구 앞에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던 시대는 인터넷뱅킹으로 바뀌었고, 증권사 객장에서 주문표를 작성하던 시대는 스마트폰으로 거래하는 시대로 넘어왔다. 해외 주식 투자도 며칠씩 걸리던 송금 절차 대신 몇 번의 클릭으로 가능해졌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금융은 더 빨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이 있다. 주식을 팔고 난 뒤의 이틀이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주식을 팔았는데 왜 돈을 돌려받는 데 이틀이나 걸리느냐"고 물었다.

이 짧은 질문을 두고 금융권이 술렁였다. 대통령의 입에서 'T+2'라는 자본시장 인프라의 영역에 가까운 문제가 공개적으로 언급된 것 자체도 이례적이었지만, 그 질문이 지금 세계 금융시장이 향하고 있는 방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국내 증시는 여전히 T+2 체계로 운영된다. 오늘 주식을 팔면 실제 결제는 이틀 뒤에 이뤄진다. 화면에서는 거래가 끝났지만, 돈과 주식은 아직 이동 중인 상태다.

원래는 합리적인 제도였다.

종이 증권이 오가던 시절에는 거래 사실을 확인하고 대금을 정산하고 증권을 이전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전산화 이후에도 청산기관과 예탁기관은 결제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일정한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거래와 결제 사이의 시간은 시장 안정성을 위한 비용이자 안전장치였다.

하지만 기술은 제도가 만들어졌던 시대보다 훨씬 앞서 나갔다.

미국은 지난해 'T+1' 체계로 전환했다. 유럽과 일본도 같은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나스닥은 토큰화 증권 시장 구축을 추진하고 있고, 블록체인 기반 금융은 거래와 결제를 동시에 처리하는 'T+0' 체계를 실험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금융시장이 줄이려는 것은 수수료가 아닌 시간이다.

결제까지 이틀이 걸린다는 것은 단순히 이틀을 기다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동안 자금은 묶여 있고 투자자는 기다려야 하며, 시장은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금융이 고도화될수록 거래비용의 상당 부분은 결국 시간에서 발생한다.

최근 한국 경제를 둘러싼 여러 논의도 결국은 속도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AI는 초 단위로 투자 판단을 내리고, 글로벌 자금은 실시간으로 움직인다. 투자자들은 24시간 시장 정보를 소비한다. 그런데 거래가 끝난 돈은 여전히 이틀 뒤에야 돌아온다. 과거에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이 이제는 비효율의 상징이 됐다.

물론 금융의 시간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는다.

결제주기를 줄일수록 시스템 안정성 확보는 더 중요해진다. 청산기관과 증권사, 거래소와 예탁결제원 모두 새로운 위험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 미국 역시 T+1 체계 전환을 위해 수년 동안 제도와 전산 시스템을 정비했다.

그럼에도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 금융은 거래를 더 빠르게 만드는 단계를 넘어 결제를 더 빠르게 만드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더 이상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제도의 관성이 시간을 만들고 있는 시대다.

어쩌면 대통령이 물은 것은 결제주기가 아니라, 한국의 자본 시계가 아직도 과거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술이 바꾸는 것은 거래의 방식이 아니라 시간의 가치다. (경제부 정치팀 차장)

발언하는 이재명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6.23 xyz@yna.co.kr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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