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공항도 한번 가봅시다"…30일 헬기시찰서 즉석 제안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지난달 30일 전남 서남권 상공.
약 90여분간 이어진 헬기 시찰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광주와 전남 일대의 산업단지 후보지를 둘러본 이재명 대통령은 예정된 동선을 거의 마칠 무렵 수행진을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
"무안공항도 한번 가봅시다"
남은 연료를 확인한 헬기는 곧바로 기수를 무안으로 돌렸다. 이 대통령 옆자리에는 김용범 정책실장과 이두희 국방부 차관이 자리했다.
기내에서는 헤드셋을 낀 대통령이 지도를 펼쳐 놓고 광주 군공항과 무안공항, 주변 산업부지와 교통망을 하나씩 짚어가며 질문을 이어갔다. 공항 이전은 언제 가능한지, 산업단지를 얼마나 빨리 조성할 수 있는지, 기업들이 원하는 입지 조건은 무엇인지 등을 꼼꼼히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무안공항 시찰은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 비전 국민보고회' 직후 이어진 일정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정부는 3대 메가 프로젝트의 한 축인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핵심 입지로 광주 군공항을 공식 낙점했다.
당시 이 대통령의 즉석 지시로 추가된 무안공항 방문은 결과적으로 이번 프로젝트의 최대 난제를 직접 확인하는 과정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와 관계 부처는 지난 수개월 동안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를 놓고 첨단3지구와 솔라시도, 새만금 등 다양한 후보지를 검토해왔다.
하지만 최종 논의는 결국 '기업들이 원하는 속도를 맞출 수 있는가'라는 한 가지 질문으로 모였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부지가 아무리 좋아도 기업 투자 시계와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속도와 확장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고 회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보다 먼저 광주 군공항의 가능성에 주목한 것은 기업들이었다.
삼성전자는 이미 5년 전부터 광주 군공항을 용인 이후 차세대 반도체 생산 거점 후보로 검토해 왔다. 정부가 후보지를 설명하는 자리에서도 삼성 측 인사는 "우리가 그 부지는 더 오래 봐와서 잘 안다"는 취지의 반응을 내놨다고 한다.
삼성보다 팹 건설이 더 절실한 SK하이닉스 역시 관심은 광주 군공항 뿐이었다. 두 회사가 사실상 동일한 입지를 차기 투자 후보로 검토해 온 셈이다.
정부가 광주 군공항에 주목한 이유도 기업들의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속도가 압도적인 장점이었다.
광주 군공항은 약 250만평 규모의 국유지다. 토지 보상 절차에 따른 불확실성이 거의 없고 공항 부지 특성상 대규모 평탄화 작업도 이미 이뤄져 있다.
일반적인 산업단지는 토지 보상과 평탄화, 환경영향평가, 전력·용수 공급, 각종 인허가 등을 순차적으로 거치면서 착공까지 수년이 걸리지만 광주 군공항은 상당 부분을 병행하거나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접근성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광주 도심과 KTX역이 가까워 연구개발 인력과 협력업체 확보가 쉽고, 도로와 공항, 항만을 연계한 물류망 구축도 가능하다.
현재 정부는 장기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모두 입주하는 대규모 반도체 벨트를 구축할 수 있는 확장성까지 고려하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전일 '메가프로젝트 민관합동 점검회의' 직후 열린 브리핑에서 광주 군공항 부지 250만평에 양사가 모두 입주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두 회사가 다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평수가 그것보다 좀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당연히 다 들어가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 내부에서는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최소 300만~400만평 규모의 산업용지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기존 첨단3지구만으로는 이런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고, 장기적인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판단 아래 광주 군공항 부지를 최종 낙점한 셈이다.
하지만 최적의 입지를 찾았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광주 군공항을 활용하려면 결국 군공항 기능을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한다. 정부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무안공항 이전 사업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검토 결과는 녹록지 않았다.
무안공항의 조기 완공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였다. 매립 공사에 필요한 토사 확보, 환경영향평가 등 법적 절차만 거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서다.
그렇다고 3년 남짓 남은 현 정부 임기 안에 공항 이전만 바라보고 있을 순 없었다는 게 청와대 내 중론이다.
이번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 선정 과정에서 정부의 고민은 공항 이전 자체보다 '기업 투자를 어떻게 늦추지 않을 것인가'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고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수도권 반도체 생산기지가 앞으로 6~8년 안에 포화될 것이란 인식 아래 당초 계획보다 투자 시기를 앞당기고 있는만큼 정부도 기존 행정속도로는 기업의 수요를 따라갈 수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공항을 다 옮긴 뒤 산업단지를 만드는 방식으로는 기업 투자 시계를 맞추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광주 군공항을 최대한 빠르게 활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것이 현재 정부가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날 이 대통령이 헬기에서 둘러본 것은 단순히 광주 군공항과 무안공항만이 아니었다. 기업의 투자 속도와 정부의 행정 속도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간극이었다.
정부가 일주일 만에 광주 군공항을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중심축으로 낙점한 것도 결국 그 간극을 가장 효과적으로 좁힐 수 있는 선택지라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였다.
(서울=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서남권 산업단지 후보지를 항공시찰하고 있다. 2026.6.30 [청와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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