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의 명품 매장 앞에는 여전히 긴 줄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같은 도시 외곽 상권에서는 초저가 잡화점들이 빠르게 매장 수를 늘리고 있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런 소비 흐름을 '케이(K)자형 소비'라고 이름 붙였다. 알파벳 K의 두 획처럼 고소득층의 소비는 위로 향하고 저소득층의 소비는 아래로 향한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나라 유통업계에서 벌어지는 현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른바 올다무(올리브영·다이소·무신사)로 불리는 브랜드의 부각이다. 이들 브랜드는 모두 가성비로 접근하는 소비재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국가데이터처의 지난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17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 늘었다. 반면 상위 20%(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천237만8천원으로 4.2% 증가했다. 국가데이터처는 5분위 소득이 많이 늘어난 배경으로 종업원 300인 이상 대기업 중심의 임금 상승률 강세를 꼽았다. 대기업 고소득 근로자 비중이 높은 5분위가 임금 인상의 혜택을 더 크게 누렸지만, 1분위는 상대적으로 소외된 셈이다.
[출처: 국가데이터처]
이런 소득 양극화가 가장 먼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이 유통업계다.
균일가 생활용품점 다이소를 운영하는 아성다이소는 지난해 매출 4조5천363억원, 영업이익 4천424억원을 기록했다. 반대편 끝단에 있는 백화점도 웃었다. 신세계[004170]백화점과 현대백화점[069960], 롯데쇼핑[023530]의 롯데백화점은 지난 1분기에 동분기 기준 역대 최고 수준의 영업이익을 냈다. 자산 증가 효과로 고소득층의 소비가 늘었고 외국인 매출도 한몫했다.
문제는 그 사이에 낀 채널이다. 지난해 이마트는 흑자를 냈지만, 롯데마트는 적자로 돌아섰고, 홈플러스는 대규모 영업손실 끝에 지난해 3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최근에는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폐지 결정까지 받으며 청산의 갈림길에 섰다. 홈플러스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홈플러스를 비롯한 대형마트의 위기는 시장 트렌드와 맥을 같이하지만, 여기에는 구조적인 문제점도 존재한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대형마트 3사가 전체 유통업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4월 기준 7.9%로 역대 최저치다. 2020년에 17.9%와 비교하면 6년 만에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이 구조를 단순히 온라인 쇼핑의 부상이나 소득 양극화, 1인 가구 증가로만 설명하기는 부족한 면이 있다.
대형마트는 2012년부터 14년째 출점 제한과 의무휴업 규제를 받고 있다. 애초 전통시장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정작 전통시장이 살아난 흔적은 뚜렷하지 않고 그 자리를 다이소와 이커머스가 채웠다. 규제가 겨냥한 대상과 실제 수혜를 입은 대상이 어긋났다. 홈플러스 사태 역시 규제와 사모펀드라는 자본의 실패가 겹치면서 중간 채널이 가장 먼저 무너진 대표적인 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런 흐름이 올해도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올해 유통산업 전망에서도 대형마트를 포함한 오프라인 업태는 위축이 예상되지만, 온라인과 명품·체험 중심 대형 점포는 상대적으로 견조할 것으로 진단했다. 이마트가 최근 5천원 이하 편집존 '와우샵'을 시범 운영하며 다이소식 초저가 전략을 뒤늦게 벤치마킹하는 것도 이런 위기감의 방증이다.
결국 관건은 정책과 자본이 이 양극화를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규제의 목표와 수단을 다시 설계할 것인지다. 의무휴업 규제가 지켜온 것이 전통시장이 아니라 오히려 대형마트의 몰락이었다면 규제의 존재 이유부터 다시 물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케이(K)자형 소비가 거시경제의 그림자라면, 유통업계의 양극화는 그 그림자가 가장 먼저 드리우는 자리다. 이 간극을 정책으로 메워야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다이소와 백화점이 웃는 동안 그 중간에 있던 일자리와 상권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산업부 차장)
[출처:연합뉴스 자료사진]
msbyun@yna.co.kr
변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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