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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서의 조곤조곤] 메리츠는 정말 악역인가

2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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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홈플러스는 왜 망하면 안 되는 회사가 됐을까.

기업은 망할 수 있어야 한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시장경제는 그 전제 위에 서 있다. 실패한 기업의 자산과 인력은 더 효율적인 곳으로 이동하고, 그 과정에서 경제는 성장한다. 기업의 퇴출은 시장경제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작동 방식의 일부다.

그런데 홈플러스 앞에서는 이 원칙이 멈춰 선다. 정치권도, 노동자도, 협력업체도, 입점 상인도 모두 "홈플러스는 망하면 안 된다"는 같은 말을 반복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홈플러스는 더 이상 하나의 유통회사가 아니다. 1만3천여 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 수천 개의 협력업체와 입점 상인, 납품 농가, 지역 상권이 촘촘히 연결된 하나의 생태계다. 기업 하나의 운명이 수많은 사람의 삶으로 이어지면서 시장의 문제가 정치의 문제가 됐다.

그래서 정치는 시간을 벌려고 한다. 기업 하나를 살리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일자리와 협력업체의 생존, 지역경제가 무너지는 속도를 늦추려는 것이다. 정치가 사회적 비용을 계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역할이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메리츠는 악역이 된다. 추가 자금을 투입하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압박도 커진다. 마치 메리츠가 한 발만 물러서면 이번 사태가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된다.

메리츠는 누구인가. 돈을 빌려준 채권자다. 채권자의 역할은 분명하다. 빌려준 돈을 최대한 회수하는 데 있다. 금융회사가 운용하는 돈은 결국 예금자와 투자자의 자산이다.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책무다. 냉정하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그 원칙을 바꾸기는 어렵다.

물론 이번 사태의 경영 책임은 홈플러스를 인수해 운영해 온 MBK파트너스에 가장 먼저 있다. 그 책임이 사모펀드 대표의 개인 재산을 끝없이 투입하는 것까지 의미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경영 실패의 책임과 투자 원칙의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전날 국회에서 열린 홈플러스 회생을 위한 MBK파트너스와 메리츠 경영진의 간담회는 이 복잡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MBK는 대주주의 책임 범위를 이야기했고, 메리츠는 채권자의 원칙을 이야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누구 하나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며 MBK파트너스와 메리츠를 '가짜 엄마'에 빗댔다.

양보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선례를 만들 수 없어서다. 금융은 한 번의 거래로 끝나지 않는다. 홈플러스에서 만든 원칙은 또 다른 구조조정의 기준이 된다. 정치적 압박 때문에 기존 원칙을 바꾼다면, 다음에는 부동산 PF가, 또 다른 대기업의 유동성 위기가, 또 다른 회생 절차가 같은 논리로 찾아올 게 불 보듯 뻔하다. 금융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번 거래의 손실보다 원칙이 무너지는 첫 번째 사례다. 메리츠와 MBK가 계산하는 것은 오늘의 홈플러스가 아닌 내일의, 내일 모레의 홈플러스들이다.

그래서 정치와 금융은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른 언어로 말한다. 정치는 오늘을 해결하려 한다. 노동자의 오늘, 협력업체의 오늘, 지역경제의 오늘이다. 반면 금융은 내일을 계산한다. 이번 거래보다 다음 거래를, 이번 원칙보다 다음 사례를 본다. 그렇게 정치는 시간을 벌고, 금융은 시간을 잰다.

이러구러 홈플러스가 끝나도 이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다음 PF에서, 다음 석화 산업 구조조정에서 우리는 또 누군가에게 "조금만 더 양보하라"고 말할 것이다. 그때도 정치는 시간을 벌려 할 것이고, 금융은 시간을 잴 것이다.

누군가에게 메리츠는 악역일 수 있다. 하지만 메리츠는 그저 우리 사회가 오래 미뤄왔던 질문을 가장 먼저 받은 채권자인지도 모른다. 홈플러스가 남긴 숙제는 이들을 비난하는 데 있지 않다. 정치는 어디까지 시장에 개입해야 하고, 금융은 어디까지 원칙을 지켜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다음 홈플러스'는 또 온다. (경제부 정치팀 차장)

홈플러스 회생을 위한 MBK파트너스-메리츠 경영진 간담회

(서울=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최로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홈플러스 회생을 위한 MBK파트너스-메리츠 경영진 간담회'. 이 자리에는 김광일 MBK 부회장, 김중현 메리츠화재 대표, 조주연 홈플러스 대표가 참석했다. 2026.7.9 sco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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