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2024년 8월 5일의 코스피 서킷브레이커. 5천피를 넘어 9천피 시대까지 경험한 지금은 흔한 일이 됐지만, 당시 서킷브레이커는 충격 그 자체였다. 4년여 만의 첫 서킷이기도 했고, 주가 폭락 이유를 딱히 찾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공포가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킷브레이커는 지수가 전일 종가대비 8%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할 경우 발동한다. 당일 코스피는 8.8% 하락 마감해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하루 낙폭을 기록했다. 코스닥은 11% 넘게 폭락했다.
표면적인 코스피 급락 이유는 일본 닛케이지수의 폭락이었다. 닛케이는 같은 날 하루 만에 12.4% 추락했다. 그날 밤 미국 나스닥지수는 장중 6% 이상 급락했다. 미 고용지표 악화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안전자산 선호와 위험자산 매도를 동시에 자극했다. 여기에 수급적인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뒤늦게 제기됐다.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청산 가능성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낮은 금리의 엔화를 빌려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일본의 금리 인상 기대와 엔화 강세가 겹치면 기존 포지션을 되돌리는 과정에서 자산 매도물량이 몰릴 수 있는데, 그날을 전후로 이 물량이 쏠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일본은행은 7월에 금리를 인상했고, 외환시장에선 달러-엔 환율이 141엔까지 내려가는 엔화 강세가 연출됐다. 미 경기 침체라는 매크로 우려까지 겹치며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물량이 쏟아질 수 있는 환경이 순간적으로 조성됐던 셈이다.
출처:연합뉴스
시장에서 엔 캐리 문제를 다시 꺼내든 건 최근 들어 2024년 8월과 유사한 취약성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장단기 금리차 확대와 과도한 수준의 엔화 약세, 긴축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중앙은행 환경 등이 그렇다. 일본은행(BOJ)은 지난 달 기준금리를 연 0.75%에서 1.0%로 인상했다. 현재 미국과의 금리차가 2.5%포인트 이상으로 커서 엔 캐리 트레이드에 미칠 영향은 당장은 제한적이란 평가가 우세하다. 다만, 엔화 약세 베팅 물량이 과도하게 커졌다는 평가 속에 당국의 환율 개입이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 등에 투자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여지는 있다. 일본 기준금리가 추가 인상될 분위기가 조성되거나 엔화 가치가 상승세로 돌아선다면 엔 캐리 자금의 청산 압력이 커질 수 있단 얘기다. 엔화 가치가 올라가면 캐리 트레이드로 보유한 자산의 기대 수익이 줄어들거나 손실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 국채금리의 상승세가 심상찮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본 채권시장에서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지난 9일 한때 2.90%를 돌파했다. 이는 1996년 9월 이후 약 30년 만의 최고치다. 해외에서 일본 국채에 대한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면 달러-엔의 하락 요인(엔화가치 강세)이 될 수 있다. 이에 더해 채권시장에서 금리 상승세가 지속되면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기대도 커질 수 있다. 일본 국채 금리의 상승세를 간과해선 안 되는 이유다.
출처:연합인포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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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는 건 전 세계에 뿌려진 엔 캐리 자금 규모가 가늠조차 안 되기 때문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역사는 30년에 육박한다고 평가된다.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은 1990년대 후반 제로금리 시대를 열었고, 이때부터 엔화는 세계에서 가장 싸게 빌릴 수 있는 '자금줄'이 됐다. 투자자들은 엔화를 빌려 미국과 유럽, 신흥국의 고금리 자산에 투자했다. 엔 캐리 자금이 지난 30여년간 글로벌 유동성의 원천이 됐던 셈이지만, 자금 규모가 막대해지면서 언제든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단 걱정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금리가 장기 상승 추세로 돌아선 상황에서 앞으로 엔 캐리 청산의 트리거는 엔화 가치 반등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엔화 약세가 과도한 수준에 왔다는 평가 속에서 자칫 상승 전환의 물꼬가 트이면 청산 공포가 급속도로 퍼질 수 있다. 일본 외환당국의 적극적인 실개입이나 기준금리 추가 인상 기대 등이 엔화 가치의 반전을 이끌 것인지 주목해야 한다. 실제 청산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에 대한 걱정이나 공포 심리가 자산 가격에 어느 순간 반영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2년 전 시장에서 경험했듯이 실체가 분명치 않은 공포는 그 어떤 재료보다 휘발성이 강한 법이다. 일본 국채금리와 달러-엔 환율 추이, BOJ의 정책방향 등을 어느 때보다 세심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균형을 위협할 수 있는 엔 캐리 청산 리스크가 작은 신호에도 증폭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편집국장)
chhan@yna.co.kr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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