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10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뉴욕 나스닥 마켓사이트에서 열린 '오프닝 벨' 행사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곽노정 SK하이닉스 CEO, 고승범 SK하이닉스 사외이사 겸 이사회 의장이 타종을 하며 나스닥 ADR 거래 개시를 알리고 있다. 2026.7.11 [SK하이닉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뉴욕=연합인포맥스) 최진우 특파원 = SK하이닉스의 나스닥 상장은 단순한 해외 자금 조달이 아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자본시장이 기업을 평가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술 경쟁력만큼이나 '기업의 정체성'을 얼마나 선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가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신호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 주식예탁증서(ADR)를 주당 149달러에 발행해 265억달러(약 40조원)를 조달했다.
외국 기업의 IPO 공모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고, 투자자 주문은 공모 물량의 7배를 넘었다. 상장 첫날인 10일 ADR은 170달러에 거래를 시작해 내내 공모가를 크게 웃돌았다. 종가(168.01달러)는 공모가 대비 12.76% 높았다.
미국 투자자들이 매입한 것은 단순한 한국 메모리 기업의 주식이 아니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필두로 완벽한 AI 기업으로 거듭난 SK하이닉스였다.
사실, 투자자는 이미 한국 증시에서도 이례적인 현상을 경험했다.
지난달 보통주 기준으로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한때 삼성전자를 넘어 국내 1위에 올랐다. 며칠 뒤 순위가 다시 뒤바뀌기는 했지만, 이 장면의 상징성은 작지 않았다. 한국 증시에서 삼성전자가 시가총액 1위라는 공식은 오랫동안 거의 불변의 질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전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경쟁력이 사라졌다는 뜻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세계 최대 메모리 업체이며, 메모리뿐 아니라 파운드리와 시스템반도체까지 아우르는 사업 규모와 포트폴리오에서는 SK하이닉스보다 훨씬 넓다. 문제는 바로 그 넓이가 자본시장에서는 반드시 장점으로만 작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파운드리, 스마트폰, TV, 가전 등을 한 회사 안에 품고 있다. 산업적으로는 막강한 통합 경쟁력이다. 반도체 불황에는 세트 사업이 현금흐름을 보완하고, 부품과 완제품 간 기술 협업도 가능하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어느 사업의 성장성에 얼마의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해진다.
반도체의 높은 성장성은 스마트폰과 가전의 성숙한 사업구조에 희석되고, 가전 사업의 안정성은 반도체의 막대한 설비투자와 업황 변동성에 눌린다. 반면, SK하이닉스는 단순하다. 현재까지는 AI 연산에 필요한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는 기업으로 정의할 수 있다.
최근 자본시장은 종종 모든 것을 잘하는 복합기업보다 특정 영역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가진 '순수기업'에 높은 멀티플을 부여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에 속한 상위 기업은 보면 명확하다. 엔비디아, 애플, 알파벳, 브로드컴, 마이크론테크놀러지 등의 기업을 보면 지향하는 바는 단순하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도 데이터센터라는 AI 서사를 밀고 있다.
그래서 삼성전자에 대해 궁금증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법인과 전자 법인으로 나뉘어 각각 독립적으로 평가받는다면, 두 회사의 합산 기업가치는 지금보다 커질 수 있을까.
반도체와 가전이라는 성격이 다른 사업에 같은 할인율과 같은 멀티플을 적용하는 현재 구조보다 가치가 명확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뉴욕에서 근무하는 한 베테랑 금융인이 SK하이닉스 ADR 상장 날 삼성전자를 두고 "AI 시대에도 종합전자 기업이라는 구조가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최선의 형태인가"라고 질문을 던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에는 다양한 사업을 보유하고 큰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시장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자본시장은 가장 중요한 '기술 병목'을 장악하고, 자신의 역할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업에 더 높은 프리미엄을 주고 있다.
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0일 주요 외신과 뉴욕 특파원 간담회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방향성은 명료했다. 최 회장은 앞으로 '서비스로서 메모리'(Memory as a Service)라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는 각각의 특성에 맞도록 메모리 스택을 조정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면서 "또 이를 위해서는 특수한 소프트웨어도 함께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결국 우리는 단순히 '여기 메모리가 있으니 사용하라'가 아니라, 각기 다른 메모리 시스템 전체를 최적화하고 구성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의 구상에 월스트리트는 일단 공감한 듯하다. 이번 SK하이닉스의 ADR를 사기 위해 약 2천억달러(약 300조)의 글로벌 자금이 몰렸다고 한다. 상당수는 장기 투자자로 전해진다. AI 시대에 삼성전자의 서사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jwchoi@yna.co.kr
최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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