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초거대기업이 한국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이라는 거대한 변혁 속에 국내 채권, 외환, 증시의 변동성이 덩달아 커지는 형국이다. 거시경제의 뼈대인 금리, 환율, 주가가 단일 기업의 재무 활동에 크게 흔들리다 보니 기업뿐 아니라 정부와 개인 등 모든 경제주체가 대응하기 쉽지 않아지고 있다. 앞으로 AI 산업이 더 발전할수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초거대기업이 보유하는 현금이나 운용하는 자금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 상황을 직시하고 새로운 룰을 준비해 나가야 할 시기다.
채권시장에서는 '큰손' SK하이닉스의 행보에 이목이 쏠려 있다. 증권업계는 올해부터 SK하이닉스가 사들인 회사채를 20조원 규모로 추산한다.(['큰손' SK하이닉스] 무려 16조 크레디트물 매수…국고채는 언제, 노현우 기자, 7월 6일자 기사 참조) 이는 7월 국고채 경쟁입찰 물량인 16조원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SK하이닉스는 국고채 투자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채권시장 큰손' SK하이닉스 "국고채 투자 긍정적 검토" 최진우 특파원 7월 13일 자 기사 참조). SK하이닉스가 신용도가 높은 우량 회사채를 블랙홀처럼 흡수해 버린다면 시장 수급이 왜곡되고, 정작 자금이 필요한 중소·중견 기업의 조달이 어려워질 여지가 있다.
출처 : 구글 제미나이, 나노 바나나
외환시장도 SK하이닉스의 거대 환전 물량을 앞두고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10일 SK하이닉스는 나스닥시장에 미국주식예탁증서(ADR) 265억달러어치를 상장했다. 원화로 약 40조원에 달하는 금액은 하반기 국내 투자 집행 등을 위해 환전될 것이 유력하다.(SK하이닉스 ADR 상장…달러-원 1,500원 선 아래로 이끌까, 김지연 기자, 7월 10일자 기사 참조) 이 정도 규모는 지난해 연간 외국인 국내 증권 매입의 절반 수준에 달한다. 외환시장에서는 단순 분석으로도 해당 금액의 절반만 환전되어도 단기적으로 환율이 수십원가량 하락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출처 : 하나증권
문제는 앞으로 SK하이닉스뿐 아니라 삼성전자까지 메모리 반도체로 벌어들일 잉여 현금 흐름(FCF)이 '쓰나미' 급으로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잉여 현금 흐름은 기업이 사업을 운영하고 투자에 대한 자금을 집행하고 남은 유보금이다. 하나증권이 추정한 삼성전자의 올해 잉여 현금 흐름은 309조원이다. 내년은 455조원이다. SK하이닉스의 올해와 내년 잉여 현금 흐름 추정치는 199조원과 314조원이다. 잉여 현금 흐름의 절반 정도나 상당 부분이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금 등 주주 환원에 쓰이더라도 나머지는 자본시장에 흘러들어올 수밖에 없다.
출처 : 하나증권
20년 전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꼬리로 몸통을 흔드는 '연못 속의 고래'는 국민연금 하나뿐이었다. 이제 그 연못에 국가 예산과 맞먹는 막대한 자금을 굴리는 '초거대 민간기업 고래'들이 더 뛰어들고 있다. 내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잉여현금 추정치를 합치면 750조원에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올해 국가 예산 약 728조원을 넘는다. 초거대기업의 자금 집행에 따라 금리와 환율 변동성이 일시에 급격히 커지는 것이 반복되는 것은 금융시장뿐 아니라 거시경제 주요 변수의 안정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청와대와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가 민간 기업의 정상적인 재무 활동을 간섭하면서 틀어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장님처럼 앉아서 시장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초거대기업의 자금이 전부 자본시장으로 흘러 들어오지는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인식해야 할 때다. 또 국내 채권, 외환시장이 이들 자금을 소화할 만큼의 체급이 되는지 점검하고, 기존의 규제를 대거 완화해 자본시장 육성에도 박차를 가할 때다. 기업이 금융기관과 다름없는 역할을 한다면 그에 걸맞은 수준의 시스템 체계를 적용하는 방편도 검토해봐야 한다. 무엇보다 왜 연못이 그동안 크지 못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선임 기자)
liberte@yna.co.kr
이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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