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최근 국내 주식시장이 하루 만에 9% 급락하는 등 전례 없는 변동성을 기록한 가운데, 해외 금융기관들은 이번 사태를 한국 경제나 기업의 기초체력(펀더멘털) 훼손이 아닌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과 레버리지 포지션의 기계적 청산이 맞물린 일시적 조정으로 평가했다.
다만 소수 반도체 종목에 과도하게 쏠린 시장 구조와 개인 투자자들의 높은 신용융자 비율이 시장의 완충력을 떨어뜨리고 하락 폭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해외 투자은행(IB)들은 최근 코스피의 가파른 조정을 한국 경제 전망의 변화라기보다 글로벌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과정에서 나타난 수급상의 변동으로 파악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의 지수 급락을 두고 반도체 업종의 실적 악화 등 기업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레버리지 상품의 강제 청산과 시장 심리 위축이 맞물리며 일시적으로 포지션이 대거 정리되는 '포지셔닝 플러시(Positioning flush)' 현상이 강하게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사이클 자체는 여전히 견고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이들은 진단했다.
JP모건 프라이빗뱅크 역시 전반적인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이 신흥국 및 선진국 시장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매력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단기 랠리 과정에서 상승 폭이 가팔랐던 만큼 조정의 골도 깊어졌을 뿐, 시장의 본질적인 매력은 유효하다는 의미다.
포트폴리오 관리 측면에서는 경고 목소리가 나왔다. 인도수에즈 WM은 이미 반도체 업종을 목표 비중 이상으로 보유한 투자자들에게 추가 매수는 과도한 변동성 위험을 수반할 수 있다며, 이번 급락이 시장의 과도한 쏠림을 경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았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의 높은 신용융자 기반 포지션과 레버리지 ETF가 하방 압력을 증폭시키는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CLSA는 개인 투자자들이 높은 신용융자를 바탕으로 주식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짚었으며, JP모건 프라이빗뱅크는 레버리지 ETF가 단기 변동성을 증폭시켜 상승과 하락 양방향에서 시장 과열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푸투증권은 개인들의 과도한 레버리지 활용으로 인해 시장의 하락을 방어할 구조적인 완충지대가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통상적인 시장 조정에 그쳤을 흐름이 반도체주 하락 직후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부 요구)과 강제 청산으로 이어지며 기계적인 폭락 장세로 확산했다는 설명이다.
해외 시각은 최근 주가 조정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업황의 우상향 기조는 훼손되지 않았다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견조한 수요와 메모리 평균판매가격(ASP) 상승, 신제품 양산 계획 등을 감안할 때 이익 둔화나 사이클의 정점 통과(피크아웃)를 논하기는 이르다는 판단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한국 메모리 업체들의 2분기 D램 ASP 상승률이 전분기 대비 40%대 초중반에 그쳐 글로벌 평균(53%)을 밑돌 것이란 우려에 대해, 이는 1분기 상승률이 이례적으로 높았던 기저효과와 HBM 가격의 안정적 흐름에 기인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3분기부터는 한국 업체들의 ASP 상승세가 글로벌 시장 흐름과 동조화되면서 강력한 실적 모멘텀이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HSBC 또한 HBM 가격 상승세와 SO-CAMM2 등 신제품 양산, AI 에이전트 확산에 따른 낸드(NAND) 수요 증가 등이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새로운 상승 촉매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장기공급계약(LTA)의 확대는 실적 가시성을 높여 밸류에이션 재평가와 주주환원 강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속도 조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모건스탠리는 메모리 반도체의 병목 현상이 지속되자 이를 대체할 저렴한 대체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향후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가격결정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아울러 최근 메타의 컴퓨팅 임대사업 진출 등 빅테크 기업 내부에서 자본지출 규모와 투자수익률(ROI)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시작된 점을 고려할 때, 조심스럽게 AI 투자 둔화의 초기 단계에 진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토일 제작] 일러스트
kslee2@yna.co.kr
이규선
ks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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