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뉴욕은 지금] '연준 서프라이즈'가 돌아온다

26.07.20.
읽는시간 0

(뉴욕=연합인포맥스) 진정호 특파원 = 언젠가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결정에는 '서프라이즈'가 사라졌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끝난 후 언론에서 '깜짝 인상', '깜짝 인하', '예상 밖 동결'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은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시장을 놀라게 하지 않고 투자자의 안녕을 도모하는 '친절한 연준'은 제롬 파월 전 연준 의장이 키를 잡은 뒤 확연해졌다. 연준 결정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것을 경계한 파월이 얼마나 상냥했는지는 수치에서 확인된다.

파월 부임 이후 전임 재닛 옐런 전 의장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FOMC 기자회견 횟수다.

옐런 재임기엔 1년에 8번 열리는 정례 FOMC 회의 중 분기별로 1번씩만 기자회견이 열렸다. 경제전망요약(SEP)이 발표되는 매 분기 말 회의에만 기자회견이 잡혔고 나머지 4번은 성명서만 발표됐다. 이를 연간 8번으로 늘린 것이 파월이다.

그럼에도 시장이 '오해'한다면 파월은 가외 시간까지 활용해서 방향을 잡아준다. 대표적인 예가 2024년 9월의 '빅컷'이다. 당시 연준은 2020년 3월 이후 4년 반 만의 금리인하를 앞두고 있었다. 경기가 탄탄했기 때문에 시장에선 25bp 금리인하를 지배적으로 예상하던 터였다.

그때 등장한 것이 연준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연준 출입 기자, 닉 티미라오스다. 그는 자신의 엑스 계정에 파월의 선임 자문역이었던 존 파우스트의 발언을 소개하며 50bp 인하 가능성을 흘렸다. FOMC를 앞두고 연준이 침묵 기간(blackout)까지 들어간 마당에 느닷없이 나온 빅컷 힌트였다. 이후 빅컷 베팅은 급증했고 연준은 '예상대로' 빅컷을 단행했다.

비공식 대변인을 통해 연준이 힌트(라고 쓰고 디렉팅이라고 읽는다)를 흘린 것은 당시가 처음이 아니다. 연준은 2022년 6월 금리 인상폭을 75bp로 갑자기 확대할 때도 FOMC 회의 불과 이틀 전 티미라오스를 통해 '연준이 75bp 인상을 고려할 것 같다'는 메시지를 흘렸다. 마찬가지로 이때도 시장 컨센서스가 뒤집혔다.

이는 '파월 연준'이 얼마나 시장을 놀라게 하기 싫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들이다. 갑작스러운 힌트로 시장이 급변해도 그것은 연준의 공식 결정에 앞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연준은 깜짝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 상냥한 파월의 비공개 시장 조작이다.

이제, 케빈 워시 연준 의장 체제에서 시장은 친절한 파월 아저씨를 그리워해야 할 것 같다. 의장 부임 전부터 연준의 소통 방식을 개혁하겠다고 벼르던 워시는 지난주 연방 의회 증언에서 이같은 기조를 거듭 확인했다.

워시는 하원 증언에서 "커뮤니케이션에서 다소 더 신중한 접근을 하는 것이 스트라이크와 볼을 구분하는 데 더 낫다"며 "우리가 2주 뒤 회의에서, 올해 남은 기간 무엇을 할지 전망을 제시하면 이후엔 기존 판단에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그와 맞지 않은 정보는 배척하는 상황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워시는 점도표도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회의에선 선제 안내(포워드 가이던스)조차 내지 않았다. 기자회견을 징검다리식으로 하던 옐런마저 포워드 가이던스로 정책 방향은 제시했다. 그런 점에서 워시는 더 강경한 정통파 연준 의장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연준 전체 역사를 보면 파월이 이례적으로 시장의 눈치를 봤으며 유약하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경우였다. 워시가 모델로 삼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발언을 거의 안 했기 때문에 시장은 온갖 간접 지표로 그린스펀의 의중을 읽어야 했다.

그중 하나가 이른바 '서류 가방 지표'였다. 그린스펀이 더 큰 가방을 들고 다니면 그가 기준금리를 조정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증거를 더 축적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 정도로 그린스펀은 입이 무거웠기 때문에 답답한 시장이 뭐라도 해야 했다는 뜻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시장에선 이미 불편한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점도표도 선제 안내도 없고 기자회견마저 줄어드는 '워시 연준' 체제에서 시장은 무엇을 지표로 삼아야 할지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F/m인베스트먼츠의 알렉산더 모리스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연준의 발언(Fedspeak)을 해독하는 사업으로 꽤 재미를 봐왔다"며 "이제 워시는 우리한테 입을 닫고 있겠다고 말을 했다"고 우려했다.

F/m인베스트먼츠는 워시 연준이 송출하는 언어·비언어 지표를 해독하기 위해 이른바 '워시GPT'를 출시했다. 워시가 지금껏 작성한 약 1천800개의 문서와 녹취록을 학습한 이 서비스는 향후 워시의 발언이 무엇을 내포하는지 해석하는 기능을 제공할 예정이다.

JP모건자산운용의 데이비드 켈리 수석 글로벌 전략가 또한 연준이 주요 지표 발표를 중단할 경우를 대비해 대안을 마련해뒀다며 "점도표 공개가 중단되면 금리 결정권을 가진 FOMC 위원들의 발언을 더욱 면밀히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캠퍼스의 게리 리처드슨 경제학 교수는 "연준이 제공하는 정보가 많든 적든 투자자들은 연준이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큰지 파악해야 한다"며 "정보가 제한적일 때 연준의 생각을 알아내기 위해 사람들은 모든 것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FOMC 기사들을 톺아보니 연준이 마지막으로 '깜짝 결정'을 내린 시점은 2016년 3월 정도로 보인다. 당시 옐런 연준은 금리인상이 유력하다는 예상을 깨고 금리동결을 결정했다.

파월은 물론 옐런보다 더 과묵한 워시가 주도하는 체제에선 예상과 다른 결정이 훨씬 더 빈번해질 가능성이 크다. '연준 서프라이즈'가 10년 만에 돌아오고 있다.(진정호 뉴욕특파원)

jhjin@yna.co.kr

진정호

진정호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와 KB Think 글자가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입니다. KB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