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가이드라인 "공개매수에 대한 의견표명,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이사회는 의견표명 없이 침묵…3대주주 얼라인 "주주가치 극대화 입증하라"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클라우드 및 IT 인프라 기업 가비아의 최대주주가 맥쿼리자산운용과 손잡고 자진 상장폐지를 추진하는 가운데, 매각 조건 이면에 숨겨진 거래 구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최대주주와 일반주주가 동일한 가격에 주식을 넘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경영권을 유지한 채 인수 주체로 다시 참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최대주주 개인에게 유리하게 짜인 거래인 만큼, 전체 주주를 위해 행동해야 할 이사회가 제 역할을 했는지도 함께 쟁점으로 떠올랐다.
◇프리미엄 41.6%…하지만 최대주주는 경영권·거부권 쥐고 잔류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맥쿼리자산운용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디씨케이인베스트먼트는 오는 9월 17일까지 가비아 보통주 최대 980만5천505주(73.1%)를 주당 4만8천원에 공개매수한다. 자발적 상장폐지를 거쳐 완전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한 수순이다.
공개매수신고서에 따르면 4만8천원은 공고 전영업일(7월 16일) 종가 3만3천900원보다 41.6% 높다. 직전 1개월 가중평균주가 대비 56.0%, 3개월 대비 53.9%에 달한다. 2023년 이후 상장폐지 목적 공개매수를 완료했거나 완료 예정인 19개사의 평균 프리미엄(23.4%)과 비교하면 18.2%포인트나 높은 수준으로, 표면적인 조건만 놓고 보면 후한 편이다.
가비아 김홍국 대표 등 최대주주 일가 역시 보유 지분 전량(327만248주·24.37%)을 동일한 4만8천원에 디씨케이인베스트먼트로 양도하는 주식매매계약을 맺었다.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모두에게 같은 프리미엄을 보장하는 공정한 거래로 읽힌다.
하지만 이면의 주주간계약을 살펴보면 상황은 다르다.
김 대표 측은 매각 대금 1천569억원 중 세금을 제외한 대부분을 디씨케이인베스트먼트 지분으로 재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상장폐지 후에도 김 대표 등 최대주주 개인은 가비아 이사진에 잔류해 경영권을 유지하고 사외이사 1인 지명권도 확보한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인수법인(디씨케이인베스트먼트) 단계다. 이 회사의 이사회(5인)는 맥쿼리 측 지주회사(티비엘케이홀딩스)와 김 대표 측이 지분율에 따라 나눠 선임하되, 주요 경영사항은 양측이 지명한 이사들의 만장일치 결의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인수 지주회사 단계에서 김 대표 측이 사실상 거부권(veto)을 쥐게 되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소액주주들은 주당 4만8천원을 받고 회사에서 축출되지만, 최대주주는 '간판'만 비상장사로 바꿔 단 채 이사진 잔류와 인수법인의 거부권을 통해 기존 지배력을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맥쿼리자산운용이 김 대표의 경영권을 방어해 주는 '백기사'를 맡은 셈이다.
이러한 구조는 곧 가격 산정의 이해상충으로 이어진다. 일반주주 입장에서는 매각가가 높을수록 유리하지만, 판 돈을 다시 새 법인에 넣어야 하는 최대주주는 가격을 높여 양도소득세 부담을 키울 이유가 없다. 공개매수를 성사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선에서 가격을 억제하려는 유인이 작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프리미엄이 후하고, 최대주주 매각가와 같다는 사실이 곧 이해상충이 없다는 뜻은 아닌 것이다.
한편 공개매수 응모 물량이 최소 매수예정수량인 326만7천629주(발행주식의 24.3%)에 미달하면 공개매수 자체가 무산되고 최대주주 측과의 주식매매계약도 자동 해제될 수 있어, 거래 성사 여부는 결국 소액주주의 응모율에 달려 있다.
◇소유와 경영은 별개인데…침묵한 이사회
문제는 이 거래가 계약 당사자인 최대주주에게는 유리하지만, 이사회는 최대주주의 사적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정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에게 회사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시적으로 부과하면서, 총주주의 이익 보호 의무 및 전체 주주에 대한 공평대우 의무를 부담하도록 규정한다. 소유(최대주주)와 경영(이사회)을 분리해 이사회가 최대주주가 아닌 전체 주주의 관점에서 거래를 검토하도록 한 것이 이 조항의 취지다.
법무부의 '기업 조직개편 시 이사의 행위규범 가이드라인' 역시 폐쇄기업화 거래의 주체가 지배주주인 경우와 순수 제3자인 경우를 구분한다.
지배주주가 비상장화를 주도하면 정보 불균형과 이해상충으로 거래조건이 불공정해질 우려가 크지만, 순수 제3자가 주도할 때는 그런 우려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이다.
가비아 건은 형식상 맥쿼리라는 제3자가 진행하는 공개매수이지만 최대주주가 매각대금을 재투자해 인수법인 단계에서 거부권까지 확보하는 구조인 만큼, 가이드라인이 경계하는 '지배주주 주도형' 폐쇄기업화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거래에서 일반주주의 이익 침해 우려를 판단할 요소로 ▲공개매수자가 지배주주인지 ▲잔여지분 전부를 대상으로 하는지 ▲공개매수 가격이 객관적 기업가치에 부합한다는 신뢰할 수 있는 평가가 이루어졌는지 등을 제시한다. 이사회가 의견표명서 제출, 지배주주로부터 독립된 특별위원회 구성, 외부전문가를 통한 가격 검증에 나설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가비아 이사회는 의견표명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최대주주 개인의 이익과 전체 주주의 이익이 갈리는 지점에서, 이 둘을 가려내야 할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셈이다.
이 대목에서 가비아 지분 14.3%를 보유한 3대 주주 얼라인파트너스가 이를 지적하고 나섰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전일 공정한 절차 이행을 촉구하는 공개 주주서한을 조만간 가비아 이사회에 발송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얼라인은 이번 거래가 외형상 제3자 공개매수이지만 실질은 최대주주가 매각대금을 재투자해 맥쿼리PE와 경영권을 공동 유지하는 폐쇄기업화 거래라고 규정하며, 이사회가 대안 매수후보 물색과 가격 적정성의 독립적 검증, 특별위원회 구성, 이해상충 관리 절차를 실제로 이행했는지 전체 주주에게 공개적으로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얼라인은 그간 가비아가 KINX 등 자회사 가치와 중복상장 구조 탓에 내재가치 대비 저평가돼 왔다고 지적해 온 만큼, 시장가에 프리미엄이 얹혔다는 사실만으로 이번 매수가가 주주가 받을 수 있는 최대 가치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이사회가 더 유리한 대안의 존재 여부를 확인해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오는 31일까지 이사회가 공식 입장을 밝힐 것을 요청하고, 답변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상법·자본시장법상 후속 조치를 검토한다는 방침이어서 이사회의 대응 여부가 주목된다.
한편, 가비아 측은 의견표명서 미제출 및 이사회 검토 과정 등을 묻는 질의에 "현재로서는 명확한 답변을 주기 어렵다"며 "공식 입장이 정해지면 회신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가비아 제공]
kslee2@yna.co.kr
이규선
ks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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