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사들에 지침 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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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신민경 기자 = 종목 선정에 쓰이는 키워드 일부를 바꿔 기존 상장지수펀드(ETF)의 종목 구성을 사실상 재편하는 운용업계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한국거래소가 사전 협의 없이 키워드를 변경할 경우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한다고 못 박으면서다.
21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지난 16일 주요 자산운용사들을 대상으로 'ETF 키워드 변경 관련 지침'을 발송했다. 지수 산출기준 중 특정 키워드를 기반으로 구성종목을 선정하는 지수와 관련해, 키워드를 변경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한국거래소와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게 골자다.
거래소는 "키워드 방법론 특성상 계량적 기준보다 정성적 판단에 의존하는 한계가 있다"며 "(이런 점을 이용해) 지수를 지나치게 유동적으로 바꾸는 경향이 (운용업계에서) 자주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키워드 변경을 이용한 편법이 늘어난 데 대해 한국거래소가 강수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지수 구성종목을 선정하는 방식은 크게 산업·섹터 분류체계를 활용하는 방식과 키워드 스코어링(점수화) 방식으로 나뉜다. 특정 테마를 주제로 하는 ETF는 특히 지수 산출기준으로 키워드 스코어링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업종에 걸쳐 있거나 전통 산업분류에 없는 테마의 관련 종목들을 수월하게 추릴 수 있어서다.
키워드 방법론은 특정 단어들과 기업(종목)의 유사도를 점수화해 점수가 높은 종목들을 지수에 편입하는 방식이다. 정해진 산업분류를 따를 때보다 투자대상(구성종목)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단 장점이 있다.
새 기술이 등장하면 관련 키워드를 추가해 신생 테마를 상품화할 수 있는 것이다. 새 ETF를 출시하려면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의 상장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이 방식을 쓰면 상장은 유지한 채 투자 대상만 손볼 수 있어 운용사로서도 유인이 크다.
일례로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지난해 12월 'ACE Fn5G플러스'의 이름을 'ACE 코리아AI테크핵심산업'으로 변경하고 기초지수 산출 기준을 개편했다. 5년 전 상장 당시와 달리 대부분의 5G 장비주를 빼고 대형 기술주의 비중을 높였다. 한투운용은 지난해 9월 상장한 지 4년여가 지난 'ACE 원자력테마딥서치'도 'ACE 원자력TOP10'으로 바꿨는데, 원자력 관련주에 폭넓게 분산하던 상품을 소수 대표 종목 중심으로 바꾸고 이들 비중을 대폭 높였다.
운용사 한 관계자는 "지수 변경 권한은 지수산출기관에 있지만, 실제 이들은 지수를 사용하는 운용사의 요구를 반영해주는 편이다. 한국거래소뿐 아니라 에프앤가이드와 NH투자증권 등의 민간 지수사업자도 많아졌기 때문"이라며 "이런 이점 때문에 최근에는 '키워드 방법론'을 많이 쓴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유연함이 지수의 정체성을 흔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어떤 키워드를 넣고 빼는가에 따라 지수의 종목 구성과 투자 성격이 상장 당시와는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입맛에 맞게 상품 성격을 바꾸려고 키워드 방식을 남용하는 운용사들도 포착되고 있다"며 "패시브 ETF는 투자자가 종목 변경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임의대로 키워드를 바꾼다면 사실상 액티브 ETF와 다를 게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타사 상품을 사후적으로 베끼는 데 악용될 수 있단 지적도 나온다. 경쟁사 ETF가 인기를 끌면 유사 종목이 포함되도록 키워드를 손보는 방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지수 산출기준을 고쳐 기존 ETF의 투자 성격을 크게 바꾼 사례들이 잇따랐다.
삼성자산운용은 지난 5월 자사 'KODEX AI반도체'의 명칭을 'KODEX AI반도체TOP2플러스'로 바꾸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늘렸다. 지난달에는 SK스퀘어 등 일부 종목을 신규 편입 개편을 단행했다.
또 최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반도체TOP10'는 예정된 정기변경을 3개월가량 앞두고 특별변경을 실시해 SK스퀘어 등을 새로 편입했다. 키워드가 아닌 산업·섹터 분류체계를 손봐 종목을 편입할 수 있게끔 한 것이지만, 지수 산출기준을 바꿔 투자대상을 재편했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이다.
한국거래소는 리밸런싱 과정에서의 꼼수를 막기 위해 '상장폐지'라는 초강수를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으면 상폐까지 불사하겠단 경고다.
현행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 제116조제1항제2호나목에 따르면 ETF의 기초지수 산출기준이 변경된 경우 거래소는 해당 ETF를 상장 폐지할 수 있다.
다만 △산출기준 변경이 불가피한 경우 △산출기준 변경 후에도 기초자산이 거래되는 시장과 주된 투자 대상 자산이 동일하고 지수의 고유목표에 연속성이 유지될 경우라고 거래소가 인정하는 ETF들은 예외다.
거래소는 운용사들에 배포한 지침에서 "구성종목 선정에 사용되는 키워드가 변경되는 건 곧 지수 산출기준을 바꾸겠다는 것인데, 이는 현행 규정상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거래소는 "다만 현행 규정에서 거래소가 인정하는 경우에 한해서 상장폐지 예외를 적용할 수 있는 만큼, 키워드 변경을 희망하는 경우 반드시 사전에 거래소와 협의 후 공식적인 변경 요청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거래소는 키워드 사이의 위계와 중요도도 지수 설계 단계부터 명확히 정하라고 당부했다.
예를 들어 반도체 관련 지수에서 상위 개념인 '반도체'와 하위 개념인 'HBM'(고대역폭메모리)이라는 키워드가 같은 중요도를 지닌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향후 키워드를 바꾸더라도 지수의 정체성과 연속성이 유지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사전에 만들어 둬야 한다는 설명이다.
거래소는 "키워드별 중요도와 적용 순위를 미리 정하고, 중요도가 비슷한 키워드 사이의 변경에 한해서만 지수 변경 심사를 요청하길 바란다"고 권고했다.
mkshin@yna.co.kr
신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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