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제공]
(서울=연합인포맥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반도체·AI 거품 우려 속에 최근 급등락하고 있지만 어쩌면 진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단기 주가 흐름이 아닐지도 모른다. 주가와 관계없이 고공행진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불러올 정치적·지정학적 파장이 이들 기업에 더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반도체 가격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 속에 주문이 몰리며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해왔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작년 6월 5.1달러 수준이던 범용 D램(DDR5 16Gb) 가격은 40달러를 돌파했고, 낸드(128Gb) 가격은 3.1달러에서 28.8달러로 치솟았다.
[출처: 산업통상부]
메모리 가격 급등에 힘입어 올 상반기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2% 증가한 1천924억달러를 기록해 기존 연간 최대 실적(작년 1천734억달러)을 이미 넘어섰다.
AI발 수요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메모리 가격 오름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가격 상승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에는 희소식이지만 반도체가 탑재되는 각종 디바이스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애플은 지난달 맥북과 아이패드 가격을 각각 최대 300달러, 200달러 인상했고, 마이크로소프트도 게임기 엑스박스 시리즈S 가격을 100달러 올렸다. 일본 닌텐도도 메모리 가격 폭등에 '닌텐도 스위치' 구버전 가격을 인상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앞서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메모리 가격 상승을 두고 '100년에 한 번 있을 홍수'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우리에게 전가되는 엄청난 인상분을 최소화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려 최선을 다했지만 상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
칩플레이션(chipflation), 테크플레이션(techflation)은 미국 물가 지표 세부항목에도 드러나고 있다.
6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5% 상승해 5월(4.2%), 예상치(3.8%)를 밑돌며 오름세가 둔화됐지만 '소프트웨어·액세서리' 항목은 전년 대비로는 17.4% 급등했다. 작년 11월만 해도 해당 항목의 가격은 전년 대비 하락세를 기록했으나 12월부터 상승 전환 후 폭을 확대했다.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BLS)]
이미 소비자물가 급등이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영향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메모리 급등에 따른 추가 물가 상승을 트럼프 정부가 곱게 볼리 만무하다.
앞서 미국은 한국, 대만에 쏠려있는 반도체 생산이 장기적으로 자국 안보 측면에서 해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해왔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9일(현지시간) 마이크론 공장 건설 현장에서 "나는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미국으로 불러와 생산 시설을 짓게 하고 싶다"고 새삼 언급했다.
최근에는 미국 정부가 한국 반도체 기업의 초과이익을 미국과 공유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왔고, 산업통상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반도체를 둘러싼 이슈가 단순한 생산 쏠림뿐만 아니라 '가격 문제'로 확대되면 논란은 미국 정치권으로 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미국 일부 소비자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기업들의 '가격 부풀리기'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고 한 미국 기술 전문매체가 보도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미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최근 한 기자간담회에서 인공지능(AI) 쪽으로만 한정해도 올해보다 내년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며 "이는 꽤 큰 문제로 계속해서 비화할 수 있다. 지금은 기업이지만 앞으로는 정부도 다른 나라 정부로부터 압력을 받기 시작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지금 가격은 비정상이다. 떨어져야 한다"며 "지금도 천정부지로 올랐는데 계속 더 올려서 칩플레이션이 심화하면 무조건 얻어맞는다"고 우려했다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도 반도체 생산과 가격을 둔 미국의 다양한 압박 가능성을 이제 '시간의 문제'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대응·액션 플랜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제경제부장)
jhmoon@yna.co.kr
문정현
jh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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