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23일 오전 여의도 KBS 별관, 부동산 전문가들의 발제가 이어지던 중 이재명 대통령이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제가 이해가 좀 부족해서 그런데…"
고가주택 담보대출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사업자금 명목의 대출은 어떻게 관리되는지, 생활안정자금 대출과 무엇이 다른지. 대통령의 질문은 발표자료보다 더 구체적이었다.
답변이 모호해질 때마다 "그건 된다는 뜻입니까, 안 된다는 뜻입니까", "그 말이 좀 이상한데요"라며 다시 되물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등 관계부처 실무자들까지 마이크를 넘겨받아 설명에 나섰고, 이 대통령은 끝내 "일반 대출의 담보로 고가주택의 담보가치를 무제한 인정하는 것은 재고해봐야 할 것 같다"며 정책 검토 과제를 던졌다.
이날 열린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는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대통령이 질문하고, 국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토론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간 넘게 이어졌다.
'청약보다 힘들다'는 볼멘소리와 함께 가까스로 발언권을 얻은 전문가와 시장 참여자, 시민들이 의견을 내놓으면 대통령은 거의 예외 없이 질문을 던졌다.
정책 토론회라기보다 대통령이 직접 사회를 보는 세미나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토론은 첫머리부터 방향이 분명했다.
이 대통령은 "어느 날부터 주택이 주거수단인 동시에 돈을 버는 수단이 됐다"며 "부동산이 투자 수단이 된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 비중이 어느 정도냐가 문제"라고 운을 뗐다.
이어 일본의 버블 붕괴를 언급하며 "우리도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 분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집값을 떨어뜨리겠다는 선언도, 공급 확대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도 아니었다. 부동산을 다시 '사는 곳'으로 돌려놓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 토론의 출발점이었다.
이날 토론 내내 이 대통령이 가장 많이 반복한 단어는 '정상화'였다.
한 참석자가 "정부의 부동산 정책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자 이 대통령은 잠시 생각한 뒤 "억지로 가격을 통제할 생각은 없다"며 잘라 말했다.
이어 "가격을 정해놓고 여기에 맞추겠다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에 가까운 이야기"라며 "다만 비정상적인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잘못 형성되는 것을 막자는 거다. 시장을 정상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거듭 강조했다.
시장 가격은 존중하되, 투기 심리와 과도한 레버리지가 시장을 왜곡하는 것은 막겠다는 것이 이날 대통령이 가장 오래 설명한 철학이었다.
질문은 공급 문제에서도 이어졌다.
주택 인허가와 착공 물량이 2022년 이후 급감했다는 발제자의 발표 끝에 이 대통령은 곧바로 그래프를 가리켰다.
"왜 22년부터 이렇게 줄어든 겁니까. 정책 때문입니까, 금리 때문입니까" 물은 이 대통령에게 금리 인상과 공사비 상승과 같은 시장 여건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오자 "그렇다면 지금도 이 흐름이 계속될 가능성이 많다는 거네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긴 문답은 금융 분야에서 나왔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거시건전성 부담금' 아이디어를 설명하자 이 대통령은 곧바로 고가주택 담보대출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금은 고가 주택을 매입할 때 주택구입 대출이 거의 안 되지 않느냐"며 "그렇다면 주택을 취득한 뒤 회사 운영자금이나 사업자금 명목으로 50억원, 100억원이 필요할 때 개인이 가진 초고가 주택을 담보로 제공하면 다 받아주는 것이냐"며 따져 물으며 무제한 담보 인정을 제한하는 등 정책 당국이 실질적인 대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와의 문답에서는 분위기가 한층 뜨거워졌다.
채 대표는 민간 임대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며 민간 사업자들이 장기간 임대사업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민간 사업자가 분양하면 더 많이 남는데 왜 임대를 하겠느냐"며 현실부터 꺼냈다.
이에 채 대표는 "그래서 세제나 금융 인센티브를 통해 사업성이 확보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고, 이 대통령은 "검토해보겠다"며 변화를 시사했다.
이는 찬반을 가르는 논쟁이 아니라 현실성과 정책 효과를 함께 따지며 방법을 찾는 방향으로 이어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유튜브 '광수네복덕방' 이광수 대표가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감면을 생애 1회로 제한해야 한다'고 제안하자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공감하며 감면 횟수나 총액 제한 등의 가능성을 거론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또 한 온라인 참여자가 실시간 댓글로 '보유세 양도세 기준을 시행령 대신 법률에 직접 명시해 정권 변동에 따른 버티기를 막아달라'고 요청하자 이 대통령은 "정말 필요한 지적"이라며 제도 변경의 실효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똘똘한 한 채' 현상이 언급되자 "1가구 1주택을 보호하려던 정책이 오히려 가장 효율적인 투자 전략을 만들어 준 측면도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어 "투자 압력이 너무 강하면 작은 구멍 하나에서도 시장 전체가 흔들린다"고 재차 경고했다.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던 보유세와 관련해서는 "선진국 수준으로 정상화하려면 최소 3배는 올려야 한다"고 진단하면서도 현실적인 조세 저항을 고려해 실거주 여부와 주택 특성에 따라 차등을 두는 방식의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대통령은 "지금 세 배를 올리면 거의 폭동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발언에는 토론장 곳곳에서 웃음과 탄식이 동시에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풀어야 할 문제"라며 정치적 부담 때문에 보유세 정상화를 미뤄둘 수만은 없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이날 토론이 막바지로 치닫자, 이 대통령의 관심은 다시 공급으로 향했다.
노후 공업지역과 유휴부지를 활용한 주택 공급 방안이 나오자 "수도권은 헬기를 타고라도 직접 한번 보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공공임대에 대해서도 "8평, 12평짜리 어려운 사람만 사는 임대주택이 아니라 25평, 30평 규모의 중산층도 살 수 있는 고품질 장기 공공임대로 바뀌어야 한다"고도 내다보기도 했다.
이날 3시간 넘게 이어진 토론에서 이 대통령은 새로운 공급 숫자를 제시하지도, 세율을 발표하지도 않았다.
대신 발표가 끝날 때마다 "잠깐만요", "왜 그렇습니까"를 반복하며 정책의 빈틈을 찾았다.
토론 현장을 함께한 한 참석자는 "3시간이 언제 지났는지도 몰랐을 정도"라며 "그만큼 부동산이 국민들에게 가장 민감하고 예민한 주제임을 다시금 느꼈다"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열린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발언권을 요청하는 참석자들을 보고 있다. 2026.7.23 superdoo82@yna.co.kr
jsjeong@yna.co.kr
정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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