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최장 7박11일 순방…美 기술·자본, 남미 자원 연결
AI 모델·GPU·데이터센터에서 리튬·구리·희토류까지 공급망 확장
국내 3대 메가프로젝트 글로벌화…AI 소비국 넘어 '공급국가' 시험대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인공지능(AI) 모델과 반도체, 데이터센터에서 리튬과 구리, 희토류까지.
이재명 대통령이 24일부터 시작하는 7박 11일간의 순방은 이재명 정부의 첫 'AI 공급망 외교'로 압축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세계 AI 산업을 움직이는 기술과 자본을 만나고, 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에서는 첨단산업에 필요한 핵심 광물과 에너지 공급망을 넓힌다. AI를 단순한 기술산업이 아니라 반도체와 전력, 자원, 금융을 아우르는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정부 구상이 외교 무대로 확장되는 셈이다.
◇ AI 빅샷 한자리에…'샌프란시스코 AI 선언' 이어 NPS도 등판
이번 순방은 시차와 장거리 비행을 포함해 취임 이후 가장 긴 일정이다.
이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브라질과 칠레,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내달 3일 귀국한다.
장기간의 순방을 감수하면서 지구 반대편의 남미 3개국까지 찾는 것은 정부가 AI 경쟁을 기술 개발만의 문제가 아닌 공급망 경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첫 일정부터 상징적이다.
이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 도착 당일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혹 탄 브로드컴 사장 겸 CEO를 차례로 만난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은 생성형 AI 모델을, 엔비디아는 AI 데이터센터의 핵심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주도한다. 브로드컴은 빅테크 수요에 맞춘 맞춤형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분야의 핵심 기업이다.
현재 AI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모델과 연산장치, 맞춤형 반도체, 네트워크를 대표하는 기업 수장들을 하루에 모두 만나는 일정이다.
이어 열리는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도 참석한다. 국내외 AI 기업과 연구자, 스타트업, 투자자 등 150여명이 모이고, 한국 기업과 글로벌 빅테크 간 양해각서(MOU)를 비롯한 협약도 체결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국을 글로벌 AI 생태계의 '대체 불가능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을 발표한다.
앞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번 행사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의 비전을 글로벌 차원으로 확장하고 구체화하는 출발점"으로 규정했다.
국내 기업들의 대규모 AI·첨단산업 투자를 해외 기술 및 자본과 연결해 실행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지난달 공개한 3대 메가프로젝트는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묶는 전략이었다.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고, 이를 활용하는 초거대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 뒤 제조업과 로봇, 자율주행에 AI를 적용하는 피지컬 AI 산업까지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산업 투자를 지역으로 분산해 지방을 새로운 성장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도 담겼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샌프란시스코 일정은 이 같은 국내 프로젝트에 부족한 연결고리를 채우는 작업으로 해석된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와 제조업에서는 경쟁력이 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AI 모델과 GPU, 글로벌 클라우드·벤처 자본은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국내 투자만으로 AI 생태계를 완결하기 어려운 만큼 미국의 기술과 자본을 한국의 반도체·제조 기반에 결합해야 하는 수요가 커졌다.
이 대통령이 첫날 빅테크 CEO들을 만나 기술과 투자를 논의하고, 다음 날 앤드리슨 호로위츠와 세쿼이아캐피털 등 실리콘밸리 주요 벤처캐피털 6개사 대표를 만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술과 산업에 이어 자본까지 연결해 한국에서 글로벌 AI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도다.
◇ 리튬·희토류·구리 확보…식량·에너지 공급망도 구축
이처럼 AI가 국가 차원의 공급망 경쟁으로 바뀐 데에는 막대한 인프라 수요가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이 2030년 약 945테라와트시(TWh)로 늘어 2024년의 두 배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에는 전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17% 증가했고, AI 특화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50% 급증했다. AI 경쟁력이 알고리즘뿐 아니라 반도체와 전력망, 발전설비, 냉각시설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에 달렸다는 의미다.
샌프란시스코 이후 순방 무대가 남미로 이동하는 것도 같은 공급망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브라질은 희토류 매장량이 풍부하고,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세계적인 리튬 생산 거점이다. 칠레는 구리 공급에서도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는 셰일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리튬은 AI 반도체의 직접 원료는 아니지만 배터리와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에 필수적이다. 구리와 희토류 역시 데이터센터 전력망과 전기설비, 모터, 로봇 등 AI 기반 산업을 뒷받침한다.
AI 산업이 데이터센터와 전력, 피지컬 AI로 확장될수록 안정적인 광물·에너지 공급망의 중요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첨단기술 육성과 핵심 광물 확보를 하나의 산업안보 정책으로 묶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EU는 핵심원자재법을 통해 리튬과 희토류 등 전략 원자재의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고, 역외 자원 부국과의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EU는 리튬 수요가 2030년까지 현재의 12배, 희토류 수요는 6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청와대는 이번 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와의 정상회담에서 핵심 광물뿐 아니라 식량과 에너지, 교역·투자 협력까지 논의할 예정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는 남미공동시장인 메르코수르와의 무역협정 협상 재개를 추진하고, 칠레와는 자유무역협정(FTA) 현대화를 협의한다.
앞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남미 3국을 "기후변화와 지정학적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공급망 협력 대상국"으로 평가하며 핵심 광물, 식량, 에너지 수입원의 다변화를 순방 목표로 제시했다.
청와대 역시 이번 방문에 대해 AI·반도체 분야의 글로벌 협력을 구체화하는 동시에 자원 부국인 남미 3국과 경제안보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이번 순방의 동선은 이재명 정부가 그리고 있는 성장 전략의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AI 모델과 GPU, 맞춤형 반도체, 벤처 자본을 확보하고, 국내에서는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제조업을 연결하는 그림이다. 이어 남미에서는 리튬과 구리, 희토류, 에너지 공급망을 넓힌다.
AI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AI 산업의 핵심 제품과 인프라를 공급하는 국가로 전환하려면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도체와 전력, 자원, 자본을 하나의 전략 아래 묶어야 한다.
취임 후 최장인 7박 11일 순방은 바로 그 연결망을 해외에서 구축하는 첫 시험대다. 청와대 관계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해 남미 자원 부국으로 이어지는 일정은 정부가 AI를 산업정책의 한 분야가 아니라 국가 경제와 외교를 관통할 성장 전략으로 가져가겠다는 선언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jsjeong@yna.co.kr
정지서
jsjeong@yna.co.kr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뉴스를 추천해요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