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50년 전 시골 오지의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운동장에 내린 헬리콥터를 만져보며 경이로움을 느끼고 미래에 대한 꿈을 갖게 됐다."
지난 2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지에서 열린 AI 서밋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자서전에 나왔던 대통령의 꿈을 언급한 순간이었다.
이 회장은 그날 헬리콥터를 처음 본 소년이 미래를 꿈꿨듯, AI 시대를 살아갈 다음 세대가 더 큰 꿈을 누릴 수 있도록 삼성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혁신의 심장부인 실리콘밸리에서 과거 한 소년이 품었던 꿈과 아직 오지 않은 세대의 꿈을 연결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미드웨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7.25 xyz@yna.co.kr
이 회장이 이 대통령의 자서전을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두 사람이 대통령과 기업인으로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그는 대통령의 자서전을 읽었다고 밝히며 청소년과 청년에게 꿈을 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첫 만남의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의전성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서전 속 구체적인 장면을 다시 꺼내면서 그 말에는 이전과 다른 무게가 실렸다.
꿈은 꾸는 것보다 이를 현실로 만드는 일은 훨씬 어렵다. 가난한 산골 소년이 운동장에 내려앉은 헬리콥터를 보며 상상한 미래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훗날 자신이 대통령이 돼 세계 AI 산업의 수장들과 미래를 논의할 것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꿈은 현실의 벽 앞에서 희미해지기에 마련이다. 삶의 출발점에서 그려본 미래가 실제 삶의 궤적과 만나는 일은 그래서 드물고 극적이다.
헬리콥터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나라가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만들고, 이제는 인공지능 산업의 핵심 공급망을 책임지는 나라가 됐다.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국내 기업인들은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배우러 간 손님이 아니었다. 반도체와 메모리, 데이터센터, 자동차와 플랫폼이라는 각자의 경쟁력을 들고 세계 AI 생태계의 미래를 논의하는 당사자로 참석했다. 혁신의 메카인 샌프란시스코에서 국내 기업 총수들이 미래를 말하는 모습을 보며 새삼 확인하게 되는 한국의 위상이다.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 최태원 SK 회장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미드웨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6.7.25 xyz@yna.co.kr
요즘 고등학생인 아이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꿈이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기도 전에 어른들이 먼저 AI가 수많은 직업을 없앨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하고 싶은 일을 꺼내놓으면 "그건 10년 뒤면 사라질 직업"이라는 답부터 듣는다. 미래를 꿈꾸라고 하면서 정작 그 미래를 두려움과 상실의 언어로만 설명해온 셈이다.
아이들이 꿈을 잃은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꿈꿀 미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라고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AI가 어떤 직업을 없앨지를 설명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AI와 함께 어떤 새로운 일을 만들 수 있는지는 제대로 말해주지 못한다. 사라지는 일자리의 목록은 길게 제시하면서 아직 이름조차 없는 직업과 기회에 대해서는 머뭇거린다.
AI가 가져올 변화가 모두 낙관적일 수는 없다. 일자리가 줄고 격차가 커질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다음 세대에게 경고만 건넬 수는 없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미래뿐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넓히는 미래도 보여줘야 한다. "그 직업은 사라질 것"이라고 단정하기보다 "그 일을 AI와 함께 어떻게 새롭게 만들 수 있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오른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24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미드웨이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AI서밋에 입장하고 있다. 2026.7.25 xyz@yna.co.kr
기업은 기술을 만들고 정부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정답을 외우게 하기보다 AI를 활용해 질문하고 창조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충분한 기회와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사다리도 필요하다. 꿈은 개인이 꾸지만, 그 꿈이 현실로 이어지는 길은 사회가 만든다.
이재용 회장의 발언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은 그 말이 나온 장소가 샌프란시스코였기 때문이다. 세계의 기술과 자본, 인재가 모여들고 수많은 혁신이 탄생한 곳, 존재하지 않던 산업과 직업이 현실이 된 곳에서 그는 다음 세대의 꿈을 말했다. AI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불안이 가장 빠르게 확산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이 가장 먼저 만들어지는 곳에서 나온 선언이었다.
50년 전 한 소년은 시골 학교 운동장에 내려앉은 헬리콥터를 만지며 미래를 상상했다. 이제 그 소년은 대통령이 됐고, 한국 기업들은 혁신의 중심에서 세계 AI 산업의 리더들과 미래를 논의하고 있다.
이제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이들이 답해야 한다. AI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인지 말이다. 꿈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그 직업은 곧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 대신 "아직 이름조차 없는 일을 네가 만들 수 있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AI 경쟁에서 얼마나 앞서느냐만큼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을 통해 얼마나 많은 아이가 지금과 다른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느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나온 '더 큰 꿈'이라는 약속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 답은 기술의 성과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품게 될 가능성에 있어야할 것이다. (산업부 윤영숙 부장)
ysyoon@yna.co.kr
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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