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루=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브라질 국빈방문에 동행한 경제사절단의 면면은 한국 기업들이 중남미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이번 순방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LG전자, 포스코그룹 등 현지 생산 기반을 구축한 전통 제조기업뿐 아니라 한화오션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한항공, 네이버, SK바이오팜, 아모레퍼시픽, 에이피알, 구다이글로벌, 실리콘투 등 방산·항공·인공지능(AI)·바이오·뷰티 기업들이 대거 참여했다.
과거 중남미 진출이 자동차와 가전, 철강 등 완성품을 생산·판매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는 핵심광물 공급망과 공동생산, 디지털 전환, 소비재까지 산업 협력의 범위가 전방위로 확대된 셈이다.
동시에 이번 경제사절단은 중남미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마주한 현실을 보여준다.
브라질 내수시장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국 기업들의 현지 투자와 가격 공세는 거세지고 있고, 높은 관세와 복잡한 규제는 단순 수출만으로 시장을 공략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어서다. 결국 한국 기업들에 성장 기회가 큰 시장인 동시에 현지화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전략 거점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 커지는 시장, 더 빨라진 中…'갈 길 먼' 현대차·'선점은 옛말' 가전시장
이 같은 변화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기업은 현대차그룹이다.
브라질 자동차 시장은 올해 판매량이 약 300만대에 달해 2014년 이후 최대 규모가 예상된다. 하지만 BYD를 비롯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공격적인 가격 전략과 현지 생산 확대를 앞세워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상파울루에서 열린 한·브라질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브라질 시장에 대해 "갈 길이 멀다"며 중국 업체들의 공세를 직접 언급한 것도 이런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이미 현지 생산체계를 구축했지만 앞으로 경쟁은 내연기관보다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등 친환경차 전환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브라질과 메르코수르는 현대차에 성장시장인 동시에 중국과 정면 승부를 벌여야 하는 전략 거점이 된 셈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에는 브라질이 오랫동안 생산기지와 판매망을 운영해 온 핵심 글로벌 시장이다. 하지만 가전과 TV, 스마트폰 분야에서도 중국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과 유통망 확대가 거세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글로벌 TV와 가전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추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브라질은 기존 브랜드 우위를 지켜야 하는 방어 시장이 됐다.
중남미 전자시장은 5세대 이동통신과 전자상거래 확대, 중산층 소비 증가에 힘입어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이번 정상외교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기존 생산기반을 AI 가전과 스마트홈, 에너지 효율 솔루션으로 고도화할 정책적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 '현지 공급망' 포스코·HD건설기계…KAI·한화오션·대한항공는 '공동진출'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과 문재영 HD건설기계 사장의 동행은 브라질이 원자재 조달처인 동시에 산업 인프라 시장이라는 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포스코그룹은 아르헨티나 리튬 사업에 이어 브라질의 철광석과 니켈, 희토류 등을 연결해 남미 자원 공급망을 넓힐 수 있다. 이번에 양국이 핵심광물의 탐사와 채굴, 정제, 가공, 재활용까지 전 주기에 걸친 협력을 추진하기로 한 만큼 단순 구매 계약보다 장기 투자와 공동사업의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배터리와 전기차, 반도체, 방산 등 한국의 전략산업이 특정 국가에 집중된 원료 정제·가공 공급망에 노출돼 있다는 취약성을 줄이는 작업이기도 하다.
HD건설기계는 광산과 농업, 도로·항만 등 인프라 수요를 겨냥하고 있다. 브라질의 건설기계 시장은 인프라 투자와 광산 개발을 바탕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 시장 역시 중국산 장비의 저가 공세와 현지 금융·정비망 경쟁이 치열하다. 현지 생산과 부품 공급, 애프터서비스 체계를 얼마나 갖추느냐가 단순 제품 가격보다 중요해진 이유다.
이번 경제사절단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방산·항공 기업의 참여다.
브라질은 엠브라에르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중소형 민항기와 군용 수송기 생산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공군이 도입하는 C-390 수송기의 첫 기체도 조립 막바지 단계에 들어갔다. 한국은 아시아 최초의 C-390 운용국이 될 예정이다.
KAI와 대한항공에는 C-390 부품 공급을 넘어 차세대 민항기와 미래항공모빌리티, 항공기 정비 분야로 협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한화오션 역시 브라질을 함정 판매시장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지 조선·방산 기반과 결합해 중남미나 제3국 사업에 공동 진출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브라질이 항공기에, 한국이 장갑차와 전차, 함정 등에 강점을 갖는 상호보완 구조를 활용하면 단일 무기 수출보다 공동개발·공동생산을 통한 진입이 현실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치적 관계와 현지 산업기반을 중시하는 중남미 방산시장의 특성상 정상외교가 기업 간 협상의 신뢰 기반을 제공할 수도 있다.
◇ '규제 압박' 네이버·SK바이오팜…K-뷰티는 새 시장 공략
최수연 네이버 대표와 이동훈 SK바이오팜 최고경영자(CEO)의 참여는 중남미 협력이 제조업을 넘어 AI와 바이오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브라질은 AI와 디지털정부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규제와 현지화 장벽도 높다. 바이오 역시 중남미 최대 시장이지만 허가와 유통망 확보가 성공의 핵심 변수로 꼽히는만큼 정부 차원의 지원의 절실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모레퍼시픽과 에이피알, 구다이글로벌, 실리콘투가 함께 이름을 올린 것도 이번 경제사절단의 특징이다.
브라질은 세계적인 화장품 소비시장임에도 한국 화장품 수출 비중은 아직 크지 않다. 다만 K팝과 한류를 기반으로 K뷰티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높아지는 만큼 인증과 유통망 문제를 해결하면 중남미 전역으로 시장을 넓힐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이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핵심광물과 차세대 민항기, K뷰티를 3대 협력 분야로 직접 제시한 것도 이러한 성장 가능성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중남미는 정치와 환율, 규제 등 불확실성이 큰 시장이지만 이제는 포기할 수 없는 전략 시장이 됐다"며 "미국과 유럽 중심의 공급망만으로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기업들도 현지 생산과 기술 협력, 공급망 구축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현지화 경쟁에 뛰어든 만큼 한국 기업도 생산과 조달, 기술, 유통을 얼마나 현지에 뿌리내릴 수 있느냐가 승부처가 될 것"이라며 "이를 뒷받침할 정부 간 협력과 제도적 지원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파울루=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한 호텔에서 열린 한-브라질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제라우두 아우키민 브라질 부통령,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비롯한 참석 기업인 등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6.7.29 xy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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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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