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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문성의 다른시각] 반도체 삼국지, 금리도 전략이다

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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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마저 설계하는 중국

"엔지니어들로 구성된 국가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이 사회나 인구를 통제하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국민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허물고 다시 빚어낼 수 있는 건축 자재처럼 다루게 되는 것이다."

'브레이크넥(Breakneck:China's Quest to Engineer the Future)'의 저자인 댄 왕(Dan Wang)은 공학도 출신이 정치를 장악한 중국을 '엔지니어 국가'로 부른다. 사람들의 영혼까지 설계하려 드는 강박적인 사회 공학적 접근을 멈춰야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가 지적한 대로 엔지니어 국가에 내포된 한계는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다만 금리 관점에서는 대규모 투자를 효율적으로 밀어붙이는 원천이 되고 있다. 많은 중국 전문가들은 2022년 이후 부동산 침체가 지속되자 과거처럼 대규모 부양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그 기대를 번번이 무산시켰고, 내수 부진은 장기화하고 있다. 그 결과 대출수요가 사라지고 저축 선호가 강해졌으며, 안전자산 쏠림은 국채금리 하락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풍부한 저축과 낮아진 금리를 활용하여 AI 밸류체인 투자 지원에 힘쓰고 있다. 의사와 금융인 등 고소득 직종의 보상은 제약하고 AI 산업 종사자에게는 후한 보상을 안기며 인재 배치까지 조율한다.

대규모 투자는 성장을 만들고, 성장은 금리를 끌어올린다. AI 인프라 투자가 활발한 시기에는 GDP의 구성요소인 C(가계소비), I(기업투자), G(정부지출) 중에서 I가 성장과 금리상승을 견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C를 억눌러 디플레이션 압력을 감수하면, 투자가 확대되는 국면에서도 저금리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식 금리 엔지니어링은 가계의 고통(부동산 침체)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다른 선진국들이 모방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림2)와 같이 AI투자가 활발한 국가들 중에서 중국만 금리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시장이 금리를 정하는 쪽의 부담

본래 자본주의의 강점은 정부의 간섭 없이도 자본이 스스로 효율적인 투자처를 찾아간다는 데 있다. BCA 리서치가 작성한 아래 그래프를 보면 AI 관련 설비투자는 가속되고 있으나, AI 이외 산업과 주택부문 투자는 부진한 모습이다. 더 큰 보상이 기대되는 곳으로 자금이 흐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금의 수요가 공급을 웃돌면 금리는 자연스레 상승한다.

최근 ASML, TSMC, 알파벳 등 주요 AI 밸류체인 기업들은 예상치를 웃도는 2분기 실적과 긍정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음에도 증시는 환호하지 않는 분위기다. 중국처럼 저금리 환경이었다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대규모 투자계획에 박수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하이퍼스케일러 중 영업 현금창출력이 가장 뛰어난 알파벳의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섰으니, 높아지는 금리환경에 어떻게 대처할지 걱정이 앞서는 듯한 모습이다.

◇과거 금융억압의 기억

AI혁명은 미-중 기술패권 전쟁과 맞물린다. 금리가 높은 쪽은 훨씬 더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달고 경주에 임하는 격이 된다. 일각에선 그 방책으로 '금융 억압(Financial Repression)'을 거론하는데, 통상 정부가 인위적으로 금리를 낮춰 부채상환 부담을 용이하게 관리하는 것을 뜻한다. 과거 전시에는 예금금리 상한과 자본통제로 저축을 포획하여 저금리를 조성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재정경제부의 시사경제용어사전은 금융억압을 좀 더 넓게 설명한다. '시장이 자유롭게 작동했다면 다른 곳으로 향했을 자금을 정부가 정책 수단을 동원해 정부의 목표 달성을 위해 끌어오는 경우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선 우리 경제사에서도 금융 억압은 낯설지 않다. 200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은행 대출은 기업의 몫이었고, 가계대출의 통로 자체가 없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고성장기에 소득 증가 속도가 소비를 꾸준히 앞지른 덕분에 가계저축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을 만큼 가계는 자금의 공급자였지 수요자가 아니었다.

◇한·일·독에서 한·미·중으로 재편되는 메모리반도체 삼국지

AI 3대 강국(G3) 도약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과거 독일과 일본 반도체 산업의 몰락은 정부의 전략과 자본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20여년 전까지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한국, 일본, 독일이 주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렸던 2008년 다운사이클 국면에서 독일의 키몬다는 파산했다. 일본의 NEC와 히타치의 DRAM 사업부가 통합해 출범한 엘피다는 공적자금으로 겨우 연명하다가 2012년 파산했고,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인수되었다.

두 회사의 몰락은 기업의 경영 실패를 넘어 국가 차원의 전략 실패 사례로도 거론된다. 양사 모두 기술력과 시장지위는 확보했으나, 다운사이클을 견딜만한 자본이 부족했다. 키몬다 파산 당시 독일은 대형은행 구제와 자동차 산업 지원으로 힘에 부치는 상황이었고, 반도체를 전략자산이 아닌 범용재로 여긴 탓에 정부 지원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우리 반도체 업계가 누리는 과실은 과거 일본, 독일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앞에 놓인 현실은 매우 다르다. 새로운 상대는 미국, 중국 기업이며, 국가 보조의 체급까지 감안하면 경쟁 강도는 한층 높아진 것이다.

최근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는 대출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았고, 정치권에선 가계부채 총량관리를 향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한정된 재원을 어디로 보낼 것인가의 문제다. 과거처럼 대놓고 관치금융과 신용할당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그러나 한정된 재원이 생산적 금융으로 흐를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설계하는 일은 여전히 가능하며, 관건은 이를 오래 끌고 갈 수 있는 역량에 있다. 이를 위한 정부의 의지와 국민적 공감대가 어우러질 수 있기를 바란다.

(배문성 라이프자산운용 이사)

장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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