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경제가 곧 안보라는 원칙이 시험대에 놓였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메모리 반도체를 두고 벌어진 갈등이 남의 일이 아닐 확률도 높아지고 있다. 세계 최대 시가총액 기업 애플이 미국 행정부 수뇌부에 애플 제품에 중국산 메모리를 쓰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의 유일한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최고경영자와 임원들도 미 정부 인사들을 만나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과 마이크론은 창과 방패처럼 대립 중이다. 애플은 중국산 메모리의 사용으로 메모리 반도체 인플레이션을 완화할 수 있으며 미국 외 지역에서 판매되는 제품에만 중국산 메모리를 사용하겠다고 주장했다. 반면 마이크론은 중국이 미국 철강과 제조 공장 쇠퇴를 초래했던 사실을 거론하면서 중국산 메모리가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파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정부가 육성하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미 국방부에 의해 중국 군사 기업으로 지정됐다.
인공지능(AI) 투자 붐으로 한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받던 스포트라이트가 중국으로 이동했다. 중국의 반도체 제조기업 창신메모리가 27일 상하이증시의 나스닥인 과창판에 상장하면서 시가총액 3조3천억 위안(약 715조 원)을 돌파했다. 중국 본토 증시 시총 1위다. 이는 시장이 창신메모리의 성장성에 후한 점수를 준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일본계 투자은행인 노무라는 창신메모리의 기술이 주요 D램 업체보다 5년 뒤처져 있지만, 현재 약 10%인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이 2028년 말까지 약 18%로 상승할 수 있다는 낙관적 견해를 내놨다. 곧 양쯔메모리도 상장한다.
구글 제미나이 생성 그림
1년 동안 4배가 뛴 메모리 가격이 미국의 물가 압력을 높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인공지능 시대 기술 패권 우위를 유지하려는 미국에 메모리 반도체의 높은 해외 의존도도 뼈아픈 대목이다. 비단 반도체뿐 아니라 AI 모델 관련해서도 중국 스타트업의 추격이 매서운 데다 미국산 AI 기술의 흡수와 관련한 논란도 있는 상태다. '경제 안보가 곧 국가 안보'라는 원칙을 글로벌로 확산시킨 트럼프 행정부가 시험대 위에 섰다. 오는 9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관련 뉴스가 계속 흘러나올 여지가 크다. 상황은 안 좋다. 이란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데다 11월 중간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이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성장은 느리지만 붕괴는 빠르다고 말했다. 우리는 현 상황이 미국과 중국, 애플과 마이크론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중국 메모리 기업의 성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문제와 직결되고, 반도체 중심으로 성장하는 대한민국 경제와 자본시장에도 큰 변수다. 과거 메모리 치킨 게임에서 한국 기업이 일본 도시바, 히타치 등에 완승한 선례가 있지만, 한국 기업은 오랜 기간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또 지금 중국 기업에는 국가 차원의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 과거의 승리 공식이 그대로 재현될 것이라는 안일한 기대는 버려야 한다. 우리 나름대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미정부가 어떻게 결정할지, 글로벌 AI 생태계는 어떻게 재편될지 등 모든 것이 안갯속이다. (선임 기자)
liberte@yna.co.kr
이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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