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칠레 공식 방문에 동행한 경제사절단의 면면에는 한국 정부가 구상하는 대(對)칠레 경제협력 전략이 압축돼 있다.
구리·리튬 등 핵심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이를 배터리와 에너지·전력망, 친환경차 등 첨단산업으로 연결한 뒤 인공지능(AI)과 바이오, K뷰티를 비롯한 소비재까지 시장을 넓히는 구상이다.
30일(현지시간) 이 대통령은 산티아고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한·칠레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을 주재했다.
한국 측에서는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을 비롯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구자은 LS그룹 회장,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 정인섭 한화오션 사장,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 최수연 네이버 대표,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 류재철 LG전자 사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는 철강과 비철금속, 전선, 태양광, 자동차부터 조선·방산, 가전, 플랫폼과 바이오까지 망라한 기업 구성이다. 개별 기업의 수출 상담보다는 칠레의 자원과 한국의 제조·기술력을 결합해 산업 생태계 전체를 연결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우선 이번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의 주된 축은 핵심광물 공급망이다.
칠레는 세계적인 구리·리튬 생산국이자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89%와 자유무역 네트워크로 연결된 통상 허브다. 이 대통령도 칠레 방문에 앞서 "첨단산업을 선도하는 우리의 든든한 협력 파트너"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앞서 양국 정상 간 정상회담에서는 광물자원 파트너십 양해각서(MOU)를 기반으로 협력 범위를 광물 공급망 전반으로 확대하고 정보 교환과 기술협력, 인적 교류를 강화하기로 했다. 단순히 칠레산 광물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탐사와 개발, 정·제련, 소재, 재활용까지 협력 영역을 넓히겠다는 의미다.
고려아연과 포스코, LS가 사절단 전면에 배치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고려아연은 아연·연 중심의 제련회사에서 구리와 니켈, 배터리 소재, 자원순환을 아우르는 핵심광물 기업으로 사업구조를 확장하고 있다. 최윤범 회장의 이번 참석은 칠레 광물의 장기 공급은 물론 현지 제련·가공과 재활용 기술 협력 가능성을 살피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포스코그룹도 철강을 넘어 리튬과 양·음극재, 희토류를 전략자원으로 설정하고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을 추진 중이다. 브라질에서 희토류 공급망 협력을 모색한 장 회장이 칠레 일정까지 연이어 소화한 것은 남미를 핵심광물 공급망의 양대 거점으로 삼으려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LS는 칠레산 구리를 전력망 산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기업이다. 구리는 전선의 핵심 원료인 동시에 AI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재생에너지, 초고압 송전망 확대에 필수적인 광물이다. 칠레의 광물이 국내 제련·소재 공정을 거쳐 LS의 해저케이블과 초고압 전선으로 이어진다면 양국 협력은 원료 교역을 넘어 글로벌 전력 인프라 시장까지 확대될 수 있다.
에너지와 제조·인프라의 결합 역시 또 다른 핵심 축이다.
칠레는 북부 아타카마 사막의 태양광과 긴 해안선을 활용한 풍력 등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을 갖고 있다.
OCI홀딩스는 칠레의 광물·에너지 자원과 말레이시아 태양광 생산기지를 연결하는 공급망 확장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우현 회장이 한·칠레 경제협력위원장 자격으로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것도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기 위한 복안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의 참석 역시 완성차 판매 확대만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칠레의 리튬과 구리, 재생에너지는 전기차·배터리와 수소 등 현대차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전략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수소 생산부터 활용까지 밸류체인 전반을 아우르는 'HTWO' 사업을 확대하고 있어 칠레의 청정에너지 잠재력과 결합할 여지가 있다.
한화오션은 방산과 조선 협력의 상징이다. 양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방산·조선 협력을 심화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태평양과 남극을 접한 칠레는 함정과 해양안보, 선박 유지·보수·정비 분야에서 잠재 수요가 있는 만큼 한화오션에는 남미 시장을 넓힐 교두보가 될 수 있다.
네이버와 SK바이오팜, LG전자의 참석도 눈에 띈다. 정부가 칠레를 자원 공급처로만 보지 않고 디지털·바이오와 소비재를 아우르는 중남미 시장 진출 거점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의미다.
네이버는 브라질 정부와 AI 돌봄서비스 협업을 검토하는 등 중남미 AI 생태계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브라질에서 확보한 협력 경험을 칠레의 디지털정부와 공공서비스 분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SK바이오팜 역시 브라질 제약사 유로파마와 뇌전증 신약 및 AI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협력을 추진한 만큼 칠레를 포함한 중남미 의약품 시장으로 외연을 넓힐 가능성이 있다.
LG전자는 이미 현지 판매망과 법인을 갖춘 생활밀착형 기업이다. 칠레 시장에서 가전과 AI TV 등을 판매하는 LG전자는 한국의 첨단기술이 현지 소비자의 일상으로 침투하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
여기에 K팝과 K드라마가 형성한 문화적 친밀감은 K푸드와 K뷰티 등 소비재 확산의 기반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칠레에서 K푸드와 K뷰티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며 정부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자유무역위원회가 10년 만에 재가동되고 FTA 현대화 논의가 다시 시작된 것도 이 같은 변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인프라"라며 "광산에서 시작한 협력이 전력망과 공장, 디지털 플랫폼을 거쳐 칠레 소비자의 화장대까지 도달할 수 있느냐가 이번 정상 경제외교의 실질적인 성과를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티아고<칠레>=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 한 호텔에서 열린 한-칠레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7.31 xy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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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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