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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세연의 프리즘] 점을 지우는 중앙은행

2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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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2019년 봄, 뉴욕에서 연방준비제도(Fed)의 점도표(dot plot)를 바라보며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를 떠올린 적이 있다. 수많은 점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완성하는 점묘화처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이 찍은 작은 점들은 시장에 미래 금리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제롬 파월 의장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몇 개의 점에만 집중하면 더 큰 그림을 놓칠 수 있다."

당시 특파원으로 썼던 칼럼은 이런 질문으로 끝을 맺었다. '연준은 언젠가 점도표와 이별할 수 있을까.'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7년이 흐른 지금, 그 질문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니다. 케빈 워시 의장이 이끄는 연준은 점을 하나씩 지우기 시작했다.

사실 연준이 항상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던 것은 아니다. 앨런 그린스펀 시절만 해도 중앙은행은 가능한 한 말을 아끼는 조직이었다. 그의 발언은 워낙 난해해 '페드스피크(Fedspeak)'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시장은 중앙은행의 의도를 추측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변곡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까지 내렸지만, 경기는 살아나지 않았다.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중앙은행은 새로운 정책 수단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바로 포워드 가이던스였다.

"당분간 금리를 유지하겠다."

"실업률이 일정 수준 아래로 내려갈 때까지 완화적 정책을 유지하겠다."

미래 정책 방향을 미리 설명하는 것 자체가 통화정책의 일부가 됐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기대를 안정시키려는 목적이었다.

2012년부터는 FOMC 위원 개개인의 기준금리 전망을 점으로 표시한 점도표도 공개됐다. 벤 버냉키 의장 시절 도입된 이 제도는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상징이 됐다. 점도표가 발표되는 날이면 채권과 주식, 외환시장이 일제히 출렁였다. 시장은 금리 결정보다 점 하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역설이 나타났다.

점도표는 어디까지나 위원들이 생각하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였지만, 시장은 이를 사실상의 정책 약속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경제지표가 바뀌어도 투자자들은 점도표부터 확인했고, 중앙은행 역시 자신들이 제시한 전망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운 부담을 안게 됐다.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만든 소통 도구가 오히려 정책의 유연성을 제약하기 시작한 것이다.

워시 의장이 포워드 가이던스를 사실상 폐기하고 자신의 점도표 제출도 거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최근 의회에서 "올해 말이나 다음 회의의 정책을 미리 말해버리면 이후에는 기존 판단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배척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판단을 확인하려는 편향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워시 체제의 첫번째, 두번째 FOMC 의사록은 이전보다 훨씬 짧아졌다. 향후 정책 방향을 암시하는 표현은 크게 줄었고, 위험관리에 대한 기술도 빠졌다. 시장에 더 많은 힌트를 주기보다 데이터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연준은 시장만, 시장은 연준만 서로 바라보는 포워드 가이던스라는 거울의 방을 부수고 이제는 경제를 지켜보자는 것이다. 당연지사였던 FOMC 이후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도 알 수 없다. 오죽하면 7월 FOMC 기자회견에서 워시 의장은 "연말까지 기자회견 약속한다(committed)"고 얘기했다.

미국이 '말을 줄이는 중앙은행'으로 방향을 틀 때, 한국은행은 다른 길을 택했다. 금통위원들의 향후 3개월 기준금리 전망을 담은 이른바 '한국형 점도표'를 본격 도입하며 소통을 강화했다. 아직 두 번밖에 시행하지 않았지만, 총재가 바뀌는 데도 점도표는 유지됐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8월 통방 이후에 발표될 점도표에 앞으로 있을 일들을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연준이 포워드 가이던스를 전면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한은도 참고할 수밖에 없지만, 현재로서 거시경제 정보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유익하다는 게 한은의 생각이다.

같은 중앙은행이지만 처한 환경은 다르다.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연준은 의장의 한마디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흔든다. 그래서 때로는 침묵이 정책이 된다. 반면 한국은행은 시장 참가자들에게 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기대를 안정시키는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 점도표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큰 흐름은 분명하다.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화두는 '예측 가능성'이었다. 시장이 놀라지 않도록 더 많이 설명하고, 더 많이 약속하는 것이 좋은 정책으로 여겨졌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AI발 반도체 호황, 관세 전쟁, 지정학적 갈등, 공급망 재편, 재정정책 등 통화정책을 흔드는 변수는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다. 미래를 미리 약속하는 것이 오히려 정책의 족쇄가 될 수 있는 시대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중앙은행 역시 미래를 예언하기보다 데이터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분기별 공개여서 이번달 없었던 점도표는 9월 FOMC, 8월 금통위 때 확인할 수 있다.

2019년에는 점도표가 사라질 수 있을지를 물었다. 당시만 해도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이제 연준은 스스로 점을 지우기 시작했다.

수많은 점을 찍어 풍경을 완성했던 쇠라의 점묘화처럼, 그동안 중앙은행은 점을 찍으며 미래를 그려왔다. 하지만 변동성의 시대, 중앙은행의 새로운 그림은 어쩌면 그 점들을 하나씩 지워가며 완성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제부장)

sykwak@yna.co.kr

곽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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