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국가의 역할을 둘러싼 경제철학은 정반대였지만, 인공지능(AI)과 산업 경쟁력, 정책의 '속도'를 놓고는 의외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간) 정상회담에서 핵심광물과 에너지 협력을 넘어 AI와 규제혁신, 신속한 정책 집행의 필요성까지 폭넓게 의견을 나눴다.
이를두고 청와대는 양국 정상이 경제안보와 기술 경쟁력이라는 새로운 시대 과제를 놓고 예상보다 깊은 공감대를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두 정상은 경제를 바라보는 철학부터 극명하게 다르다.
이 대통령은 그간 시장의 역동성을 인정하면서도 국가가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해왔다.
실제 AI와 반도체, 에너지, 제조업을 성장축으로 삼아 정부와 민간이 함께 미래 산업을 키우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반면 경제학자 출신인 밀레이 대통령은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그는 대선 유세 당시 전기톱을 들고 등장해 "불필요한 정부를 잘라내겠다"고 선언했고, 집권 이후 실제로 정부 부처를 대폭 통폐합하고 재정 긴축과 규제 철폐를 밀어붙이며 '전기톱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가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대통령과 국가를 가능한 한 줄이려는 대통령. 경제철학만 놓고 보면 접점을 찾기 어려운 조합인 셈이다.
하지만 회담에서는 오히려 AI가 두 정상을 이어주는 화두가 됐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현지 브리핑에서 "3개 남미 국가 정상 모두 AI를 많이 언급했지만, 밀레이 대통령은 특히 AI 협력 이야기가 나오자 상당히 열정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고 정상회담 후일담을 전했다.
위 실장은 "이 대통령은 AI 시대에는 우리와 유사한 입장을 가진 국가들이 협업하고 공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그 이야기를 꺼내니 밀레이 대통령도 길게 이야기했고, 한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새로운 협력 분야로 AI를 생각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질 만큼 좋은 논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 운영 방식에서도 예상 밖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위 실장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정부에서 일하다 보면 여러 절차 때문에 정책이 지연되는 일이 많다"며 "속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밀레이 대통령도 정부 개혁 경험을 소개하며 정책은 신속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데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위 실장은 "밀레이 대통령은 정부 개혁을 매우 중요한 정책 과제로 추진해 왔다고 설명하면서 평가도, 실행도 속도감 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이러한 정상 간 공감대가 실제 성과로도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양해각서(MOU)가 체결됐고, 수년간 협상이 답보 상태였던 이중과세방지협정도 최종 타결됐다. 아르헨티나산 원유 도입 협력과 한-메르코수르(MERCOSUR) 무역협정 협상 재개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위 실장은 "나라 사이에는 입장 차이 때문에 오래 교착되는 협상이 많은데 정상회담이라는 큰 계기가 생기면 서로 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자는 의지가 작용하면서 협상이 급진전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번 이중과세방지협정이 그런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브라질 정상회담에서도 공감대가 많았지만 아르헨티나에 와서도 밀레이 대통령과 상당히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것이 정상회담 성과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정치적 스펙트럼은 극과 극이지만 AI와 공급망 재편이라는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 앞에서는 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문제의식, 그리고 정책은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실용적 접근에서는 두 정상이 의외의 접점을 확인한 셈이다.
이념보다 국가 경쟁력이 우선되는 시대에 경제안보를 매개로 한 새로운 협력 가능성을 확인한 정상외교의 한 장면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통령궁에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2026.8.1 [공동취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xy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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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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