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부실기업 퇴출 높인 상폐 개혁안…의도치 않은 자진상폐 통로될 수도

26.08.01.
읽는시간 0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시행 한 달을 맞은 '상장폐지 개혁방안'이 다른 자본시장 제도들과 상충할 여지가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부실기업을 신속하게 퇴출하겠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일부 기업의 자발적 상장폐지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신규 상장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일 한화투자증권은 '상장폐지 개혁방안이 일으키는 불협화음' 보고서를 통해 현행 상장폐지 제도가 기업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 추진 중인 여타 법규들과 엇갈리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1일부터 유가증권시장 300억 원, 코스닥 200억 원 미달 시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하도록 시가총액 기준을 상향했다. 주가 1천 원 미만의 '동전주'와 반기 기준 완전자본잠식도 상폐 요건으로 신설했다.

보고서는 우선 국회에 발의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일명 'PBR 0.8배법')과의 정합성 문제를 짚었다. 해당 법안은 상장사의 시가총액이 순자산가치의 80%를 밑돌 경우 주가가 아닌 순자산가치의 80%를 하한선으로 삼아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시행될 경우 상속·증여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가 상승을 억제해 온 대주주의 상장 유지 유인이 약해질 수 있다. 상장 여부와 무관하게 순자산가치를 기준으로 세금이 매겨진다면 굳이 상장 유지 비용을 감수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상장을 유지할 실익이 낮아진 기업들이 상향된 시총 기준과 신설된 동전주 요건을 방치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강제 퇴출당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며 "이는 공개매수를 통한 자진 상장폐지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절차가 간소해 해당 기업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이 원치 않는 상장폐지를 맞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자본시장에서는 우량 기업이 고의로 상장폐지를 유도해 소수 주주를 축출한 사례가 이미 논란이 된 바 있다.

과거 한 상장사는 부채비율 10% 미만에 현금성 자산 1천200억 원을 보유한 우량 중견기업이었음에도, 관계사 감사자료를 미제출해 3년 연속 한정의견을 받아 상장폐지 수순을 밟았다.

당시 대주주가 형사처벌을 피하면서 상장폐지를 유도해 소액주주를 헐값에 축출하는 이른바 '합법적 강탈' 모델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국회 토론회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8월 초 시행되는 '중복상장 가이드라인'과의 방향성 차이도 언급됐다. 상장폐지 개혁방안은 부실기업 퇴출과 혁신기업의 원활한 상장을 지원하는 '다산다사(多産多死)'를 추구한다. 하지만 모회사 이사회의 주주보호 의무 등을 강조하는 중복상장 규제 강화 흐름은 단기적으로 신규 상장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

실제로 올해 들어 지난 26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 신규 상장한 기업은 케이뱅크가 유일하며, 이는 200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코스닥 신규 상장까지 합쳐도 총 30건으로 6년 만에 최소치를 기록했다.

아울러 최근의 수급 불균형과 시장 변동성을 고려할 때 획일화된 상장폐지 기준 적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특정 업종으로 수급이 쏠리면서 기업의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소외된 중소형주들이 다수 상장폐지 요건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지난 30일 기준 시총 상장폐지 기준에 미달한 종목은 유가증권시장 47개, 코스닥시장 161개 등 총 208개로 집계됐다. 특히 7월 한 달간 코스닥 시장에서 관리종목 지정 우려 안내 공시가 제출된 30개사 중 28개사가 시총 200억 원을 넘기지 못해 관리종목 지정 가능성이 커졌다.

엄 연구원은 "당분간 유예기간을 두거나 사안별 심사를 통해 현 시장 상황을 유연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상장 유지 요건을 강화하기보다는 애초 신규 상장 시 더 면밀하고 엄격한 평가를 거치는 '소산소사(少産少死)'의 접근법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여의도 증권가

[촬영 안 철 수] 2026.2

kslee2@yna.co.kr

이규선

이규선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와 KB Think 글자가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입니다. KB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