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진정호 특파원 =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일부러 흘린 듯한' 메모에서 시작된 미국과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처음으로 외화 공동 개입에 나섰다. 당시는 지나친 엔화 강세를 되감기 위해 미국 정부가 엔저를 유도하는 과정이었다. 엔화 강세를 위해 미국과 일본이 공동 개입한 것은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약 30년 만의 이벤트가 일어나면서 시장이 신경을 곤두세운 가운데 미국이 달러화 대신 유로화를 매도한 배경 또한 궁금증이 커지는 대목이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 뉴욕 연방준비은행을 통해 유로화를 매도하고 엔화를 매수함으로써 일본 당국과 공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달러화 대신 유로화를 매도한 것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외환 안정 메커니즘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 재무부는 외환 시장에 개입할 때 외환안정기금(ESF)을 통해 실행된다. 뉴욕 연은이 재무부 대행으로 실무 거래를 집행한다.
핵심은 ESF가 1934년에 설립된 금 준비법을 바탕으로 설립됐으며 달러화를 무제한으로 창출해 사용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ESF는 법적으로 정해진 자산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돼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과 비매각 미국 국채 및 달러화 예치금, 순수 보유 외화 자산으로 구성된다.
2024년 재무부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총 약 2천억달러의 ESF 자산 중 SDR이 약 85%(약 1천700억달러)를 차지한다. 비매각 미국 국채와 달러 예치금이 또 다른 8~9%를 이룬다.
순수 외화 자산은 전체의 약 8~10%(약 150~200억달러)에 그친다. 재무부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거나 외화 유동성을 공급할 때 사용하는 실질적인 주요 수단이 순수 외화 자산이다.
이 외화자산은 법령 및 운용 지침에 따라 단 두 가지 통화, 유로화와 엔화로만 구성된다. 이것이 재무부가 일차적으로 엔화 강세를 위해 유로화를 매도하고 엔화를 매수하게 된 이유다.
재무부가 엔화 비중을 즉각 확대하려면 포트폴리오 내 다른 축인 유로화 자산을 매도하고 엔화 자산을 매수하는 자산 리밸런싱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된다. 재무부로선 달러채를 발행하거나 통화량을 늘리지 않으면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신속한 수단인 것이다.
ESF 외화자산 내 유로화와 엔화의 비중은 역사적으로 2 대 1 수준을 유지해왔다. 1999년 유로화가 출범한 이래 미국 재무부는 유로화의 외화 자산 내 비중을 60~70%로 맞추고 있다. 2024년 9월 말 기준 ESF 내 외화자산의 가치는 157억달러로 유로화는 약 100억달러 수준이라 볼 수 있다.
베선트의 이번 메모를 보면 재무부가 유로화를 매도하고 엔화를 매수한 규모는 50억~100억달러 수준으로 파악된다. ESF의 기본 포트폴리오 기준으로 보면 매우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리밸런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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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부의 이번 조치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두 가지 정도로 보인다. 하나는 재무부가 이토록 파격적으로 나설 만큼 엔화 강세를 유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가 외환시장 불개입 관행을 깨야 했던 배경에는 ▲미국 국채금리 발작의 차단 ▲무질서한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방지 등이 있는 것으로 월가는 보고 있다.
일본은 엔화 가치가 40년래 최저 수준까지 밀리면서 외환 개입 재원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처지다. 에너지 가격 급등 속에 수입 대금에 더 많은 달러가 필요해진 점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일본은 미국 국채를 매도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 가뜩이나 이란 전쟁 장기화로 국채금리가 튀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일본발 금리 발작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엔화 가치를 떠받치면 엔 캐리 트레이드의 과격한 청산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엔화 가치 급락에 따른 반동으로 일본 정부가 금리를 올리고 투기적 엔화 매수가 뒤따른다면 자칫 엔화 가치가 무질서하게 뛰면서 엔 캐리 포지션이 연쇄 청산될 수 있다.
이는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충격파가 퍼지는 이벤트며 마찬가지로 미국이 바라지 않는 흐름이다. 베선트가 괜히 미국 금융 체계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엔화의 무질서한 하락과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 위험을 제어해야 한다고 강조한 게 아니다.
다른 하나는 재무부가 ESF 리밸런싱을 단행했지만 결국 전통적인 리밸런싱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ESF의 포트폴리오는 운용 지침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재무부는 시점은 불확실하지만 결국 엔화를 매도하고 유로화를 매수할 수밖에 없다. 재무부가 추가로 엔화 강세에 힘을 실으려면 달러 유통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데 안 그래도 높은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결국 재무부는 일본과 동조하며 시장에 메시지를 던졌지만 이는 단기에 그칠 것이며 평균으로 회귀할 것으로 보는 투기 세력은 엔화 약세 베팅을 더 늘릴 수 있다. 일본으로선 더 확실한 조치가 필요한 셈이다.(진정호 뉴욕특파원)
jhjin@yna.co.kr
진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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