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산가치 80% 하한선 실종…주가 더 누르면 그만
적용대상은 원안의 15% 수준, 원안 발의자 이소영 의원도 "개혁 후퇴" 반발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6.2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정부가 내놓은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두고 자본시장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대주주의 '주가 누르기'를 막겠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평가액의 절대적 하한선이 빠진 데다 실무적 한계와 예외 조항이 지나치게 많아 사실상 조세 회피를 방조하는 '누더기 법안'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재정경제부가 전일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은 장기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업종 내 하위권이거나 주가 하락 요인이 있는 상장사에 대해 평가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주식 평가 기간을 최대 6년 6개월로 늘리고 최소 30%를 할증해 재평가하는 내용을 담았다.
◇사라진 '순자산 80%' 하한선…여전히 잣대는 '주가'
시장의 가장 큰 불만은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발의했던 원안(PBR 0.8배법)의 핵심인 '순자산가치 80%' 절대 기준이 실종됐다는 점이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이소영 의원안의 핵심은 저평가된 상장사의 경우 주가 대신 순자산가치의 80%를 평가가액 하한으로 두자는 것이었는데, 정부안은 평가 기간만 늘렸다"며 "여전히 주가를 척도로 활용하기 때문에 주가를 억누르려는 대주주의 유인이 본질적으로 바뀌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새로운 눌러진 시가'가 척도로 군림할 것이란 우려다.
페널티 수위도 대폭 낮아졌다. 엄 연구원은 "PBR 0.8배법 하에서는 PBR 0.2인 기업의 가치가 4배까지 늘어날 수 있지만, 이번 정부안의 30% 할증을 적용하면 PBR 0.26 수준으로 오르는 데 그친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자본배치 왜곡 우려…'명목 PBR' 맹점 파고들 허점 수두룩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안이 기업의 자본배치를 오히려 왜곡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순자산을 장부상 수치로만 판단하는 제도의 허점을 악용할 유인이 커졌기 때문이다.
남양유업 감사를 지냈던 심혜섭 변호사는 "제대로 된 순자산가치 평가를 못 하면 기업들은 부동산을 잔뜩 취득하거나 중복상장을 늘리고, 자사주·상호주를 확대해 순자산을 감추려 할 것"이라며 "오히려 중복상장을 장려하고 자본배치를 왜곡하는 역효과가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 변호사는 행정 집행 방식의 비효율성도 지적했다. 상속은 드물게 발생하는 이벤트인 만큼, 납세자가 스스로 평가해 신고하고 국세청이 사후에 심사하는 구조(원안)가 행정력 소모가 덜하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안은 판단 기준을 거래소의 저PBR 공표제도 방식과 연동해 사실상 상시 모니터링에 가까운 구조를 취하면서도, 정작 최종 결정은 자산의 실질 가치를 심사할 권한과 경험이 부족한 국세청 평가심의위원회에 맡긴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또한 정부가 '실질 가치' 측정을 사실상 포기하고 회계상 장부가인 '명목 PBR'을 절대적인 잣대로 삼았다는 점도 비판받는다.
현재 재정경제부와 금융위원회·한국거래소가 제도에 적용하려는 PBR은 시가총액을 재무제표상 순자산가치로 나눈 수치다. 오래전 취득한 부동산의 시가 반영이나 중복상장 자회사·손자회사 지분가치 조정 등 실질을 반영하기 위한 보정 절차는 빠져있다.
◇불투명한 판정 기준에 회피 유인까지…이소영 의원 "바로잡을 것"
국세청 평가심의위원회가 사안마다 '주가 누르기' 여부와 납세자의 '조세 회피 목적 없음'을 심의해 결정하도록 한 대목도 논란거리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고 법을 만드는 것인데, 경영상의 판단을 심의위원회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에 가깝다"라며 "비상장 주식 평가는 10년 넘게 확립된 예측 가능한 룰이 있는데, 이번 상장사 개편안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고 시뮬레이션해봐야 아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예측이 불가능한 구조인 만큼 오히려 빠져나갈 길을 찾기는 쉬워진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컨설팅을 통해 아예 이 요건 자체를 적용받지 않도록 설계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설령 요건에 해당해 할증 평가를 받더라도 행동을 바꿀 유인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별도로 나온다. 그는 "페널티가 실제로 아파야 기업이 개선에 나서는 법인데, 경제적 손해를 피해갈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면 굳이 힘들게 개선하느니 손 놓고 있는 쪽을 택하게 된다"며 "결국 이번 제도는 주가를 더 눌러도 상관없다는 '주가 더 누르기 권장법'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시장 안팎의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법안의 최초 고안자 역시 개편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향후 입법 과정에도 험로가 예상된다.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인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편안 발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법안의 최초 고안자로서 당혹감을 감추기 어렵다"며 "정부안은 주가 누르기 방지법의 아이디어 자체를 무색하게 만드는 방향"이라고 직격했다.
이 의원은 "이번 정부안은 개혁 의지의 후퇴로 오해받을 우려가 커 보인다"며 "세법 개정안 심의가 11월 말까지 진행되는 만큼, 그전까지 문제점을 최대한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kslee2@yna.co.kr
이규선
ks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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