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의 저PBR과 가격결정
2025년 하반기부터 본격상승을 시작한 한국 주식시장 애초의 동인은 주주가치 보호와 그를 통한 멀티플 상승, 즉 밸류업 프로그램이었다. 국회는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담아 상법을 개정하였고, 금융당국은 기업의 유상증자 및 물적분할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치가 저평가되었다는 소위 저PBR 기업들은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고심하게 되었고, 일부 기업들은 주식공개매수 후 자진상폐를 도모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2025년 하반기부터 소위 가치주들의 랠리가 시작되었다.
2026년 들어서도 주가 상승은 계속되었지만, 최근 급격한 조정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2026년의 주가 상승은 멀티플의 증가보다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기업이익의 급격한 증가, 즉 EPS의 급등 때문이며, 주식시장의 꾸준한 성장을 위해서는 밸류업의 지속적 추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 주식시장의 멀티플은 2025년 말 이후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혹시, 기업실적 급등에 경도되어 밸류업 정책의 동력이 약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은 기우일까?
밸류업과 관련하여 상장된 한국의 공기업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은 대표적인 저PBR 종목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은 1989년 국민주 형태로 지분의 일부가 개인들에게 배분되어 상장되었다. 지금은 잘 믿어지지 않겠지만, 한국전력은 상장 이후 상당 기간 한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1위 종목이었다. 1995년 자료를 보면 한국전력이 시총 1위 종목이었고, 그 뒤를 따르는 2위 종목이 삼성전자였다. 두 회사의 주가와 시총이 가 그 후 어떻게 변하였는지는 우리가 주지하는 바와 같다. 한국전력의 주가가 지난 수십 년 동안 2만원에서 6만원대에서 움직였다. 즉, 지난 수십 년 동안 실질적으로 같은 가격대에 머물러 있었었다는 의미다. 현재 시총기준 22조, PBR은 대략 0.5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것도 작년대비 많이 개선된 수치이다. 어떤 회사의 PBR이 크게 낮은 이유는 대체로 그 회사의 미래의 수익성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한국전력은 코로나 이후의 급격한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원유가격 등 발전원료가격 상승분을 전력 가격 인상으로 전가하지 않고 자체 흡수함으로써 소비자물가 안정에 크게 기여하였지만, 회사 자체로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수년 동안 시현하였고, 그 결과 주가는 크게 하락하고 배당은 중지되었었다. 이후 원유 등 에너지 가격 하락하면서 수지가 개선되어 이익이 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주가도 약 2만원 전후를 바닥으로 반등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2025년 하반기 밸류업 정책이 시행되면서 일부 투자자 사이에는 한국전력 등 저PBR 공기업도 밸류업 정책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퍼지기도 하였다.
지난 6월 26일 정부는 하반기 물가안정 대책을 발표하였는데, 그 안에는 중앙공공요금(전기, 가스)의 하반기 동결방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얼핏 보면 매우 익숙한 모습이다. 공공요금 인상 요인을 공기업이 자체 흡수하여 요금을 동결하고, 이를 통해 높아지는 물가 상승압력에 대응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나라가 애용해오던 방법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서는 올바른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낮은 물가를 향유하기 위해 특정 집단의 이익이 침해당하면 그를 위한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엄연히 상장된 기업의 가격정책이 이렇게 결정되어도 되는 것일까? 이러한 정책이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효과가 있겠으나, 주식시장 밸류업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전력의 전력요금 결정은 민간기업의 가격결정 방법보다는 공공이익을 훨씬 크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한국전력도 상장기업이다. 정부가 대주주이기는 하나 만간지분도 상당하다. 이렇게 공개되어있는 상장기업의 이익이 물가안정이라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희생된다면, 이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 주주들은 무엇을 위해 이 주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해당 공기업이 수익성은 도외시하고 공익성만 추구한다면 상장을 유지하기보다는 다시 비공개기업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정부는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포함하는 상법 개정을 통해 기업의 이사회는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고려하여 행동하도록 하였고, 저PBR 기업들의 가치 제고를 독려하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을 민간에게 요구하고 있는 정부가, 정작 정부가 대주주인 상장공기업 운영에 있어 이화 상반되는 행태를 보인다면 과연 밸류업 정책이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주식시장 밸류업은 단순히 주가를 부양한다는 측면보다 주식시장을 신뢰할 수 있는 투자처로 만들어 부동산에 쏠려있는 국민들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기업들의 자금조달을 쉽게 하며, 해외로 유출되는 국민들의 투자금을 국내로 유도하는 등 다양하고 중요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각종 공기업의 대주주인 정부가 민간기업에 요구하는 밸류업을 공기업을 대상으로도 적극 추진한다면 정책과 시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요즘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극심해진 것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 중 하나이다. (유창범 WiseFriend 대표)
장순환
sh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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