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집 앞 지하철역 인근 5평 남짓한 상점엔 심심할 틈 없이 새로운 가게가 들어선다. 치킨집이 어느 날 탕후루 가게로 변신하더니 동네 학생들이 사탕물이 잔뜩 묻은 과일꼬치를 죄다 들고다녔다. 계절이 바뀔 때쯤 다시 그 가게는 마라탕 간판으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꽤 오래간다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두바이쫀득쿠키(두쫀쿠) 가게로 변신해 핫플레이스로 등극했다. 길게 줄이 늘어서던 그 가게가 아주 잠깐 소금빵 집으로 둔갑했다가 지난 주말 홍콩 밀크티 가게로 예쁘게 단장해 새로 오픈했다. "이건 꼭 먹어봐야 해" 유행에 우르르 몰려드는 불같은 국민성이 최고의 창업 아이템인 동시에 조만간 추락할 운명을 만든다.
지나온 가게들은 다 장사가 잘됐다. 하나같이 문전성시를 이뤘던 가게들이 1년도 채 안 돼 폐업을 결정하는 건 누구의 책임일까. 한철 유행템인 걸 알면서도 장밋빛 미래를 꿈꾼 투자한 사장님의 잘못인가. 손바닥 뒤집듯 너무 빨리 바뀌는 손님 마음 탓일까. '한 달에 수억 매출은 기본'이라며 자영업자들을 유혹한 뉴스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둘러싼 증시 혼란의 책임 공방에 나라가 시끄럽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금융당국 수장들을 상대로 한 시민단체의 고발이 잇따르고 있고 국회 게시판에는 시장 왜곡 개선에 관한 청원이 접수돼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개인투자자들은 정부가 시장 과열을 부추겼다고 아우성치고 야당은 최악의 정책 실패라 규정하며 국정조사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외신들도 정부가 시장 과열을 부추겼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개미들의 막대한 손실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정치적 위협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한국 증시의 붐이 극적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의 무리한 정책이 한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블룸버그 칼럼엔 '한국도 투자 부적격 국가가 되고 있다'는 제목이 달렸다. 금융위원회는 "근거가 불분명한 수치에 기반했다"며 정면으로 반박하는 공식 입장을 냈다. 세계가 한국 증시의 극심한 변동성을 두고 근원지를 저격하고 있고, 정부는 무차별적으로 날아드는 화살에 위협받고 있다.
일단 정부는 증시 변동성이 큰 원인을 개인 투자자들의 '역동성'으로 돌리고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레버리지 ETF 하나로 책임을 몰아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비중과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국내 시장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공지능 투자가 실제 수익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시장의 불확실성, 중국 반도체 업체의 추격 우려 등과 맞물리면서 외부 충격이 증폭됐을 수 있다. 하지만 정책 책임자가 국민 탓을 했다는 것 자체가 논란을 더 키웠고, 민심은 더 악화했다. 김 실장은 남미 순방에서 돌아온 이후 일주일 가까이 이례적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은 돈을 벌고 싶어 주식에 투자했다. 정부의 증시 부양 의지를 신뢰하며 자본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다른 투자처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했다. 그 누구도 롤러코스터 타듯 심장을 부여잡으며 도박장이 돼 가는 자본시장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쫀쿠나 소금빵 앞에서 보여준 국민성이 돈 앞에서는 더 무섭게 타올랐고, 마이너스통장에 보험도 깨가면서 국장에 쏟아부은 결과 역대급 불장을 만들었다.
결론은 안타깝게도 '카지노'로 비유되는 역대급 대혼란 장세가 됐다. 정부도, 개인투자자도, 정치인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판 속에서 각자 생존을 고민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제 정부는 무엇을 잘못했나.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해야하나.
누가 지시를 해서 레버리지 ETF 상품을 출시했는지 책임을 당장 가를 순 없다. 다만, 출시 직후 특정 상품에 거래대금이 비정상적으로 쏠리는 과열 신호가 분명히 나타났지만 정부, 특히 금융당국은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시장 변동성을 체크하면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점검하겠다' '대비하겠다'가 전부였다. 금융위는 매년 새해 업무보고 때마다 금융시장 안정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40년 주식시장을 지켜보며 처음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금융위원장은 보이지 않는다. 코스피가 단 27거래일 만에 40% 가까이 폭락한 사태에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한 이억원 금융위원장의 첫 마디는 "책임이 무겁다"였다. 나름 강화된 보호장치를 가동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고, 추가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게 전부였다. 하루가 멀다고 매수ㆍ매도 사이드카가 반복적으로 발동되는 역대급 변동성 장세에서 투자자들의 손실은 커져만 가는데 투자자들을 진정시킬 메시지가 지속해 나오지 않는 점은 아쉽다.
지난 5월 금융위는 현 정부 출범 1년간의 정책을 정리하면서 자본시장 성과를 전면에 내세웠다. 코스피가 예상보다 빨리 5천선을 돌파하고 단기간 내 8천 대를 지나 9천피를 찍자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 위원장은 "시가총액 규모가 7천조원을 넘어 세계 7위권이 됐다"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극복을 넘어 다른 나라가 따라오고 싶어 하는 글로벌 베스트 자본시장을 만들겠다"고 자신했다. 대통령의 자본시장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금융정책에 성실히 반영했다. 아마도 레버리지 ETF 상품 역시 현 정부 정책에 가속 페달을 밟아주려는 작품이었을 것이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증시 변동성 확대가 레버리지 ETF 때문이냐 아니냐를 놓고 맞서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금융위가 그 어느 정부 부처보다 앞장서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한다.
이 위원장은 부처 장관들 가운데 엑스(X·구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정책 홍보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본인이 직접 관리하며 하루가 멀다하고 금융위 정책을 적극 홍보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 위원장이 올린 게시글을 리트윗할 정도로 성실한 소통을 인정받는다. 금융위 업무 중에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겠지만 온 나라가 단일종목 레버리지 사태로 부글거리고 있는데 이 위원장이 정책 책임자답게 앞장서서 시장을 진정시킬 수 있는 메시지를 적극 내놔야 한다. 민심 이반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정부는 알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정부가 시장구조 디스카운트를 방치했다는 불신은 떨쳐야 한다. 자본시장이 잘될 때만 앞장서 정책 성과를 홍보할 게 아니라 시장이 어지러울 때,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흔들릴 때야말로 금융위원장의 입이 필요하다. (금융부장)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2026.7.29 nowwego@yna.co.kr
hjlee@yna.co.kr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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