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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국민연금] "원칙 훼손, 어떻게 책임지나"…5년뒤 요직 오른 그들

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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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레벨업" 외치며 비중확대 주도한 정부, 올해도 "리레이팅" 되풀이

이찬진 "2~3년 뒤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시장 평가는 냉담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2021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벌어진 '전략적 자산배분(SAA) 원칙 훼손' 논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올해 기금위의 무리한 국내 주식 비중 확대가 기금의 수익성을 훼손하고 증시 변동성을 키웠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다.

당시 확대를 밀어붙였던 인물들과 이를 강하게 비판했던 인물은 현재 나란히 정책·금융당국의 요직에 앉아 이번 사태를 마주하게 됐다.

4년의 비공개 기간이 지나 공개된 기금위 회의록에 따르면, 2021년 3월 열린 제3차 기금위에는 국내주식 SAA 허용범위를 기존 ±2.0%포인트(p)에서 ±3.5%p로 넓히는 1안과 ±3.0%p로 넓히는 2안이 상정됐다.

정부 측 위원들은 1안을 밀어붙였다. 기금위에 대체로 불참하던 김용범 당시 기재부 1차관은 이 안건이 상정되자 회의에 참석해 "우리 자본시장이 레벨업 과정에 있다"며 "구조적 변화가 진행 중일 때 비참여 리스크가 훨씬 크다"고 가장 폭이 큰 1안을 주장했다.

정면으로 맞선 인물이 이찬진 당시 참여연대 위원이다.

이 위원은 기존 전술적 자산배분(TAA) 재량범위를 활용한 한시적 대안까지 제시하며 "전략적 자산배분은 건드리지 말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합리적 근거가 부족한 지침 개정을 2~3년 뒤 어떻게 평가할 것이며, 원칙 훼손에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격론 끝에 3차 회의는 파행으로 끝났다. 불과 2주 뒤 소집된 제4차 회의에는 이찬진 위원을 비롯한 반대파 위원들이 대거 불참한 가운데, 김용범 차관의 후임인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이 출석해 더 큰 폭의 국내 주식 비중 확대(1안)를 지지했다.

이찬진 위원의 경고는 정확히 1년 뒤 숫자로 실현됐다.

2022년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부문에서 마이너스(-) 22.8%라는 기금 역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커진 국내주식 비중 탓에 기금 전체로도 79조6천억 원의 손실을 냈다.

5년이 지난 지금, 당시 논쟁의 중심에 섰던 이들은 공교롭게도 현재 정책과 금융시장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다.

원칙 변경을 주도했던 김용범 전 차관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이억원 전 차관은 금융위원장으로 자리 잡았다.

원칙 훼손을 경고했던 이찬진 전 위원은 금융감독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용범 실장은 올해에도 국내 주식 확대 방향을 뒷받침했다.

지난 3월 언론 인터뷰에서 김 실장은 "국민연금이 기존 전략과 자산배분에 갇혀 있다"며 "자본시장을 재평가하고 기금운용 전략을 새로 설계해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두 달 뒤인 5월, 기금위는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20.8%로 대폭 끌어올렸다.

상향 근거 중 하나로는 상법 개정 등에 따른 국내주식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제시됐다. 2021년의 "레벨업"이 2026년에는 "리레이팅"이라는 명분으로 되풀이된 셈이다.

규모와 파급은 5년 전보다 훨씬 컸다.

2021년에는 허용범위만 1%p 넓혔을 뿐 목표 비중 자체는 축소 경로에 있었다. 반면 올해는 목표 비중을 14.4%에서 14.9%로, 다시 20.8%로 두 차례 끌어올렸고 허용범위까지 ±3%p에서 ±6%p로 두 배 넓혔다.

완화적인 대안이 있었음에도 기금위는 두 번 모두 목표 비중을 크게 끌어올리는 쪽을 택했다.

리밸런싱 유예 조치 직후 코스피는 9천선에서 6천선대로 추락했고, 국민연금 기금 규모는 한두 달 새 100조 원 넘게 증발했다.

시장의 평가는 냉담하다.

리밸런싱 유예가 기금의 수익성 악화는 물론, 증시 변동성까지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계 금융기관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원칙대로 리밸런싱을 했다면 코스피 상승 폭이 둔화했을지언정, 하락장에서 연일 서킷브레이커가 걸리진 않았을 것"이라며 "고점에서 수익을 확정하지도 못하고 폭락장에서 물량을 받아주지도 못하면서 시장 전체를 카지노판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장기 펀더멘털과의 괴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다른 외국계 금융기관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기금의 장기 자산배분은 잠재성장률과 물가 등 매크로 전망을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며 "한국의 성장률이 글로벌 시장을 압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내 주식 비중을 대폭 끌어올리는 것은 이론적인 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기금 고갈기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란 우려도 더해진다.

이 전문가는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자산을 매각해야 하는 시점을 고려하면, 국내 자산 비중이 커질수록 훗날 토해내야 할 매도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며 "연금이 본격적인 기계적 매도에 나설 때 국내 증시가 받을 충격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시장 전문가들은 5년 전 이찬진 당시 위원이 제기했던 "원칙 훼손에 대한 책임" 지적이 이번 사태로 현실화했다고 분석한다. 전문위원회와 민간위원의 제동에도 정부 부처의 의지에 따라 기금위가 흔들리는 의사결정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유사한 정책 리스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국민연금공단 제공]

kslee2@yna.co.kr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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