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5년전 국민연금] "신뢰성 흠결" 경고에도…정부 주도로 국내주식 확대

26.08.07.
읽는시간 0

2021년 기금위 회의록 분석…전문위 "부적절", 민간위원 "지침이 휴지"

정부주도 비중 확대, 공단 이사장도 동조…전문위·민간위원 신중론 밀렸다

[※편집자주 = 국민연금이 올해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끌어올리고 리밸런싱을 유예한 결과, 고점 매도 기회를 놓치고 급락장의 완충 역할마저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거셉니다. 유사한 논란은 5년 전인 2021년에도 있었습니다. 당시 기금운용위원회는 국내주식 매도를 유예하기 위해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범위를 확대했고, 이듬해 기금은 국내 주식 폭락으로 역대 최악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기금위 회의록은 4년간 비공개 원칙에 따라 공개되지 않아, 당시 의사결정 과정은 그간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전문이 공개된 회의록을 연합인포맥스가 분석해 2건의 기사로 짚어봅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최근 증시 급락으로 국민연금 기금 평가액이 100조원 넘게 증발한 가운데, 기금운용 원칙을 수시로 뜯어고치는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5년 전인 2021년에도 국민연금은 투자자 압박과 논란 속에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범위를 넓혔고, 이듬해 증시 하락과 맞물려 최악의 기금 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기금위가 목표 비중을 상향하고 리밸런싱을 유예해 하락장의 직격탄을 맞은 과정을 두고 5년 전의 '데자뷔'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연합인포맥스가 7일 4년의 비공개 기간이 지나 전문이 공개된 2021년 당시 기금위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산하 상근전문위원과 민간위원들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정부 부처 주도로 원칙 변경이 강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주도 '밀어붙이기'…전문위·민간위원은 '신중론'

2021년 초 국민연금은 이른바 '동학개미' 열풍 속에서 개인투자자들의 거센 매도 중단 압박을 받았다. 2020년 말부터 넉 달 연속 국내 주식 비중이 SAA 허용범위(±2.0%p) 상단을 벗어나면서 기계적 매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SAA 허용범위를 확대하면서 국내 주식 매도를 유예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기금위에서는 정부 부처가 일관되게 허용범위 확대를 밀어붙였다. 기금위에 대체로 참석하지 않았던 김용범 당시 기재부 1차관(現 청와대 정책실장)은 3차 회의에 참석해 "구조적 변화에 비참여 리스크가 훨씬 더 크다"며 "2011년 이래 10년간 경직적으로 운영된 벤치마크를 정상화해야 한다"며 가장 인상 폭이 큰 1안(±3.5%p)을 밀었다.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잠정적인, 한시적인 한도 인상을 지지한다"며 가세했다.

반면, 기금위 전문성 강화를 위해 2020년 도입된 상근전문위원은 신중론을 폈다.

신왕건 당시 투자정책전문위원장은 허용범위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기금운용의 장기 전략 틀을 운용기간 중 긴급하게 바꾸는 건 부적절하다"며 "일부 투자자 요구로 전략적 의사결정 사항이 변경될 수 있다는 신호로 비칠 경우 일관성과 신뢰성에 흠결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무평가위원회 역시 "개인투자자의 이해관계가 아닌 국민을 위한 기금의 수익성·안정성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짚었다. 국내 주식 축소 방향과 허용범위 확대가 배치되는 것은 아닌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더했다.

시민사회와 노동계 등 민간위원들의 반대는 더 거셌다.

이찬진 당시 참여연대 위원은 "합리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지침을 개정하는 것을 2~3년이 지난 뒤 어떻게 평가할 것이며, 원칙 훼손에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따져 물었고, 김태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위원은 "(기금위에서) 2시간 논의하고 다수결로 지침을 바꾸게 되면 지침 자체가 휴지가 된다"고 비판했다.

안영균 한국공인회계사회 위원은 "이 자리에 오지 못한 미래세대의 몫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격론 끝에 진행된 표결도 혼선이었다. 권덕철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SAA 확대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6대 6"이라고 밝히자, 이찬진 위원이 "저희가 확인한 것은 7대 5. 판단할 수 없다가 7"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결국 3차 회의에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안건은 다음 회의로 이월됐다.

◇반대파 빠진 '원포인트' 회의…정부 주도로 '합의'

기금위는 3차 회의 파행 이후 불과 2주 만인 2021년 4월 9일 제4차 회의를 소집했다. 사실상 SAA 확대를 위한 '원포인트' 회의였다.

이날 재적 위원 19명 중에는 8명이 불참했다. 특히 3차 회의에서 원칙 훼손을 지적했던 이찬진(참여연대), 안영균(한국공인회계사회), 박기영·류기섭(노동계) 위원 등이 대거 자리를 비웠다.

2주 사이 투자정책전문위원회나 실무평가위원회 등 전문가들의 추가 검토도 이뤄지지 않았다.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이렇게 중요한 사안에 전문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도 갑자기 했기 때문에 아쉽다"고 쓴소리를 남겼다.

정부 부처는 반대파가 빠진 회의에서 가장 큰 확대 폭인 1안을 밀어붙였다.

새로 부임한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1안은 수치에 기반한 명확한 논리가 있는 반면, 2안은 대외 설명력이 떨어진다"고 했고,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김용진 이사장도 "가급적 빨리 조정하는 게 맞다"며 찬성했다.

다만 기금운용본부와 사용자단체 위원들은 전술적 자산배분(TAA) 재량권 확보 등을 이유로 2안을 지지했다. 앞선 3차 회의에서 안효준 당시 기금운용본부장은 "목표 초과수익률을 달성해야 인센티브가 나오는데 1안은 무기를 줄인다"며 직원들의 성과급 보호를 이유로 2안을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권덕철 위원장은 위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표결 없이 2안(±3.0%p) 의결을 선언했다.

회의 종료 직후 간사인 이형훈 당시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백브리핑에서는 가급적 '합의 처리'되었음을 강조하겠다"며 "1안을 냈던 위원들도 충분히 양지한 것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앞선 파행을 의식해 대외적으로 '합의 통과' 프레임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2021년의 훼손은 2022년의 손실로…올해도 수익 기회 놓쳐

당시 민간위원들이 우려했던 '원칙 훼손'의 대가는 1년 뒤 숫자로 나타났다. 2021년에 뚫린 방어막은 2022년 국내 주식 부문 마이너스(-) 22.8%라는 최악의 성적표와 기금 전체 79조6천억 원 손실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해외 주식은 12.34% 하락에 그친 점을 고려하면, 국내 주식 비중 확대가 기금 손실 확대로 이어진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절차적 흠결과 뼈아픈 경험에도 올해 기금위가 똑같은 패착을 반복했다는 점이다.

올해 기금위는 5년 전보다 한술 더 떠, 목표 비중 자체를 14.4%에서 20.8%로 두 차례나 끌어올리고 허용범위까지 ±6%p로 대폭 넓혔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국내 증시 폭락에 따른 운용자산 급감이라는 즉각적인 타격으로 돌아왔다.

전문가 지원 기구를 무력화하고 정부 부처의 입맛대로 수시로 바뀌는 기금위의 거버넌스(지배구조)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2021년 SAA 확대 논의에 참여했던 한 기금위 위원은 "큰 틀의 제도를 수시로 바꾸면 결국 훗날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며 기금운용 원칙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국민연금공단 제공]

kslee2@yna.co.kr

이규선

이규선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와 KB Think 글자가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입니다. KB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