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세금 만지는 사람은 (세법을) 바꾸면 반드시 욕을 먹게 돼 있다. 무조건 기어서 다니시라."
지난 11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건넨 농담이다. 회의장에는 웃음이 터졌지만, 생각할수록 세제당국의 숙명을 꽤 날카롭게 표현한 말이다.
세금은 숫자 몇 개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국민의 소득과 자산, 때로는 평생의 선택에 값을 매기는 일이다. 세율 1%포인트(p), 공제 한도 하나를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는 혜택을 보고, 다른 누군가는 당장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그러니 걷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살얼음판, 여리박빙(如履薄氷)이다. 대통령 표현대로라면 아예 기어서 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번 세제개편안은 그 살얼음판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정부가 안을 발표한 지 일주일여 만에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부터 이른바 '주가누르기 방지책', 부동산 세제까지 곳곳에서 보완 요구가 터져 나왔다. 종합부동산세는 비거주 1주택자를 어디까지 투기 수요로 볼 것인지가 논란이 됐고, 부부 공동명의와 고령·장기보유자의 세 부담도 문제가 됐다. 반론이 있으면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하고 안을 낼 때는 변경의 여지가 있다는 대통령의 말은 사실상 세제개편안을 다시 들여다보라는 주문이었다.
해외에서도 세금은 정부가 가장 조심스럽게 다루는 정책이다. 영국은 2022년 리즈 트러스 정부가 대규모 감세안을 내놨다가 파운드화와 국채시장이 요동치자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대부분을 되돌렸다. 일본도 최근 이른바 '103만엔의 벽'을 손보는 과정에서 논란을 겪었다. 물가와 임금은 올랐는데 소득세 과세 기준은 오랫동안 제자리에 머물면서 근로를 억제한다는 비판이 커지자 정부와 정치권은 당초 안을 거듭 조정했다. 나라마다 사정은 달라도 이유는 같다. 세제는 정부가 의도한 효과만 만들어내는 정책이 아니다. 납세자는 세법에 맞춰 행동을 바꾸고, 시장은 정부보다 먼저 계산기를 두드린다.
역대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세법개정안을 발표한 뒤 여론과 시장의 반응에 따라 적잖은 수정이 뒤따랐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중산층 증세' 논란이 커지자 세법개정안을 닷새 만에 손봤고, 문재인 정부도 금융세제 개편 과정에서 개인투자자의 반발을 반영해 기본공제를 확대했다. 윤석열 정부 역시 입법예고 과정에서 일부 세법을 보완했다. 정책 수정은 정책 실패와 동의어가 아니다. 오히려 틀린 것을 알면서도 일관성을 명분 삼아 밀어붙이는 것이 더 위험하다.
때문에 세제당국이 두려워할 것은 수정 자체가 아니라, 고쳐야 할 문제가 왜 발표 뒤 한꺼번에 드러났느냐는 질문이다. 비거주 1주택자에게 세 부담을 더 지우겠다는 방향 하나에도 직장과 교육, 부모 봉양 등 저마다 다른 사정이 숨어 있다. 공동명의 과세를 손보면 또 다른 형평성 문제가 생기고, 장기보유 공제를 조정하면 고령 은퇴자의 현금흐름 문제가 따라온다. ISA의 만기 구조를 조금 바꾸면 투자자의 복리 효과와 자금 이동도 달라진다. 한 줄의 세법 뒤에 숨어 있던 수십 갈래의 삶을 다시 들여다볼 일이다.
그래서 세제당국은 전문성에 기대는 만큼 자신들이 세운 가정도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증해야 한다. 재정경제부 세제실은 부처 안에서도 손꼽히는 전문 관료 조직이다. 매년 세법개정안을 만들면서 세수와 조세 형평, 시장 영향을 수없이 계산한다. 그럼에도 책상 위 숫자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계산에서 빠진 사람이 나타난다. 세금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만드는 정책조차 여리박빙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통령의 말처럼 정책은 진리가 아니다. 수정할 필요가 없는 100% 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일관성보다 원칙이다. 왜 세금을 더 걷는지, 누구에게 더 부담시키는지, 무엇을 보호하고 무엇을 억제하려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원칙이 분명하면 세부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원칙이 흐리면 조금씩 고칠수록 '누더기'라는 비판만 커진다.
세금을 만지는 사람은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욕을 덜 먹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고집이 아니라 설명이고, 체면이 아니라 검증이다. 잘못된 안이라면 고치되 왜 고쳤는지 설명하고, 끝까지 지킬 원칙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수정해야 할 곳이 많아질수록 사전 설계와 정책 철학에 대한 책임도 더 무거워진다.
'기어다니라'는 말은 그래서 그저 몸만 낮추라는 가벼운 주문은 아닐 것이다. 국민의 지갑을 직접 만지는 정책일수록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계산하고, 더 많이 설명하라는 뜻에 가깝다. 다만 기어가더라도 방향은 알고 가야 한다. 세금을 다루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욕을 먹는 일이 아니라 왜 그 세금을 고쳤는지 스스로 설명하지 못하는 일이다. 농담으로 던진 한마디였지만, 어쩌면 세제당국이 가장 진지하게 새겨들어야 할 원칙인지도 모른다. (경제부 정치팀 차장)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2026.7.21 superdoo8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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