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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은 지금] 다시 꺼낸 '통화 가치의 안정'…원화 국제화로 넓어지나

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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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윤시윤 기자 = 최근 한국은행 안팎에서 '통화 가치의 안정'이라는 다소 오래된 표현이 다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원화 국제화를 강조하면서 물가뿐 아니라 원화가 국내외에서 안정적으로 거래되고 결제될 수 있는 통화 시스템 전반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다.

흥미롭게도 이 표현은 한은의 역사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서울 중구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의 옛 총재실에는 지금도 '통화 가치의 안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1950년 제정 한국은행법은 한은의 설립 목적으로 '통화가치의 안정'과 '은행·신용제도의 건전화'를 뒀다. 이후 외환위기를 거친 1997년 한은법 전면 개정에서 목적 조항의 중심이 '물가안정'으로 바뀌었고, 현행법 제1조도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한 물가안정을 명시하고 있다.

법률상 한은의 핵심 책무가 물가안정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최근 한은 내부에서는 과거의 '통화가치 안정'이라는 표현을 물가뿐 아니라 통화와 외환·결제 시스템까지 아우르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 다시 주목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는 신 총재가 최근 역점을 두는 원화 국제화와도 닿는 개념이다. 외국인이 원화를 단순히 투자 대상으로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사고팔고 빌리고 결제할 수 있도록 원화의 글로벌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24시간 개장 다음은 '실제로 쓸 수 있는 원화'

정부와 한은은 원화의 글로벌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외환시장을 24시간으로 확대했고, 내년에는 한은 원화국제결제망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금융기관에 직접 계좌를 만들지 않고 해외의 원화국제결제기관을 통해 원화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고 비거주자 간 거래에 적용되는 신고·확인 절차도 완화하는 방향이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도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가장 큰 문제는 역외에서 자신들이 편한 시간에 원화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라며 "영미권 시장이 열려 있을 때 편안하게 원화를 빌리기도 하고 사고팔기도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됐다"고 말했다.

다만 오랫동안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을 이용해 온 투자자가 하루아침에 실물인도 방식의 DF 시장으로 이동하기는 어렵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유 부총재는 "NDF에서 계속 거래해 온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DF에서 거래하라고 한다고 금방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현재 제도를 개선했고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열어주되 무제한으로 풀지는 않는다

원화 국제화가 곧 원화의 완전한 자유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은은 과거보다 한국의 자본시장 규모가 커지고 대외지급능력 등 펀더멘털이 강해지면서 원화를 한 단계 더 개방할 여건이 갖춰졌다고 보고 있다.

반면 원화를 무제한으로 차입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완전히 풀 경우 확보한 원화를 이용한 대규모 투기적 거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한은은 현재를 완전한 자유화로 가는 '중간 단계'로 보고 점진적으로 개방 폭을 넓혀간다는 방침이다.

비거주자 거래의 사전 신고와 세부 확인을 줄이면서도 외환전산망 등을 통해 전체적인 자금 흐름은 계속 모니터링한다.

지난 6월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14년 만에 외국환은행에 대해 외환공동검사에 나섰던 점 역시 원화 국제화에 역행하는 규제 강화가 아니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최근 환율 변동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거래 패턴과 관행 가운데 시장 안정을 위해 개선할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한 별도 조치라는 것이다.

◇'깊은 원화시장'이 환율 충격도 줄일까

원화 국제화를 추진하는 또 다른 배경에는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있다.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와 거주자의 해외투자가 함께 늘면서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 규모는 커졌지만 이를 소화할 한국의 외환시장의 심도가 얕다는 문제의식이다.

유 부총재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에는 외국인 자금이 굉장히 많이 들어와 있고 거주자의 해외투자도 많이 늘었다"며 "자금이 들어오고 나갈 때 외환시장의 심도가 높지 않다 보니 큰 환율 변동성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투기적인 거래자라고 하더라도 다양한 시장 참가자들이 외환시장에 참여해 편안하게 거래할 때 시장의 깊이가 커진다"고 강조했다.

시장 참가자가 다양해지고 역외에서도 원화를 원활하게 거래할 수 있게 되면 특정 수급 충격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 수 있다는 구상이다.

한은은 야간 원화 결제를 뒷받침할 유동성 공급체계도 준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외국환은행이 보유한 원화 유동성을 해외 참가기관에 공급하고, 이것만으로 부족할 경우 정부와 한은이 백스톱을 제공하는 방안이다.

1950년 한은법에 등장했던 '통화가치의 안정'은 외환위기를 거쳐 '물가안정'이라는 보다 명확한 법적 목표로 바뀌었다.

그리고 70여년이 흐른 지금, 옛 총재실에 남아 있는 '통화 가치의 안정'이라는 문구는 원화가 세계에서 어떻게 거래되고 결제돼야 하는가라는 한은의 새로운 고민과 다시 만나고 있다.

한국은행 본관(화폐박물관) 옛 총재실

*사진 : 연합인포맥스 촬영

syyoon@yna.co.kr

윤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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