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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욱의 정책한컷] 힘빠진 재경부의 시간

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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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 개편안 설명하는 구윤철 부총리

(세종=연합인포맥스) 세종 관가에서는 예전부터 6~8월을 '기재부의 시간'이라고 불러왔다.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옛 경제정책방향)을 시작으로 세제개편안, 예산안으로 이어지는 굵직한 정책 발표의 중심이 경제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였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처럼 지방선거나 총선이 있었던 해에는 기재부의 시간이 더욱 각별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밀려 발표하지 못했던 정책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기회로 삼곤 했다.

정부 조직개편에 따라 예산 기능이 분리되면서 재정경제부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경제성장전략과 세제개편안은 여전히 재경부의 몫이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재경부 공무원들은 두꺼운 책자에 담을 정책을 준비하느라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그런데 올해에는 다시 돌아온 '재경부의 시간'이 유독 가혹하다고 말하는 관료들이 많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3·4·5'(잠재성장률 3%·수출 4강·국민소득 5만달러) 비전을 제시하며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을 그런대로 잘 마무리했지만, 세제개편안 이후 거센 후폭풍을 겪고 있어서다.

이번 세제개편안에는 전 국민의 관심사인 부동산 세금 강화 방안이 담기는 만큼 발표 이전부터 재경부 내에서도 우려가 컸다. 그럼에도 거주 중심의 주택 시장 정착과 세제 합리화라는 원칙을 내세워 초고가·비거주 주택의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 부담을 높이는 개편안을 내놨다.

지난 4일 입법예고 이후 국민입법참여센터 홈페이지에는 현재까지 종부세법 개정안과 소득세법 개정안에 8천건이 넘는 의견이 접수됐다. 입법예고가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한 절차이긴 하지만 특정 법안에 대해 이렇게 많은 의견이 쏟아지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의견의 면면을 살펴보면 종부세 부담을 높이는 개편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이지만 제도 설계의 보완을 요구하고 부동산 세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게시물도 눈에 띈다. 과세 초점을 실거주에 맞추다 보니 세제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졌다는 게 주된 불만이다.

다만, 이런 주장을 단순한 조세 저항으로 보긴 어렵다. 재정학계 전문가와 세무사들조차도 이번 개편안의 최대 문제점을 '복잡성'으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정무적 판단이 들어가다 보니 부동산 세제가 더욱 복잡해졌다"고 지적했다. 한국세무사회는 이번 세제개편으로 "과소신고나 오류 등 리스크와 납세협력비용이 폭증하게 됐다"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예컨대 부부 공동명의 1주택자는 개별 과세와 1세대 1주택 특례 신청 중 어느 쪽이 유리한지 납세자가 매년 시뮬레이션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다. 공시가격 18억원(시가 약 26억원)을 넘는 시점부터 실거주 여부와 거주 기간, 부부 연령, 공제 한도 등이 어떻게 적용되느냐에 따라 종부세액이 달라진다. 재경부의 잇단 해명에도 부부 공동명의 1주택자가 다주택자 취급을 받게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세제개편안에 대해 타당한 반론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재경부는 발표한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아 정부안을 수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전에도 세제개편안의 주요 내용이 여론을 반영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수정되는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국회 제출 이전에 정부안의 골격을 바꾸는 일은 이례적이다. 투자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편안과 주가 누르기 방지 법안은 이미 재검토 대상에 올라가 있다.

이렇다 보니 지난 몇개월 동안 검토·조율·보고를 반복하며 개편안을 만들었던 재경부 세제실은 허탈해하는 분위기다. 경제 사령탑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재경부가 유일하게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세제개편안에서도 힘이 빠졌다는 토로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정책은 이론의 여지가 있고 다른 의견들이 있기 때문에 정책인 것으로, 이견이 없는 명백한 진리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정책 최고 결정자가 수정 필요성을 직접 거론한 만큼 이제 재경부는 허탈함을 뒤로하고 시장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번에는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정안을 내놓기를 기대해본다. (경제부 차장)

wchoi@yna.co.kr

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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