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기술 상용화하는 선전·정부가 시장 설계하는 핑탄
미중 AI 모델 격차 2.7%…'차이나쇼크 3.0' 현실로
[※편집자주: 부동산 침체와 미국의 기술 통제 속에서도 중국은 인공지능(AI)과 전기차, 반도체, 데이터 등 첨단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저가 공산품을 공급하던 '세계의 공장'에서 기술·자본·내수를 앞세우며 글로벌 시장의 판도를 바꾸게 된 중국은 어디까지 왔을까요. 연합인포맥스는 광둥성 선전과 푸젠성 푸저우·핑탄을 찾아 중국 경제의 성장모델과 한국 산업에 던지는 질문을 살펴봤습니다.]
(선전·푸저우·핑탄=연합인포맥스) 김지연 기자 = 중국 선전 바오안국제공항을 빠져나와 도심으로 향하면 녹색 번호판을 단 전기차들이 외지인을 가장 먼저 반긴다. 도로 너머에는 유리 외벽을 두른 초고층 건물과 빅테크 기업의 연구개발(R&D) 단지가 어릴 적 상상했던 미래도시처럼 잇달아 펼쳐진다.
논밭과 어촌이던 도시가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40여년에 불과했다. 선전은 이제 전기차·배터리·통신장비·인터넷 플랫폼·클라우드와 사이버보안 기업이 한 도시에 모인 거대한 기술 실험실에 가깝다.
현지 관계자들은 선전의 성장 동력이 '우마정신'(牛馬精神)에서 왔다고 입을 모았다. '우마'는 중국 온라인에서 소와 말처럼 고되게 일하는 직장인을 자조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IT 기업을 중심으로 한 '996 근무제'(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관행)와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 숨 가쁜 제품 개발 주기를 빗댄 표현으로 선전 특유의 속도와 치열한 경쟁을 압축해 보여준다.
선전에서 북동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푸젠성 푸저우와 핑탄에서는 또 다른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푸저우에서 양안융합 정책을 연구하고, 중국 본토에서 대만 본섬까지 최단 거리가 68해리에 불과한 핑탄에서는 무역·물류·데이터·AI 연산 인프라를 한데 모아 양안 경제권을 설계한다.
중국의 '양안융합발전'은 중국 본토와 대만 간 경제·사회적 연결을 확대해 장기적인 통합 기반을 마련하려는 중국 정부의 정책이다.
미중 기술 경쟁의 최전선인 선전과 양안융합의 시험장인 푸저우·핑탄은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부동산·토지재정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AI·데이터·첨단산업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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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통제가 자립의 연마제로…'차이나쇼크 3.0'
국제금융센터는 지난 12일 공개한 '미중 AI 패권경쟁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중국발 생성형 AI 확산을 '차이나쇼크 3.0'으로 진단했다.
지난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저가 공산품이 세계 시장에 쏟아진 것이 '차이나쇼크 1.0'이었다면, 전기차와 배터리·태양광 제품의 수출 급증은 '2.0'에 해당한다. 이제는 저비용 AI 모델과 이를 적용한 제품·서비스가 세 번째 충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과 중국 간 AI 모델의 성능 격차도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중국 AI 모델의 종합 성능점수는 올해 3월 기준 1천464점으로 미국의 1천503점에 근접했다. 미중 간 격차는 지난 2023년 26%에서 2.7%로 축소됐다.
그간 미국은 첨단 반도체와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로 중국을 옥죄려 했다. 그러나 중국 기업들이 성능이 제한된 반도체를 대규모로 연결하고 저비용·오픈소스 모델을 확산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으면서, 미국의 기술 통제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립을 촉진하는 연마제로 작용했다.
국금센터는 중국이 향후 5년간 AI 인프라 구축에 2조위안을 투입하고 제조와 금융, 물류 등 산업 전반으로 AI 적용 범위를 넓힐 것으로 내다봤다.
이치훈 국금센터 세계경제분석실장은 "AI의 3요소인 데이터·알고리즘·컴퓨팅파워 중 중국은 데이터에서 미국보다 우세하다"며 "알고리즘 역시 이번 키미 K3 출시로 미국과 근접한 위치까지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최근 뚜렷해지고 있는 미중 갈등의 반사이익을 활용하는 동시에 중국 오픈소스 활용을 통한 실리주의와 특화 부문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며 "궁극적으로는 자체 소버린 AI 생태계 확립을 위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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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서 기술 상용화·핑탄서 시장 설계
선전의 '우마정신'과 푸저우·핑탄의 '양안융합'은 중국 경제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드는 두 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선전시 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선전의 국내총생산(GDP)은 3조8천731억8천만위안으로 전년보다 5.5% 증가했다. '전략적 신흥산업' 부가가치는 7.2% 늘어난 약 1조6천700억위안으로 전체 GDP의 43.0%를 차지했다.
3D프린팅 장비와 산업용 로봇, 민간용 드론 생산량은 각각 45.1%, 43.1%, 40.1% 뛰었다. 같은 기간 부동산 개발 투자는 31.0% 감소했으나 정보전송·소프트웨어·정보기술 서비스업 부가가치는 10.3% 늘었고, 해당 업종에 대한 투자는 67.7% 급증했다.
푸저우와 핑탄에서는 첨단기술을 대만과의 경제·산업 교류로 확장한다. 푸젠성 사회과학원 현대대만연구소가 중국 정부의 양안융합 정책을 연구한다면, 핑탄에서는 이를 무역·물류·산업 인프라로 확장하는 실험이 이뤄진다.
그러나 빛이 있는 곳에는 늘 그림자도 있다. 중국에서는 AI가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 문턱을 높이는 'AI 쇼크'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 북경사무소가 최근 발표한 '중국의 AI 확산에 따른 노동시장 영향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중국의 16∼24세 도시 조사실업률은 재학생을 제외하고도 14.9%에 달했다. 올해 중국 대학 졸업자가 역대 최대인 1천270만명에 달하는 가운데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은 졸업생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7∼8월 청년실업률이 다시 20%에 근접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2030 세대 가운데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이유로 '쉬었음'을 답한 인구는 71만7천명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최대였다. 이는 전체 청년층 인구의 5.8%에 해당한다.
현지의 한 AI업계 관계자는 "중간 단계 업무를 AI가 모두 대체하면 젊은 세대가 경험을 쌓아 숙련 인력으로 성장할 기회도 줄어들게 된다"면서 "한국과 중국 모두 청년 고용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오늘날 선전과 푸저우·핑탄이라는 '두 실험실'은 한국에 같은 질문을 던진다.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면서도 AI시대 청년의 성장 경로를 지켜내야 하는 '이중 과제'가 우리 앞에 놓였다.
jykim2@yna.co.kr
김지연
j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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