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진 제작] 일러스트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원 기자 = 미술품과 부동산, 음원 저작권 등을 쪼개 투자하는 조각투자 시장이 올해 말 제도권 자본시장의 한 축으로 본격 편입된다.
오는 11월 한국거래소(KRX)의 신종증권시장이 문을 여는 데 이어 민간이 운영하는 조각투자 장외거래소도 출범을 준비하면서다.
금융투자업계는 그간 개별 플랫폼 안에 머물렀던 조각투자가 발행과 유통, 중개를 갖춘 하나의 생태계로 전환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오는 11월 16일 신종증권시장 개설을 목표로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
미술품과 부동산 등 비정형 자산을 기초로 발행된 투자계약증권과 비금전 신탁수익증권을 증권사를 통해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는 장내시장이다. 거래소는 오는 10월 6일부터 11월 13일까지 6주간 모의시장을 운영할 예정이다.
장외에서도 새로운 유통시장이 들어선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수익증권 장외거래중개업 예비인가 대상으로 한국거래소·코스콤이 참여한 KDX 컨소시엄과 넥스트레이드(NXT)·뮤직카우 등이 참여한 NXT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금융당국은 조각투자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과 유동성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장외거래소 사업자를 최대 2곳으로 제한했다.
본인가와 시스템 구축 등이 마무리되면 연내 민간 장외시장의 서비스 개시도 가능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업계에선 단순히 거래 장소가 늘어나는 것 이상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그간 국내 조각투자는 사실상 '발행은 있지만 유통은 빈약한 시장'에 가까웠다.
부동산이나 음원 등을 증권화해 투자자를 모집하더라도 해당 사업자가 운영하는 플랫폼 안에서만 거래되는 구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샌드박스 사업자 4곳의 지난 2024년 연간 유통 거래금액은 매수액 기준 약 145억원에 불과했다.
뮤직카우가 84억원, 루센트블록 33억원, 카사코리아 21억원, 펀드블록글로벌 8억원 수준이다. 거래수수료 수익도 연간 1억5천만원 정도에 그쳤다.
장외거래소가 출범하면 이른바 '가두리 시장'의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기존에는 A업체가 발행한 부동산 조각투자 상품은 A업체 플랫폼에서, B업체가 발행한 음원 관련 상품은 B업체 플랫폼에서 거래하는 식이었다.
제도화된 장외거래소에서는 여러 조각투자 사업자와 증권사가 발행한 상품을 하나의 시장에 모아 거래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KRX 장내시장까지 가세하면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장내와 장외라는 복수의 유통 채널이 생기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두 시장이 당장 정면으로 경쟁하기보다는 역할을 나눌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KRX 시장은 기준시가총액 30억원 이상, 상장증권 총수 10만증권 또는 10만좌 이상 등의 상장 요건을 갖춰야 한다.
발행인에게도 자기자본 20억원 이상과 일정 규모의 의무보유 등이 요구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표준화가 가능한 상품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장외시장은 다양한 조각투자 사업자가 발행한 상품을 모으는 역할을 맡는 만큼 상품의 다양성과 새로운 기초자산 발굴에서 상대적으로 강점을 가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결국 'KRX냐 장외냐'보다 두 시장을 채울 만한 상품이 얼마나 나오느냐가 조각투자 생태계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거래 시장을 세 곳까지 만들어도 투자자가 사고 싶은 상품이 부족하면 거래량을 확보하기 어렵다. 특히 조각투자는 주식과 달리 미술품이나 부동산, 저작권 등 기초자산 자체의 거래 빈도가 낮고 객관적인 가치평가도 상대적으로 어렵다.
시장이 여러 곳으로 나뉘면서 초기 유동성이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금융당국이 장외거래소 인가를 최대 2곳으로 제한한 것도 초기 시장에서 거래량이 여러 플랫폼으로 흩어지는 문제를 고려한 조치다.
여기에 KRX 시장까지 동시에 가동되면 상품 확보 뿐 아니라 투자자와 유동성을 둘러싼 경쟁도 불가피하다.
반대로 장내와 장외시장 간 경쟁이 조각투자 상품의 질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과거 조각투자 사업자의 경쟁력이 '얼마나 매력적인 자산을 가져와 공모하느냐'에 집중됐다면 향후에는 좋은 기초자산을 확보하는 능력에 더해, 적정한 가격을 산정하고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해 투자자의 거래를 유도하는 능력까지 중요해진다.
증권사의 역할도 커질 전망이다.
장내에서는 기존 증권사가 투자자의 거래를 직접 중개한다. 장외시장 역시 금융투자회사와 시장 인프라 사업자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면서 조각투자는 핀테크 업체 중심의 틈새시장에서 기존 금융투자업계의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이동하게 됐다.
당장 중개수수료 자체가 큰 수익원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기존 시장의 거래 규모가 워낙 작기 때문이다.
대신 시장이 커질 경우 기초자산 발굴부터 증권 구조화와 발행, 계좌관리, 유통까지 연결되는 새로운 투자은행(IB) 비즈니스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부동산과 미술품을 넘어 콘텐츠 지식재산권(IP)이나 각종 실물자산으로 증권화 대상이 확대될수록 사업 기회도 커질 수 있다.
내년 2월 시행되는 토큰증권 법제화도 변수다. 분산원장을 활용한 토큰증권 발행·관리의 법적 기반까지 마련되면 조각투자 시장의 상품 공급 방식 자체가 한층 다양해질 수 있다.
결국 올해 말은 국내 조각투자 시장이 '무엇을 쪼개 팔 것인가'를 고민하던 단계에서 '어떤 자산을 증권화해 어디에서 거래하게 할 것인가'를 경쟁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거래소가 여러 개 생긴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투자할 만한 상품이 공급되고 유동성이 붙을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장내와 장외시장이 각각 어떤 상품과 투자자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조각투자가 틈새상품에 머물 지, 하나의 자본시장으로 자리 잡을 지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jwon@yna.co.kr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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