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진 교보증권 신사업담당 이사 인터뷰
교보문고부터 SBI저축銀까지…"디지털자산, 흩어진 그룹고객 묶을 연결고리"
[출처: 교보증권]
(서울=연합인포맥스) 전병훈 기자 = 신희진 교보증권 신사업담당 이사는 해외 출장길마다 한 장짜리 제안서를 들고 다닌다. 새로 구상한 토큰증권(STO) 아이템의 간단한 설명과 법률 검토 요지가 담긴 제안서다. 이를 해외 투자자들에게 선보이며 수요부터 확인하는 일이 토큰증권 상품화의 첫 단계다.
내년 2월 토큰증권(STO) 제도 시행을 앞두고 신 이사가 붙들고 있는 질문도 하나다. 교보증권이 앞으로 내놓을 상품에 투자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겠느냐는 것이다.
신 이사는 19일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시장 선점을 좌우하는 요소는 딱 하나, 수요가 있느냐 없느냐"라며 "상품부터 만들어 놓고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투자자를 직접 만나 수요를 확인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이어 "수요만 확인되면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설득해 개발에 들어가는 것부터 나머지는 순리대로 풀린다"고 했다.
제안서 한 장을 들고 현장에서 수요를 확인하는 방식은 그가 인수합병(M&A) 자문을 하던 시절부터 기른 영업 방식 중 하나다. 다루는 상품이 토큰으로 바뀌고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더해졌을 뿐,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파는 일의 본질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신 이사는 증권업계에서 주식·채권발행시장(ECM·DCM)과 M&A 자문을 담당했고, 금융그룹 계열 운용사에서 해외 대체투자 업무까지 경험했다. 반도체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해 5년간 자금 조달부터 사업개발(BD), 마케팅까지 직접 부딪히며 사업을 일군 이력도 있다.
상품을 설계하고 수요를 파악해 투자자를 모아 판매하기까지, 어느 한 분야에 매이지 않은 경력은 토큰증권이라는 낯선 시장에서 그만의 원칙을 세우는 밑천이 됐다.
◇ 한 장짜리 제안서 들고 해외로…"자기자본 넣고 같이 간다"
교보증권 디지털자산 조직은 태스크포스(TF)를 거쳐 2024년 초 '디지털자산비즈'로 출발했고, 올해 초 부서로 격상됐다. 그룹 차원에서는 교보생명이 컨트롤타워로 웹3 전략과 해외 진출의 밑그림을 그리고, 교보증권이 국내 STO와 해외 실물연계자산(RWA)의 발행·유통을, 시스템통합(SI) 계열사인 교보DTS가 커스터디·트레이딩 시스템 등 기술 인프라와 보안을 맡는 식으로 그룹 내 20명 안팎의 인원이 '원팀'으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룹 차원의 진용은 이제 막 갖춰졌지만, 신 이사의 행보는 그보다 앞서 해외에서 먼저 시작됐다. 국내는 내년 2월 제도 시행을 앞두고 아직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은 반면, 해외에서는 구상한 상품을 투자자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다. 출장길마다 챙기는 한 장짜리 제안서도 이곳에서 쓰인다.
해외 투자자를 상대로 한 영업에서 그가 쓰는 방식은 패키지 제안이다. 콘텐츠 지식재산(IP)을 보유한 기업을 만나면 IP 수익의 토큰화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채권 발행, 해외 증자 같은 자금 조달까지 토큰 버전으로 묶어 내민다.
기업으로서는 자금 문제까지 한 번에 풀 수 있고, 증권사로서는 상품이 여럿인 만큼 성향이 다른 투자자를 두루 붙잡을 수 있는 구조다.
다만 제안이 아무리 좋아도 해외 투자자에게 팔려면 신뢰라는 관문이 남는다. 낯선 한국 증권사가 들고 온 상품을 선뜻 믿지 않기 때문이다. 신 이사가 이때 제안하는 카드가 자기자본을 걸고 함께 가는 '스킨 인 더 게임'이다.
교보증권이 단순히 판매만 중개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투자자로 들어가 위험을 나눠 지겠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돈 없이 브로커리지만 해서는 잘 믿지 않는다"며 "자기자본을 일부 넣고 '너 나올 때 같이 나가자'는 구조를 짜서 설명한다"고 했다.
◇ "그룹 내 흩어진 고객, 디지털자산이 연결 고리 될 수도"
계열사가 원팀으로 뭉친 가운데, 신 이사가 주목하는 것은 그룹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객이다. 그는 "교보문고부터 최근 인수한 SBI저축은행까지 계열사마다 고객이 꽤 많은데 다 쪼개져 있다"며 "흩어진 고객을 모으는 게 그룹의 과제인데, 디지털자산이 그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와 금융을 표방하는 그룹 특성을 살려 콘텐츠 지식재산(IP)에 투자하는 펀드를 연내 설정하는 방안도 그 연장선에서 기획하고 있다.
또한 신 이사는 교보그룹이 토큰증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강점으로 교보생명의 대규모 자본과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내세웠다. 그는 "사모펀드(PE)들이 보험사를 인수하는 것도 안정적인 자금 조달원 때문인데, 교보그룹은 그 자본을 이미 갖고 있다"며 "이를 잘 투자해 빠르게 사업을 키워나가는 게 가장 큰 동력"이라고 말했다.
신 이사의 시선이 먼저 향하는 곳은 기관 시장이다. 대형 증권사만큼 리테일 기반이 두텁지 않으니, 강점이 있는 영역에서 출발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는 "상위 증권사가 아닌 만큼 차별화를 고민했고, 그래서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는 길도 택하지 않았다"며 "교보생명이라는 큰 기관 고객이 그룹 안에 있는 만큼, 자산운용사 등 기관의 수요에 맞춘 인프라와 프라임 브로커리지 형태의 사업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이런 구상의 속도를 결정하는 건 결국 제도다. 디지털자산의 정의는 기본법에서, STO의 세부 사항은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에서 정리될 예정이다. 다만 신 이사는 법과 가이드라인이 공개된다고 해도 남는 영역이 있다고 봤다. 내부통제를 어느 수준으로 갖출지, 고객확인(KYC)을 기술적으로 어떻게 구현할지처럼 법이 매뉴얼로 규정하기 어려운 실무 규격이다. 그는 "법은 법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표준이 나와야 신뢰를 바탕으로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다"며 "회사마다 내부통제와 시스템이 다른데 기준이 없으니 기관이 투자를 못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는 국경을 넘으면 더 커진다. 신 이사는 "더 많은 투자자 확보를 위해 해외 진출은 필수적인데 나라마다 표준이 달라 맞지 않는다"며 "반도체처럼 국가 간 컨소시엄을 만들어 기술 표준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부언했다. 그러면서도 내년 2월 제도 시행을 의미 있는 출발점으로 꼽으며 "제도만 잘 정비되면 한국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디지털자산 시장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bhjeon@yna.co.kr
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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