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건수 뚜렷한 증가세 없어…후기 임상 자산 선호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수인 기자 = 3조원대에서 7조원대에 이르기까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 수조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이 잇따르고 있다. 주요 헤드라인만 보면 온통 '대형 잭팟'이다.
그렇다면 커진 계약 규모만큼 실제로 기업의 통장에 꽂히는 현금도 늘었을까.
예상보다 그 간극은 컸다.
연합인포맥스가 최근 5년의 데이터를 뜯어 숫자로 확인해봤다.
[출처: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업계 참고, AI생성이미지]
19일 연합인포맥스가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데이터를 기반해 최근 5개년(2022~2026년 8월) 사이 비공개 내역을 제외한 국내 기술수출 계약을 분석한 결과, 올해 8월까지 집계된 기술수출 규모는 13조3천794억 원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계약 체결 이후 먼저 받게 되는 선급금(업프론트)은 계약 규모의 2.41%에 그쳤다.
계약규모와 선급금 모두가 공개된 내역을 토대로 비중을 계산해봐도 2.5% 수준이었다.
수조 원 규모의 계약이 체결되더라도 계약 총액 전부가 곧바로 기업의 현금 수입으로는 잡히지 않는다.
계약 총액에는 개발과 허가, 상업화 등 단계별 성과를 달성했을 때 받는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과 판매에 따라 지급되는 로열티 등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업이 총 계약 금액만큼의 돈을 손에 쥐기까지는 여러 관문을 넘어야 한다.
최근 5년간 흐름을 봐도 계약 규모와 선급금 사이의 격차는 뚜렷하다.
공개된 국내 기술수출 계약 규모 대비 선급금 비중을 단순 계산해보면 2022년 3.24%, 2023년 5.92%, 2024년 4.79%에서 지난해 1.32%을 기록했고, 올해 8월까지는 2.41% 수준에 그쳤다.
계약 건수는 늘었을까.
최근 5년간 국내 기술수출 건수는 2022년 16건, 2023년 20건, 2024년 15건, 2025년 20건, 올해 8월까지 9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 등락은 있었지만 뚜렷한 증가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술수출 시장의 외형 확대가 계약 건수 자체의 증가보다는 일부 대형 계약에 힘입은 측면이 있다고 풀이되는 배경이다.
◇글로벌도 '후지급' 구조…한국 비중 더 낮아
선급금 비중이 낮은 '후지급 구조'는 국내 산업 경쟁력 부족이 원인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대형 기술거래에서 계약 총액과 초기 지급액 사이 차이가 크다.
JP모건이 지난 달 발간한 '올해 2분기 바이오파마 및 의료기기 분야 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치료제 및 플랫폼 연구개발(R&D) 기술이전 계약 금액 대비 선급금 비중은 6%를 기록했다. 지난 2023~2025년의 7% 수준보다 약간 줄었다.
JP모건은 "계약 구조는 개발, 허가, 상업화 단계별 마일스톤 지급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추세"라면서 "매수자는 자산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면서도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쉬운 점은 글로벌 평균과 비교해도 국내 기업의 선급금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이다.
선급금 규모는 기술 도입 기업이 해당 자산의 현재 가치와 개발 가능성을 얼마나 높게 평가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로도 평가된다.
미국 의약품 시장조사 및 컨설팅 기업인 아이큐비아(IQVIA)는 지난 3월 작년 연간 기술거래를 분석하며 "대형 제약사들이 이미 명확한 임상 및 상업적 경로를 가진 후기 단계 자산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지난해 임상 2상 단계 자산의 선급금 규모는 전년 대비 47% 성장했고, 임상 3상 자산 선급금 역시 52% 증가했다.
개발 단계가 올라가고 임상에서 유효성이 확인된 자산일수록 기술 도입 기업이 선급금 비중을 끌어올리는 추세라고 파악됐다.
[출처: JP모건, DealForma.com 데이터베이스]
◇계약 이후 '반환' 사례도
기술수출에서 선급금 규모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계약 이후다.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후보물질의 개발 성공과 상업화가 보장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임상에서 기대한 성과가 나오지 않거나 기술을 도입한 제약사의 사업 전략이 바뀌면 계약이 중단되고 기술이 반환되는 사례도 왕왕 생긴다.
일부 업계에서는 특정 약을 개발하는 글로벌 제약사가 같은 계열의 후보물질을 계약해 후속 개발을 지연시키려는 목적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국내에서도 최근 5년 사이 반환 사례들이 목격됐다.
보로노이[310210]는 2022년 미국 바이오 기업 메티스테라퓨틱스에 폐암, 흑색종, 대장암 등 고형암 치료를 위한 경구용 인산화효소 저해 물질을 기술이전했지만, 2024년 4월 메티스 측의 경영환경 및 개발전략 변경으로 권리가 반환됐다.
대웅제약[069620]도 2023년 영국 소재 제약사 CS파마슈티컬스에 섬유증 치료제 베르시포로신을, 미국 제약사 비탈리바이오에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기술 이전 계약을 했지만 각각 2024년과 지난해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한편 기술 반환이 반드시 해당 후보물질의 최종적인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개발을 다시 이어나갈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한미약품의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수용체 작용 후보물질 에페글레나타이드가 꼽힌다.
한미약품은 2015년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에 해당 물질을 기술 수출했지만, 사노피가 2020년 글로벌 임상 3상을 중단하면서 권리가 반환됐다. 이후 한미약품은 자체적으로 임상을 마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해 하반기 국내 출시가 전망되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임상 데이터의 질적 고도화와 경쟁 약물 대비 차별성 입증, 적응증 확대, 플랫폼 기술로의 확장 등을 통해 협상력을 높이는 것이 선급금(업프론트) 규모를 키우는 핵심 전략"이라면서 "기술수출 반환이 되더라도 축적된 개발 데이터를 기반해 새로운 적응증을 발굴하고 재기술수출에 성공한다면 기존 파이프라인의 확장성과 잠재가치를 시장에 다시 입증할 수 있다"고 전했다.
sijung@yna.co.kr
정수인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뉴스를 추천해요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