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독립 심사' 끝에 후보 낙점…"일반 주주 눈높이서 안건 판단"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다음 달 9일, 지배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고려아연의 임시주주총회가 열린다.
신임 독립이사 4명과 분리선출 감사위원 1명을 선임하는 이번 주총에서 양측은 독립이사를 2명씩 추천하며 균형을 맞췄다. 이에 실질적인 표 대결은 감사위원 한 자리를 두고 벌어지게 됐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박유경 전(前) 네덜란드연기금 APG자산운용 본부장을 후보로 내세웠고, 고려아연 이사회(최윤범 회장) 측은 딜로이트그룹 이사회 의장을 지낸 회계·감사 전문가 백인규 단국대 교수를 추천했다.
지분율 자체는 영풍·MBK 연합이 앞서지만, 시장에서는 고려아연이 유리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감사위원 선임 시 적용되는 '합산 3%룰'에 따라 영풍·MBK는 합산 3%로 의결권이 묶이는 반면, 최 회장은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음에도 '최대주주'가 아니라서 이 규제를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박유경 후보는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향한 '영풍 측 인사'라는 분류를 거부하며 독립적인 행보를 걷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네덜란드 연기금 자산운용사 APG에서 아시아·태평양 책임투자와 기업지배구조 업무를 17년간 총괄했다. 국민연금공단 ESG위원회 위원,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거버넌스 전문가다.
박유경 전(前) 네덜란드연기금 APG자산운용 본부장
◇"영풍·MBK 만난 적 없어…언론서 진영 묶으면 정정 요청"
박 후보는 영풍이나 MBK 관계자로부터 직접 섭외 받은 적이 없으며 연락조차 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의 등판은 국내 최초로 시도된 '독립 후보심사위원회'를 거쳐 이뤄졌다.
고려아연과 영풍·MBK 양측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외부 전문가들이 심사위원회를 꾸려 후보자의 전문성과 직무 역량, 기업지배구조 이해도, 평판 등을 종합 평가해 박유경 전 본부장을 최종 후보로 낙점했다.
박 후보는 "영풍 관계자도, MBK 관계자도 만난 적 없다"며 "(위원회로부터) 선정 통보를 받을 때 '영풍·MBK와 무관한, 완전히 독립적인 이사가 될 텐데 괜찮겠느냐'고 먼저 물었고 '당연하다'는 답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배권 분쟁 기업에서 이사회 의석수를 진영별로 나누는 관행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박 후보는 "만약 언론에서 나를 영풍 측 이사로 분류한다면 즉시 정정을 요청할 것"이라며 "독립이사로서 어느 진영으로도 묶일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추후 이사회 진입 시 안건 판단 기준으로는 철저히 '일반 주주'의 눈높이를 꼽았다. 박 후보는 "경영진이 올리는 안건을 일반 주주와 국민연금의 시선으로만 볼 것"이라며 "특정 대주주의 유불리와는 무관하며, 결과적으로 MBK나 영풍이 서운해할 결정이 나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유경 전(前) 네덜란드연기금 APG자산운용 본부장
◇"지배권 분쟁에도 금도 지켜야…우호지분 위한 상호주는 독"
2년 가까이 이어진 고려아연 지배권 분쟁에 대해 박 후보는 "지배권 분쟁 자체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서도,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을 경계했다.
그는 "분쟁이 길어질수록 기업 평판과 주주의 불안이 커진다"며 "일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금도(禁度)'가 지켜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의 적극적인 역할도 강조했다. 박 후보는 "이번 분쟁이 일반 주주에게 어떤 우려를 안겼는지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이사회 책임성(Accountability)의 출발점"이라며 "지배주주 간 이해가 충돌할 때야말로 독립이사와 감사위원이 중심을 잡고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호 지분 확보를 위한 상호주 관행에 대해서는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위기 때 서로 (의결권으로) 돕는 상호주 구조는 일본 증시 침체의 핵심 요인 중 하나였다"며 "재벌 구조로 얽힌 한국 시장에서는 폐해가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화, 현대차, LG화학 등 고려아연을 둘러싼 우호 지분을 두고도 "이러한 자본 배분이 진정으로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것인지는 각 사에 물어야 할 문제"라고 짚었다.
최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현대차 이사회에 고려아연 지분과 KT 지분을 매각해 주주에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시장 일각에서 3%룰 등으로 인해 이번 표 대결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점치는 상황에 대해서도 그는 "시장의 시각도 알고 있다"고 담담히 인정했다.
그럼에도 출사표를 던진 이유에 대해서는 '독립이사의 소명'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후보는 "좋은 기업에서 이사회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증시에 좋은 거버넌스 문화가 정착되려면 그 흐름이 대기업을 넘어 중견기업으로 확산해야 한다"며 "관행을 바꾸는 데 힘을 보태는 독립이사 후보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kslee2@yna.co.kr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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