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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숙의 시선] 반도체 호황인데 삼성은 왜 계약학과를 줄였나

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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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수요 따라 생기고 사라지는 학과…위험은 학생 몫

'AI' 붙이는 대학들, 기술 유행 이후까지 대비하고 있나

(서울=연합인포맥스) 2023년 가천대학교와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국내 최초의 클라우드 분야 계약학과를 만들었다. 매년 30명을 선발해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졸업 후 우선 채용 기회를 주기로 했다.

계약기간은 6년이었지만 2027학년도 신입생 모집은 중단됐다. 필요한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 더는 채용 계획이 없다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세 차례 신입생을 받은 뒤 모집을 멈춘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회사가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했던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계약학과의 장점과 위험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다. 기업에 사람이 필요할 때 학과가 생기고 채용을 멈추면 신입생을 받을 이유도 사라진다. 대학의 시간표가 기업의 채용계획에 좌우되는 구조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삼성전자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반도체시스템공학과의 2027학년도 모집 인원을 100명에서 40명으로 줄여달라고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은 반도체 호황이지만 결정 당시 관련 사업부는 적자였고, 인공지능(AI)과 자동화로 장기 인력 수요도 달라졌다.

KAIST는 학과 유지를 원했지만, 결정권은 삼성전자에 있었다. 배충식 KAIST 총장이 최근 간담회에서 "삼성전자의 인력 보충 정책에 의한 것이라서 저희가 주도권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 이유다.

2027학년도 대기업 채용형 계약학과 모집 인원은 13개 대학 18개 학과, 720명으로 전년보다 70명 줄었다. 부산대와 LG전자가 스마트가전공학과를 신설했지만, KAIST 감축과 가천대 모집 중단 등이 영향을 미쳤다.

학과의 형태도 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경북대가 2011년부터 운영한 4년제 모바일공학전공은 모바일AI공학전공으로 재편된다. 최단 5년의 학·석사 통합과정으로 바뀌고 모집 인원은 30명에서 20명으로 줄어든다. 범용 학부 인력보다 AI 전문성을 갖춘 고급 인력을 원하는 기업의 변화를 보여준다.

반면 정부는 인력 공급을 더 신속하게 늘리려 한다. 교육부는 지난 7월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지역협약정원제'와 '인재양성 신속트랙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방대가 기업이 요구하는 초과 인력을 정원 외로 선발하고, 전과와 편입학을 활용해 필요한 인재를 2년 안에 양성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교육부가 제공한 2026년 6월 말 대학정보공시 기준 반도체 관련 계약학과 정원은 3천650명, AI 관련 계약학과 정원은 2천158명이다.

문제는 기업이 제시하는 수요가 얼마나 지속되느냐다. 기업이 필요하다고 할 때 정원을 늘리는 장치는 마련하면서 업황 악화나 사업 재편으로 채용을 줄일 때 학과와 학생을 보호할 대책은 뚜렷하지 않다.

특히 반도체는 공급 부족과 과잉을 반복하는 사이클 산업이다. 기업이 공장을 지을 때는 사람이 부족하지만, 학생이 졸업하는 4∼6년 뒤에는 불황이 닥칠 수 있다. AI와 자동화가 생산능력 증가를 과거와 같은 규모의 고용 증가로 연결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더 근본적으로는 대학 교육이 기업의 즉각적인 수요에 맞춘 기술양성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지도 물어야 한다. 대학은 특정 기업의 생산계획에 맞춰 당장 필요한 기술만 가르치는 직업훈련기관이 아니다. 산업이 변해도 적응할 수 있는 기초지식과 사고력,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낼 연구역량을 길러주는 곳이다.

AI 시대를 맞아 대학들은 경쟁적으로 학과와 전공 이름에 'AI'를 붙이고 있다. AI 인재를 키우는 일은 중요하지만, 학과 이름을 바꾸거나 현재 유행하는 프로그램과 도구를 가르친다고 AI 인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AI 자체는 사라지지 않더라도 생성형 AI 모델과 개발 도구, 기업이 요구하는 직무는 빠르게 바뀐다. 특정 기술의 사용법만 익힌 학생은 졸업할 무렵 그 기술이 표준화되거나 해당 업무가 자동화되면 오히려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대학이 가르쳐야 할 것은 유행하는 도구의 사용법을 넘어 수학과 통계, 컴퓨터과학과 물리학 등 기초학문을 토대로 문제를 정의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능력이다. 기초가 튼튼한 학생은 기술이 바뀌어도 다시 배울 수 있다.

산학협력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계약학과는 대학 교육과 산업 현장의 간극을 줄이고 학생의 취업 불안을 덜어준다. 그러나 기업이 교육 내용과 선발 인원, 학과의 존폐까지 좌우한다면 대학은 교육의 주도권을 잃는다.

정부도 기업이 요구하는 숫자를 대학 정원에 반영하기 전에 수요의 근거를 검증해야 한다. 몇 명을 양성했는지가 아니라 이들이 어디에 취업했고 학력·직무별로 어떤 부족과 과잉이 발생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기업이 철수하더라도 재학생의 장학금과 교육, 채용 약속을 보호하고 다른 기업이나 대학원으로 이동할 길도 열어둬야 한다.

기업의 채용계획은 실적과 업황에 따라 바뀌고 오늘 주목받는 기술도 학생이 졸업할 때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학생이 대학에서 보내는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대학이 가르쳐야 할 것은 한 기업이 오늘 필요로 하는 기술만이 아니다. 산업의 사이클이 꺾이고 기술의 유행이 지나도 학생이 스스로 다시 배우고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다. 계약학과와 AI 학과가 지속 가능한 교육 모델이 되려면 기업 수요에 대한 신속한 대응보다 학생의 장기적인 선택권을 먼저 보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부장)

ysyoon@yna.co.kr

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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