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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우의 컴온웰스] 원화 격세지감

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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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원화: 브랜드 뉴 데이'. 최근 강한 면모를 보이는 원화는 흥행몰이 중인 스파이더맨 영화 제목을 떠올리게 한다. 불안정한 대외 여건과 수급 쏠림에 맥을 못 추던 원화가 '새로운 날을 맞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강해져서다.

'우리 원화'가 달라지기 시작한 분기점은 7월이다. 원화는 올해 1월에서 6월 사이 달러화 대비 7.10% 떨어졌다. 주요 통화 중 가장 가파른 하락폭이다. 같은 기간 엔화가 3.52% 하락하는 데 그쳤고 호주달러화가 3.86% 오른 것과 비견된다.

7월부터 상황이 완전히 반전됐다. 원화는 두 달여 동안 무려 11.85% 뛰었다. 두 번째로 상승폭이 큰 뉴질랜드달러화(5.08%) 세 번째인 호주달러화(4.25%) 상승률을 대폭 웃돈다. 원화만 독보적인 상승 질주를 한 셈이다.

그 결과 올해 성적표도 달라졌다. 원화의 연초 대비 상승률은 이제 3.80% 정도다. 7.87% 뛴 호주달러화, 6.41% 오른 브라질 헤알화 다음으로 크게 뛴 그룹에 속하게 됐다. 위안화(3.88%), 뉴질랜드달러화(3.78%)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

갑자기 원화가 눈에 띄는 강세 흐름을 보이자 시장도 '격세지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치이고 내국인 해외투자, 외국인 투자자 증시 이탈로 고꾸라지던 게 불과 얼마 전이어서다. 한때 원화는 모든 재료를 하락하는 방향으로 소화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7월 이후 나타난 원화 상승세는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가파르다. 8월만 떼놓고 봐도 상승률이 3.52%로 단연 1위다. 호주달러화(2.39%), 태국 바트화(2.11%)를 제외하고 2% 이상 오른 통화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외국계 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만년 열등생이었던 원화가 어느새 '우등생'이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주요 통화 7월 이후 달러화 대비 등락률

원화가 방향을 전환하는 데는 수급 지형의 변화가 주효했다. 주가 급등으로 인한 외국인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이 마무리되고 반도체 기업들이 달러화를 적극 내놓기 시작하면서 원화가 힘을 받았다. 반도체 호황과 사상 최대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에 걸맞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그 과정에서 외환당국의 역할도 컸다. 일방향 쏠림이 심화할 때마다 실개입, 구두개입 등으로 변동성을 억제하면서 펀더멘털과 괴리된 움직임이라는 점, 언제든 행동에 나설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주요국과 긴밀한 소통으로 유례없는 미국 재무부 장관의 구두 개입, 한미일 공조 개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또 시장 질서를 훼손하는 행태는 없는지 점검하고, 불법 외환 거래를 조사해 수출입 기업이 환율 상승에 편승하지 않도록 했다. 원화의 하방을 든든하게 받쳐준 것이다.

이제 시장에서 1,500원대 환율에 대해 과도했다거나 비정상적이었다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데서 당시 당국의 판단이 적절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증명되는 모습이다. 앞선 상승장에서 1,600원대 환율에 대한 얘기까지 나오며 불안감이 커졌는데 투기적 움직임, 심리적 쏠림을 잘 제어했다는 의미다.

원화가 강세를 달리자 당국의 달라진 온도가 엿보인다. 최근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환율의 '상하방' 요인이 병존한다고 언급했다. 일방향 변동성을 경계하는 목소리로 일관하던 입장이 조금은 달라진 듯하다. 고비를 넘겼다는 인식, 오히려 하락세가 너무 가파른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할법한 상황 변화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최근에는 당국이 달러 매수 개입에 나선 것 아니냐는 얘기도 돌고 있다.

강세로 돌아선 원화가 더 오를 수 있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성장세, 수출로 인한 경상흑자 등 경제 상황이 추가 상승을 뒷받침한다는 생각이다. 권민수 한국은행 부총재는 최근 펀더멘털을 고려하면 환율이 하향하는 쪽으로 가는 게 맞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급 변수를 넘어 원화가 탄탄한 한국 경제 상황에 어느 정도 걸맞은 대접을 받게 될 것이란 기대가 생긴다.

물론 환율은 전망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예측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언제 어떤 돌발 변수로 원화가 다시 하락하거나, 반대로 더 뛸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최근 상승 흐름을 계기로 원화의 저력을 확인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만년 열등생의 패배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당장은 원화가 우등생 대접을 받게 됐지만 원화는 '국제화'라는 중대 과제도 안고 있다. 24시간 외환시장 개장, 역외 결제 시스템 구축 등을 시작으로 투자뿐 아니라 경상거래에서도 두루 쓰이는 통화가 되기 위한 길을 가는 중이다. 장기프로젝트로 험로가 예상된다. 그러나 최근 등락을 통해 원화는 '잠재력'을 보여줬다. 평범했던 학생이 꿈을 품고 사회에 진출해 성공 신화를 쓰듯 우등생 맛을 본 원화가 국제 사회에서 더욱 단단한 입지에 올라설 날을 기대해본다. (경제부 시장팀 차장)

ywshin@yna.co.kr

신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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