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 제공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원 기자 = 미래에셋그룹이 최근 인수한 가상자산 거래소 디지털엑스(Digital X·옛 코빗)를 앞세워 '뉴 파이낸스(New Finance)' 구축에 나선다.
단순히 가상자산 거래량을 늘려 수수료 수익을 확보하는 기존 거래소의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 전통·디지털자산을 결합하고,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을 통해 투자부터 자산관리까지 연결하는 차세대 투자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겸 글로벌전략가(GSO)가 디지털엑스 인수 직후 1년간 거래 수수료를 '0원'으로 낮추고, 대규모 자본 확충을 예고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이라는 평가다.
박 회장은 전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디지털엑스 임직원 행사에서 "단순히 주식 사고팔고, 코인 사고 파는 세상이 아니다"며 "그런 세상은 5년 안에 없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증권사가 시스템을 알고리즘으로 만들고 구글이나 퍼플렉시티, 오픈AI 등이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바꾸는 게 좋다'고 제안해 버튼을 누르면 그날 매매가 되는 세상이 된다"며 "이게 뉴 파이낸스"라고 정의했다.
◇거래소 아닌 투자 플랫폼…크립토·스테이블코인·RWA·STO '4축'
박 회장이 지난 26일 제시한 디지털엑스의 사업 영역은 크게 크립토와 스테이블코인, 실물연계자산(RWA), 토큰증권(STO) 등 네 가지다.
핵심은 각각의 디지털자산을 단순히 사고파는 거래소가 아니라 미래에셋이 기존에 보유한 전통 금융자산과 이를 연결하는 데 있다.
박 회장은 "전통자산과 디지털자산을 융합해야 한다"며 특히 STO에 대해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주식 등 기존 금융자산을 잘게 쪼개 디지털 형태로 거래할 수 있게 되면 시장의 외연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미래에셋이 그리는 디지털엑스의 성장 규모도 상당하다.
현재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등을 합쳐 그룹이 관리하는 고객자산은 1천500조원을 넘어선다. 박 회장은 이 가운데 향후 디지털자산으로 이동할 수 있는 규모가 15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미래에셋 고객자산이 증권과 운용사를 합쳐 1천500조원을 좀 넘어간다"며 "여기서 디지털자산으로 얼마나 갈까 하면 150조원 정도는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미래에셋이 디지털엑스 인수를 통해 노리는 시장은 현재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거래대금만은 아닌 셈이다.
그룹이 확보한 고객과 금융상품, 글로벌 투자자산을 디지털화해 새로운 투자시장으로 연결하는 것이 중장기적인 목표에 가까웠다.
◇수수료 0원은 '첫 수'…500억 넣고 최대 3천억 더 넣는다
최근 디지털엑스가 내놓은 파격적인 수수료 정책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디지털엑스는 지난 24일부터 내년 8월까지 1년간 원화마켓 전 종목의 메이커·테이커 거래 수수료를 모두 0%로 적용하고 있다.
별도 신청 없이 모든 회원에게 자동 적용되는 방식이다.
거래 수수료가 사실상 핵심 수익원인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가 1년간 이를 포기한 셈이다.
당장 거래 수익을 극대화하기보다 고객 기반과 유동성을 먼저 확보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거래량 기준 디지털엑스의 국내 원화거래소 점유율은 0.5% 수준으로, 업비트와 빗썸의 합산 점유율 97%와 격차가 크다.
수수료 무료화 직후 점유율이 한때 1%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아직 시장 판도를 바꿀 정도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박 회장도 수수료 무료화의 단기 효과보다는 중장기적인 고객 확보와 사업 확장에 무게를 뒀다.
그는 "우리가 수수료 무료화를 했는데 당장 효과가 있기보다는 전문 투자자들이 와야 한다"면서 가상자산 거래소의 기존 사업 관행 역시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자본 투입도 본격화하고 있다.
디지털엑스는 지난 12일 50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미래에셋컨설팅이 신주 전량을 인수하며 납입일은 27일이다.
미래에셋컨설팅은 앞서 약 1천414억원을 들여 디지털엑스 지분 97.15%를 확보했다.
여기에 박 회장은 디지털엑스의 흑자 달성을 전제로 내년 최대 3천억원의 추가 자본 확충 계획까지 직접 제시했다.
박 회장은 "디지털엑스가 흑자가 나면 내년에 증자를 할 것"이라며 "전략적 투자자들에게 할 것이고 2천억~3천억원 정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디지털엑스 고객에게도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증자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게 박 회장의 입장이다.
그는 또 "증자를 해서 다양한 글로벌 투자에 과감히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디지털엑스를 단순 거래 중개업자가 아니라 자기자본을 활용해 글로벌 디지털자산과 관련 기업 등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키우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업비트·빗썸만 경쟁상대 아니다…빅테크까지 겨냥
박 회장이 그리는 뉴 파이낸스의 경쟁 구도에는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뿐 아니라 글로벌 빅테크도 포함된다.
AI가 개인의 투자 판단과 포트폴리오 구성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고 블록체인 기반 결제까지 빅테크가 장악하기 시작하면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게 박 회장의 판단이다.
그는 구글 등 빅테크의 블록체인 결제시장 진입 가능성을 거론하며 "빅테크가 블록체인 결제 수단에 들어올 것으로 보고 있다"며 "파이낸스 영역을 그냥 넘어갈 리도 없다"고 말했다.
이는 미래에셋이 디지털엑스를 업비트·빗썸과 거래량을 놓고 경쟁하는 '제3의 거래소'에 머물게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상자산 거래를 고객 유입의 출발점으로 삼되 미래에셋이 확보한 1천500조원의 고객자산과 글로벌 투자 네트워크, 전통 금융상품을 RWA와 STO 등 디지털자산으로 연결하고 AI 기반 자산관리까지 결합하는 게 궁극적인 그림이다.
박 회장이 디지털엑스를 두고 "글로벌 투자 플랫폼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미래에셋의 승부수는 '가상자산 거래소의 시장점유율을 얼마나 높일 것인가'보다 '금융자산이 디지털화되는 과정에서 누가 플랫폼을 차지할 것인가'에 가까워 보인다.
1년간 수수료를 포기하고 최대 3천억원의 추가 자본까지 투입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디지털엑스가 미래에셋 '뉴 파이낸스'를 구현하는 일종의 실험장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jwon@yna.co.kr
정원
j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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