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악을 상정해 본 사람'
관가에선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을 두고 정권이 바뀌어도 살아남는다는 '불사조'라 했다. 칭찬이라기보다 어딘가 비꼬는 말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보다 '누구의 사람인지'를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의 얘기다. 달리 좀 더 들여다보자.
1971년생. 서울대 경제학과를 다녔고 1992년 행정고시 36회에 합격했다. 대학을 마친 뒤 천천히 관료의 길을 준비한 사람이 아니다. 젊은 나이에 시험을 통과했고, 재경부의 전신인 기획재정부 시절부터 종합정책과장, 경제정책국장, 차관보 등 경제정책 라인의 요직을 모두 거쳤다. 미국 텍사스 A&M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고 IBRD 선임 이코노미스트로도 일했다.
그런 그가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잠재성장률 3%·수출 4강·국민소득 5만달러 달성 등 '3·4·5 비전'이 담긴 경제성장전략과 중동전쟁발 고물가에 대응한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 등을 주도한, 거시경제에 정통한 이 50대 젊은 경제부총리는 '2기 경제팀'을 이끌게 된다.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되면 역대 최초로 1차관에서 부총리로 직행한 경우가 된다.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그의 강점인 디테일에도 실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관료 생활을 시작한 시기를 봐야 한다. 외환위기였다. 금융회사가 쓰러지고 기업이 무너졌다. 정부는 금융기관을 살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이형일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금융정책국에서 일했고, 2001년에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2년에는 공자위 의사총괄과에서 일했다.
젊은 서기관 시절부터 한국 경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질문을 마주한 셈이다. '이 회사를 살려야 하는가' 그리고 그보다 더 어려운 질문. '살리는 데 실패하면 국민은 얼마를 더 부담해야 하는가'
공적자금은 이름만 보면 구제금융이지만, 정책 현장에서는 냉정한 계산의 영역이다. 돈을 넣지 않았을 때 금융시스템 전체가 무너지는 비용과, 돈을 넣었다가 회수하지 못했을 때 국민이 부담할 비용을 비교해야 했다.
2001년 공자위가 금융기관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내세운 기준도 '국민경제적 손실을 감안한 총비용의 최소화'였다. 지원과 동시에 경영정상화 이행약정(MOU)을 요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제재하는 장치도 뒀다.
살려주되, 아무 조건 없이 살려주는 것은 아니었다.
공적자금이 들어가는 순간 이후부터 최악의 경우를 누군가는 계산해야 했다. 이 경험이 이형일이라는 관료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는 막내로서 조직이 생길지 아닐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서 그저 일을 열심히 했고, 조직이 생겨나면서 자기 이름이 남았을 뿐이라고 한다.
최악을 본 사람이 낙관하는 방식은 다르다. 지금 여의도에서 주식 잘하는 사람 대부분이 이즈음 청산 가치를 분석했던 채권쟁이다. '잘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대신 '잘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 경제성장률을 볼 때도 숫자 하나보다 그 숫자가 흔들릴 때 어디서 문제가 생기는지를 본다. 금융시장을 볼 때도 상승보다 급락의 경로를 먼저 생각한다. 재정을 볼 때도 지출의 효과만큼이나 나중에 누가 계산서를 받아들일지 따진다
어쩌면 이형일이 여러 정부에서 계속 쓰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경제정책비서관을 지냈고, 윤석열 정부에서는 다시 기재부 차관보를 거쳐 통계청장이 됐다. 통계는 경제관료에게 또 다른 의미의 훈련이다. 보고 싶은 숫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지 않은 숫자까지 봐야 한다.
청와대·해외 파견을 제외하면 그가 친정을 떠나있던 시절은 통계청장 재임 2년뿐이다. 역설적으로 진가가 드러난 시기가 이때기도 하다. 그 자신도 통계청장 시절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통계청(현 국가데이터처)은 조직 특성상 외부에서 관료 출신이 기관장으로 오면 1년 정도 대충 있다가 간다고 생각해서 텃세가 꽤 있는 편지만, 여전히 데이터처 직원들은 최고의 청장으로 이형일을 기억한다. 2023년 통계청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취임식을 생략하고 곧바로 간부회의에 돌입한 것을 유명한 일화다. 형식보다 효율을 중시한 그의 스타일이다. 임기 내 지방통계청을 모두 돌아보는 것을 목표로 세웠을 정도로 직원들과의 스킨십도 넓혔다. 당시 통계 조작 논란으로 감사원의 감사를 받고 있어 조직의 사기가 떨어져 있었지만 사내 익명게시판에는 청장을 칭찬하는 글이 많이 올라왔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1차관으로 돌아왔다.
경제관료에게 과거의 위기는 경력이 아니라 자산이다. 외환위기를 책으로 공부한 사람과 그때 공적자금을 다루던 젊은 관료는 위기를 바라보는 눈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번 금융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본 사람은 금융시장의 평온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한번 공적자금을 투입해 본 사람은 정부 돈을 공짜 돈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한번 통계의 숫자를 책임져 본 사람은 숫자 뒤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삶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
이형일의 강점은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무엇이 잘될까'를 예상하는 능력보다 '무엇이 잘못될 수 있을까'를 먼저 찾아내는 능력. 그리고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뒤에도 정책을 굴러가게 만드는 능력.
관료 사회에서 '일을 잘한다'는 평가는 흔하다. 하지만 이형일에게 붙은 평가는 조금 다르다. 냉철한데 독하지 않고, 오래 일했는데 조직 안에서 사람을 잃지 않았다. 흔히 관료들을 칭찬할 때 위아래 신망이 두텁다고 표현하는데 그는 정말 그 표현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다. 후배들은 하나같이 이 차관을 '존경한다'고 말하고, 역대 경제부총리들도 이 차관을 가장 신뢰했던 관료로 꼽았다. 홍남기, 추경호, 최상목, 구윤철까지 무려 4명의 부총리를 거치는 동안 진보·보수정권을 넘나들며 중용 받았던 것도 인품과 실력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라고 선후배들은 평가한다.
경제가 좋을 때는 경제를 잘 설명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경제가 흔들릴 때는 설명보다 판단이 필요하다. 어느 순간 돈을 풀어야 하는지, 어느 순간 물러서야 하는지, 어디까지 정부가 책임져야 하고 어디부터 시장에 맡겨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 판단의 바탕에는 경험이 있다.
그리고 경험 중에서도 가장 값비싼 경험은 실패를 직접 본 경험이다. 이형일은 운 좋게 여러 정권에서 살아남은 관료가 아니다. 어쩌면 시대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배운 것들이, 시대가 바뀔 때마다 그를 다시 불러낸 것에 가깝다.
1점 차 승부를 잘하려면 투수가 무너졌을 때를 상정하고 대비해야 한다. 경제라는 것은 10대 0이 아닌 한점 차 승부고, 지금은 더 그렇다, 이형일 부총리는 그 승부처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경제부장)
sykwak@yna.co.kr
곽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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